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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여정(旅情)/▷문화예술(藝術)

우보 배성근

by 사니조아~ 2026. 5. 28.

26.5.28(목) 11:30 / 성안동 만디
"붓끝에 새긴 수행의 길"
울산 성안동 태화문화복합 만디(萬廸)에 들어서는 순간, 묵향(墨香)이 먼저 마음을 붙잡았다.우보선생님 반갑습니다.조용한 전시장 안에는 한 점 한 점 살아 숨 쉬는 글씨들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마치 오랜 수행자의 숨결이 그대로 배어 있는 듯했다. 이번 전시는 울산 지역을 대표하는 중견서예가 우보(牛步) 배성근 선생님의 개인전이었다. 전주에서 태어나 40여 년 전 울산에 정착한 이후, 선생님은 척박하던 울산 서예문화의 토대를 다지며 후학 양성과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평생을 바쳐 오신 원로 예술인이다. 한국서예협회 울산시지회장을 역임하며 지역 서단의 중심을 지켜온 그의 삶은 곧 울산 서예사의 한 페이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 또한 14년前 울산문화예술회관 전시를 통해 선생님과 인연을 맺은 뒤, 꾸준히 작품세계를 가까이에서 접해 왔습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선생님의 글씨에는 단순한 필획 이상의 깊은 정신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백양사 주지스님  묵암 지선 스님의 한시집 『화림산책』에서 고른 금강경 , 도덕경등에서 이미 많은 작품화한 40여 점이 전시되었는데 화려하지 않지만 발걸음을 잠시 고정시킬 만큼  ‘통도사 서운암에서’, ‘마음의 등불’, ‘각차시’, ‘가랑비 내리는 날’ 등 스님의 시(詩) 세계가 배 선생님의 붓끝을 통해 다시 태어나, 한 편의 선묵화(禪墨畫)처럼 다가왔다. 한문 원문 아래 곁들여진 한글 번역은 시의 깊은 사유와 서체의 울림을 자연스럽게 이어 주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끈 것은 전통 서예의 틀을 넘어선 독창적 작품세계였다.

옛 어머니들의 조각보에서 착안한 대형 조각보 병풍, 현대적 감각이 가미된 캘리그라피, 그리고 금문(金文), 전서(篆書), 예서(隸書),행서(行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체가 한자리에 펼쳐졌다. 무엇보다 삼베지 위에 금문으로 새겨진 작품 앞에서는 한동안 발길을 떼지 못했다. 사람의 형상, 깃발, 칼과 같은 상형의 흔적들이 문자 속에 살아 움직이며, 서예가 단순한 글쓰기의 경계를 넘어 조형과 추상의 예술로 승화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금빛으로 쓰인 금강경 작품 앞에서는 마치 금강산 어느 고찰에 들어선 듯 숙연한 마음마저 들었다. 배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글씨를 쓰는 자체가 수행이자 고통입니다.” 그 한마디 속에는 수십 년 붓을 놓지 않은 예술가의 치열한 삶이 담겨 있었다. 특히 긴 작품을 쓸 때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호흡과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씀은, 결국 예술이란 기술 이전에 마음을 다스리는 일임을 깨닫게 했다. 우보(牛步) 소처럼 느리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걸어온 그 이름처럼, 배성근 선생님의 예술 세계 또한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빠름을 추구하는 시대 속에서도 평생 한 길을 걸어온 장인의 정신은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경외를 안겨 준다.

전시장을 나서는 길, 은은하게 남은 묵향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글씨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는 것이라는 것을.그리고 우보 선생님의 작품은, 한 획 한 획마다 삶과 수행의 시간이 고스란히 새겨진 ‘인생의 서(書)’였다. 금강경을 금색으로 5000자 이상을 쓰시는 작가님의 끈기에 대단한 집염(執念)인것 같습니다. 오래만에 백양사에 들러 합장 3배드리고 왔습니다.   
우보(牛步)배성근선생님 개인전을 다녀와서  글/채희동 

