26.6.6(토) 12:00
"은척면 수예리(水曳里) 수예길 126"
김영래 Second home
가은초등학교 동기회를 앞두고 친구들과 함께 담소원(불정) 현장을 둘러보았다. 안전시설도 꼼꼼히 살펴보고, 다음 주 있을 동기회를 홍보할 현수막도 함께 내걸었다. 작은 일 하나에도 서로 마음을 보태는 친구들이 있어 든든했다. 일을 마친 뒤에는 가은읍 민들레식당에 들러 점심을 함께했다. 오랜 친구들과 둘러앉아 밥 한 끼 나누는 시간이 그 어떤 진수성찬(珍羞盛饌) 보다 맛있었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학창 시절 이야기들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식사를 마치고 석재, 칠정이랑 영래 (길래兄)가 안내하여 문경시와 상주시 경계에 있는 상주시 은척면 수예길 126(장안 2리) 찾았습니다. 개울가를 하나 두고 반대편은 문경시 가은읍 수예리이다. 작약산(740m)이 내려다보이는 그곳에는 친구 영래가 귀농, 귀촌하여 가꾼 보금자리가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친구의 집. 마당 한편에 앉아 진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래는 어린 시절 오지(奧地) 산길을 걸어 학교를 다녀야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에는 가은보다 상주 이안면이 더 가까워 상주무릉초등학교를 지름길을 걸어서 다녔다고 한다. 황새빌 보다 2배 이상 산길을 걸어야만 했던 오지 부탁 우리 가은초 6학년 때 우리 2반으로 5월 1일 날 전학(轉學)하여 합류를 했던 영래친구 1학기 때는 학모가 반장을 하고, 2학기 때는 영래가 반장을 했다이야기를 하며 폭소 웃음을 지었다.. ㅎㅎ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세대는 모두 배움 하나를 위해 먼 길을 걸어 다녔다. 마성면 한실에서, 봉암사위 오봉정, 아래 아침배미에서, 갈밭 함박골과 돌마래미에서, 미누리와 완장리, 죽문리 바지골에서 새벽길을 나서 학교를 향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힘든 길이었지만, 그 길 위에서 우정이 자라고 꿈도 함께 자랐다. 그 시절 부모님들은 자식 농사를 가장 큰 삶의 보람으로 여기셨다. 어렵고 가난했어도 자식만큼은 공부시켜 사람(인가)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오셨다. 가은 왕릉으로, 장터로, 학교 가까운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것도 모두 자식을 위한 사랑이 아니였나 내 혼자 생각한다. 영래는 19년부터 귀농, 귀촌의 꿈을 실천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땅에서 돌을 골라내고 객토를 하며 한 뙈기 한 뙈기 농토를 일구었다. 사과와 과일 농사를 짓고 있지만 단순히 농사로 생계를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키워준 고향을 지키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오랜만에 친구 네 명이 둘러앉아 마신 색 바랜 진한 커피 한 잔.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배움을 놓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온 친구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가정을 이루고 삶을 일구어 온 친구들. 그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었다.
마지막으로 무두실 석재 친구가 사과 감홍농사를 짓는 옥여봉 자락도 찾아보았다. 같은 동네 부락이지만 농장을 찾기는 처럼이다. 나에게는 처음 가보는 곳이었지만, 고향의 산과 들은 늘 정겹고 포근했다.번개 모임처럼 시작된 하루였지만 마음만은 오랜 여행을 다녀온 듯 넉넉했다. 친구들과 함께 고향의 정을 나누고 옛 추억을 되새길 수 있었기에 더욱 값진 시간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건강이다. 다가오는 6/13~14 가은초등학교 동기회도 모두의 정성과 마음이 모여 성황리에, 그리고 안전하게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친구들이 하나둘 보태 준 따뜻한 정을 잊지 않고 살아가며, 나 또한 그 사랑을 갚아 나가야겠다. 친구들아, 우리가 걸어온 세월만큼이나 우정도 깊어졌다. 수예리(水曳里)는 '물을 끌어온다'는 그 이름처럼, 메마른 땅을 옥토로 일군 개척(開拓)의 역사와 가나농군학교 교장 故김용기목사가 생각난다. 임진왜란의 아픈 피난 전설을 품고 있는 고즈넉한 마을입니다. 석재가 한 말 중에 무두실 왕릉 작천 성저 등 주민들이 이곳에서 피난을 할 만큼 아낙하고 정겨운 부락임은 틀임 없다. 작약산(770m)의 품에 안겨 자연을 벗 삼아 쉴 수 있는 이곳은 상처마저도 자연스레 아물게 하는 아늑한 힐링의 안식처(安息處)입니다. 문경과 상주의 경계를 넘나들던 우수예의 아래 수예 뱀꼬리처럼 올라가는 영래네 집 가는 길이 너무 정겹다. 자연과 시간이 느릿하게 흐르는 수예리로 떠나는 여정은 메마른 마음에 촉촉한 단비를 내려줄 주고 언제가 추후에 영래네 집 근교에서 음악회나 무선통신 실험도 해 주고 싶다. 영래야 멋지다. 친구들 사랑한다 글/채희동



원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