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14화
동리,목월 문학관
경주로 향하는 길은 늘 비슷합니다. 불국사의 돌계단은 여전히 묵묵하고, 석굴암의 부처님은 아무 말 없이 세월을 내려다봅니다.토함산의 바람은, 다녀간 사람의 이름을 굳이 기억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길 끝에 다시 들른 곳, 김동리 박목월 문학관. 아내는 옆에서 여기를 또 ? “거긴 왜 또 가요, 떡이 나와요?” 맞는 말입니다.그곳엔 떡도 없고, 돈도 안 나옵니다.다만, 사람 하나의 생이 오래 동안 글을 쓰면서 여생을 보낸 분 이라 저와 비슷한 흔적을 보로 갔을 뿐입니다.문학관 안에는 색이 바랜 노트가 있고, 힘없이 누운 원고지들이 있습니다.
동리문학관에는 정면에 그의 흉상이 갈색 중년의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오른쪽 입구에 동리선생의 탄생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연대기와 작품활동, 생활상을 소개되어 있습니다. 오른쪽에서 길게 전시관이 이어지면서 김동리의 일대기와 문학활동을 연대별로 소개하는 사진과 안내글이 유품과 함께 진열돼 있다. 김동리는 1913년 일제강점기에 경주시 성건동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42세에 낳은 막내였다. 그는 10~20세에 이르는 청소년기 때 맏형의 서가에 꽂힌 책들을 읽으며 풍부한 지식을 쌓았다.또 철도원에 근무하는 친척 형의 도움을 받아 장서를 읽었다.
동리 선생은 대구 계성학교에서 2년을 수료하고, 서울 경신학교 3학년에 편입해 공부하면서 1929년 중외일보에 시와 수필 등을 발표해 문학도로서의 자질을 선보였다. 해방을 맞은 35~40세 당시에 상경해 서정주, 유치환,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등과 함께 청년문학가협회를 만들어 창작의 자유를 지키는 일에 앞장섰다. 이때 ‘혈거부족’, ‘황토기’, ‘지연기’ 등의 작품들이 탄생했습니다. 동리는 50세 이후에는 후학을 가르치는데 열중했다. 서라벌 예술대 6회 졸업생 전원이 그의 영향을 받아 문단에 진출한 이야기는 유명한잖아요. 예술대에 이어 서울대, 고려대, 중앙대 등 강단에서 가르친 세월이 30년이 넘었다.
박목월의 시는 단순합니다.그래서 더 무섭습니다.읽다가 문득, “아… 이건 내가 놓치고 살던 거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그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의 인생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의 인연, 세 번의 이별.사람은 시처럼 살 수 없고,시는 사람처럼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의 삶에는 시보다 더 복잡한 현실이 있었고, 사랑보다 더 무거운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는,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기엔 너무 가난했고 한 사람과 끝까지 가기엔 너무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마도 사랑을 버린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흘려보냈을지도 모릅니다.경주는 늘 그대로인데 사람의 생은 자꾸만 바뀝니다. 불국사는 천년을 버티고 석굴암은 침묵으로 완성되는데 사람은 단 몇십 년도 버티지 못해 사랑도, 신념도, 인연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서일까요.그의 시가 더 서글프고, 더 진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해설사가 없어 아쉬웠다고 하셨지만,어쩌면 그곳은 설명이 없는 것이 맞는지도 모릅니다.시는 원래, 누가 대신 풀어주면 재미가 없습니다.30분 동안 읽고 또 읽으며 “본전했다”는 느낌, 그게 바로 문학이 주는 가장 솔직한 보상일 겁니다.다음에 또 가셔도 됩니다.아내분이 뭐라 하셔도 괜찮습니다. 떡은 안 나오지만, 사람 사는 맛은
그런 데서 조금씩 나오니까 ㅎㅎ












- 김월계(1919~1994): 1938년경 결혼하여 다섯 아들을 두었으나 1966년 이혼했습니다.
- 손소희(1917~1987): 1953년경 만나 1968년 정식 재혼한 두 번째 부인으로, 소설가였습니다.
- 서영은(1943~): 손소희 사후인 1990년경, 30세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한 세 번째 부인으로 소설가입니다.




김동리 어머니 허임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