人生一世過瞬息 (인생일세과순식) 인생의 한 평생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回顧往年眞如是 (회고왕년진여시) 지난 세월 돌아보니 진실로 이와 같구나.
櫻花風飛去春日 (앵화풍비거춘일) 벚꽃은 바람에 날려 흩어지고 봄날은 가는데
不欺餘生覺此時 (불기여생각차시) 남은 삶을 속이지 말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깨달아라.
우리선친께서 하신 말씀도 생각이 납니다.
인생부득 갱소년
낙화갱대 명년춘  

우보선생님은  천성산과 '불지'(佛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시점은 20여년 전이었다. 그때 한문학 속에 나오는 울산의 풍광과 풍류에 대해 공부하다가 반계 이양오의 <중유원적산기>와 치암 남정희의 <재유원적산기>를 만나면서 원적산(천성산)이 조선 후기 울산과 경주 지역의 선비들에게 큰 관심을 받은 유서 깊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오늘날 남부 지방의 명산으로 알려진 영남알프스 울주칠봉이나 부산 금정산을 유람한 기문을 발견하기 어려운 데 반하여 원적산 유람기는 심심찮게 발견되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필자는 3박 4일 동안의 원적산 유람의 행로를 자세하고 정확히 기록한 <중유원적산기>의 행적을 그대로 따라 산행을 즐기는 아내와 함께 천성산을 유람했다. 그러다, 200년 전의 선비들이 불지에 오르기 직전에 들른 '대둔점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길이 막히게 되어, 결국 아쉬움을 남긴 채 그 일정을 멈추고 말았다.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울산대학교에서 정년퇴직한 뒤 필자는 양산 통도사 서운암에 주석하고 계신 대한불교조계종종정예하 중봉 성파 대종사를 토굴에서 뵙고, 그분의 소년 시절 한시집 「온계시초
」를 역주하는 인연을 맺었다. 그러다 천성산은 원효대사의 훈도로 득도한 일천 명 성인의 자취를 갈무리한 성산일 뿐 아니라 한국 근대의 대표적 선승 경봉 스님이 1920년에 이 산을 '신금강'으로 규정하고 그 당시의 승려와 문사로부터 한시를 모아 '신금강 내원사 시선'을 간행한 사실을 귀동냥으로 알게 되었다. 아울러 필자는 각종 문집에 수록된 시인 묵객의 천성산 유람 기록과 한시를 수집하고 검토하면서 그들의 천성산 유람 목적이 불지를 탐방하는 데 있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2023년 6월 어느날 최석영 교수와 함께 성파 종정예하를 모시고 담화하는 자리에서 "지금으로서는 불지가 어디인지 정확한 장소를 알 수 없으나 각종 문헌의 기록을 바탕으로 탐색해 보면 그 장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는 취지로 불지를 찾아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때 큰스님께서는
'불지(佛地)"라는 석굴이 있으면 마땅히 찾아야 할 것'이라며 필자를 격려해 주셨다. 함께 자리한 최석영 교수에게 불지 탐사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니 그도 기꺼이 동참하겠다며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 주었다. 이미 통도사의 야생버섯 1000」의 출간을 마친 뒤 다음 단계로 천성산의 야생 버섯에 관심을 가진 최 교수가 그날 이후 거의 매일 천성산기슭과 골짜기를 답파하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그해 10월 1일에는 1850년 이후 문헌에서도 언급되지 않고 종적이 묘연해진 분지를 다시 찾아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튿날 오전 불지 발견의 소식을 접한 성과 종정 예하께서는 그날 오후에 천성산 서북쪽 봉우리 8부 능선쯤에 자리한 불지를 함께 담방함으로써 불지 재발견에 대한 관심과 기쁨을 몸소 보여 주셨다. 이런 과정을 거쳐 다시 찾아낸 불지이지만 그 옆에 있던 불지암은 없어진 지 오래되었으므로 그 유래와 의미의 탐색은 문헌자료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각종 역사서와 지리지, 문집에 등장하는 자료를 찾아 정보를 종합한 결과 이제는 분지와 불지암의 면모와 그곳을 탐방한 기록의 전모를 대략 파악하게 되었다. 작년에 필자는 통도사 월간지 죽산보림 1월-3월 호에 「새로 반견한 천성산의 분지와 지암읍 연재하여 다시 발견한 천성산불지의 개략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불지와 불지암의 실체와 의미를 드러내기에 태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이번에 그 전모를 담은 책을 엮게 되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다. 그동안 필자에게 큰 격려와 도움을 주신 중봉 성과 종정예하를 비롯하여, 분지의 재발견에 결정적 도움을 주고 현장 사진을 흔쾌히 제공해준 최석영 교수,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의 토박이로 통도사와 천성산에 대한 각종 사항을 설명해준 김상걸 전 양산시의회 의장, 전국 단위의 천성산 걷기 축제를 주관하면서 이 산의 생태 정보를 제공해 준 양산도시문화연구원장 황윤영 박사 특별히 감사드린다. 자그마한 이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작업의 진행 과정을 뒤돌아보니 그간의 감회가 길어질 뿐 아니라 역량의 부족을 실감하게 된다.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기는 하였으나 이 책에 예기치 못한 원전 자료 곡해와 해석의 독단이 개입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강호 재현의 엄정한 진정을 바란다.

2026년 새봄에
영축산 아래 토굴 연구실에서 성범중 쓰다

  • 진전송림적황엽 (進殿松林積黃葉): 법당이나 대궐로 나아가니, 소나무 숲에 노란 가을 낙엽이 쌓여 있고
  • 조사고탑유잔설 (鳥棲古塔留殘雪): 새들은 옛 탑에 깃들어 쉬는데, 지난겨울의 잔설(남은 눈)이 남아있네
  • 철골설풍작야사 (鐵骨雪風昨夜事): 쇠처럼 앙상하고 강인한 가지에 몰아치던 눈보라는 모두 지난밤의 일이요
  • 금난훈일호시절 (今暖薰日好時節): 오늘은 따스한 햇살이 훈훈하게 퍼지는 참으로 좋은 시절이로다
 

 

  • 春來降雪開山野 (춘래강설개산야)
    • 한자: 春(봄 춘) 來(올 래) 降(내릴 강) 雪(눈 설) 開(열 개) 山(산 산) 野(들 야)
    • 직역: 봄이 와서 눈이 내리니 산과 들판이 활짝 열리는구나.
  • 前程長航披白茅 (전정장항피백모)
    • 한자: 前(앞 전) 程(길 정) 長(길 장) 航(배 항/항해할 항) 披(헤칠 피) 白(흰 백) 茅(띠 모)
    • 직역: 앞길을 길게 항해하며 흰 띠풀(눈 덮인 장애물)을 헤치고 나아간다.
  • 天地造化實如此 (천지조화실여차)
    • 한자: 天(하늘 천) 地(땅 지) 造(지을 조) 化(될 화) 實(참 실) 如(같을 여) 此(이 차)
    • 직역: 천지의 조화가 실로 이와 같으니,

衆生診察眞神妙 (중생진찰진신묘)
    한자: 衆(무리 중) 生(살 생) 診(진찰할 진) 察(살필 찰) 眞(참 진) 神(귀신 신) 妙(묘할 묘)
    직역: 중생(세상 사람)을 진찰하고 살피는 것이 참으로 신비롭고 오묘하구나.

  • 기(起)·승(承) 구절 (1~2행): 봄에 내리는 눈(함박눈 혹은 이른 봄의 서설)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으며 오히려 산야의 풍경을 새롭게 열어젖히는 모습을 그립니다. 인생의 먼 앞길(전정장항)을 나아갈 때, 눈 앞에 가로막힌 흰 띠풀(백모) 같은 시련이나 장애물을 묵묵히 헤치고 나아가는 인간의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전(轉)·결(결) 구절 (3~4행): 이러한 대자연의 섭리(천지조화)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의 아픔과 삶을 깊이 들여  다보고 치유하는 과정(중생진찰) 역시 대자연의 조화만큼이나 깊고 신묘한 이치를 담고 있다는 감탄으로 마무리됩니다.

靈鷲道友訪問來 (영축도우방문래) 영축산의 도반(불교적 벗)이 나를 방문하여 찾아오니
道場櫻花爛漫開 (도량앵화난만개) 불도를 닦는 도량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구나.
回顧往日茶談傳 (회고왕일다담전) 지난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다담) 기억을 되돌아보며 전하네
山鳥一聲飛天惠 (산조일성비천혜) 산새 한 마디 소리에 하늘의 은혜가 날아드는 듯하구나.


우보 배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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