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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여정(旅情)/▷문화예술(藝術)

이육사/합죽선

by 사니조아~ 2026. 4. 2.

26.4.2.
이육사/합죽선 (석호김태형 作)
석호 김태형선생님께서 지난 2월에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교장퇴임식에 즈음하여 그동안 갈도 닦은 개인서진을 마치고 모처에서 점심과 차담을 하는 자리에서 그동안 준비하고 전시 하느라 고생하셨는데 격려(激勵)도 할겸  퇴직 후의 저와 비슷하게 취미활동과 사회봉사 등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아담한 합죽선(合竹扇) 1점을 선물을 받고 , 오늘에서야 작품을 펼처 보았습니다. 익히 잘 알고 게신분이고 이육사선생님은  독립운동정신은 시를 통해 나타나 있잖아요 '이육사청포도' 합죽선은 부채전면에  청포도 색상을 싯 글이 지나가는 자리에 문향을  넣고 그 위에다가 검은색 붓글씨를 써 내려간 것도 정말 톡특했습니다.  '이육사청포도' 선생님이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저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원록(이육사) 합죽선 이 자리를 빌려 석호 김태형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일제강정기에 이육사(1904~1944)시인은 오래 살지는 못했습니다만 이미 중, 고교 국어교과서 수록이 되어 있고 이  시말은 아마도 전 국민이 다 알 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대표하는 저항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기도 합니다. 본명은 이원록이지만, ‘육사(陸史)’라는 이름은 일제에 체포되었을 때의 수인번호가 ‘264’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진 걸도 저도 압니다. 이육사선생님의  삶과 특징은 저와 비슷한 경북 안동 출신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여러 차례 투옥(投獄)되어고  시를 통해 민족의식과 저항정신을 표현하였습니다. 

1944년 중국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殉國)  그는 단순한 시인을 넘어서 詩로 싸운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청포도」 희망과 기다림
「광야」→ 민족의 미래와 재생
「절정」
극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의지
작품 전반에 꺾이지 않는 강인한정신과 서정성이 함께 나타납니다. 이육사선생님의  문학관도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 있습니다. 언제 기회 되면 꼭 가볼기회를 갖겠습니 . 여러가지를 내용중에  생애, 유품, 시 작품 전시  고향의 자연 속에서 그의 정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육사의 삶과 작품, 독립운동의 흔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언제 기회되면 꼭 가볼기회를 갖겠습니다. 이육사선생님은 총 대신 시로 싸운 독립운동가로써 희망과 저항을 노래한 시인입니다. 「청포도」는 “반드시 올 희망을 기다리는 마음”을 맑게 그린 시입니다. 이미 고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험난하고 힘든 고초를 겪은 걸로 기억을 합니다만  김태형선생님에게 다시 한번 고맙고 감사드리며 , 오는 5월 중순에 방문예정인  독도사랑으로 경북도청으로 부터 초청을 받아서 독도를 방문할 때 이 부채를 들고 가서 청포도 시를 낭송(朗誦)해 보겠습니다.이육사의 「청포도」는 겉으로 보면 맑고 평화로운 시이지만, 속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어렵지 않게, 순수 우리말 느낌으로 쉽게 풀어 드리면 이렇습니다.

「청포도」 
이 시는 “언젠가 꼭 좋은 날이 올 것이다”
라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시 속에서 말하는
‘청포도’는 그저 과일이 아니라,
기다리는 희망과 새로운 세상을 뜻합니다.

내가 사는 이 마을에 좋은 손님이 올 것이라고 믿고
기다립 그 손님은 힘들고 어두운 세상을 끝내고 밝고
자유로운 세상을 가져올 존재 입니다.

그래서 나는 깨끗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맑은
청포도를 내어드릴 생각을 합니다.
청포도 = 희망, 기다림, 새로운 시대
손님 = 자유와 독립, 좋은 세상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을
믿으며 깨끗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 이 시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을 아주 맑고 순수하게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글/채희동  
석호 김태형 書展

 손수 특별히 제작된  전시회품을 선물 받은 합죽선작품이 톡특합니다.  

(이육사 사진)

▲한학을 공부하여 가문에서 만든 신학문 학원에서 일한 큰아버지 원기, 서화가로 유명한 원일, 문학평론을 하며 조선일보 학예부를 담당한 원조, 조선일보 인천지국 기자를 지낸 원창, 미술에 소질이 있어 전국미술대회에서 입선했으나 19세로 요절한 원홍이 그들이지요. 특히 문학평론가 이원조는 1944년 육사의 사망 이후 그의 시편을 모아 1946년 <육사시집>을 펴냈어요. '청포도'와 '광야' 등 많은 시를 발표한 아버지였지만, 정작 시집은 아버지 사후에 발간됐지요. 그런데 넷째 삼촌 이원조는 덕혜옹주의 6촌 동생과 결혼했어요. 그래서 제 어머니가 그 집에서 궁중요리를 배우기도 했지요. 나도 덕분에 어려서부터 대구를 손질하는 법 등을 배워 ‘옥비당’이라는 이름의 폐백음식 가게를 연 적도 있어요.

  하지만 원일, 원조, 원창 등 세 삼촌은 해방 이후 1947년 좌우대립 당시 월북을 했기 때문에 삼촌들의 사망 날짜도 정확히 알지 못해 제사도 기일이 아닌 생일에 지내고 있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6·25 전까지 원일·원조·원창 삼촌들이 한 달에 세 번은 우리 집에 오셨어요. 우리 어머니(안일양)를 위로하려고요. 삼촌들이 어머니께 술·담배를 다 가르치셨어요. '형수가 아니라 누나'라면서…. 삼촌 주량이 꽤 쌨는데도 나중에는 어머니가 대작할 정도가 되셨어요. 오시면 정치 얘기도 하고, 나라 돌아가는 얘기도 하고… 어머니도 그런 사상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나 봐요. 아버지는 아나키스트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형제간 우애가 워낙 좋았으니 사상을 공유했을 겁니다.

1968년 낙동강변의 광야 시비 앞에서 육사의 딸 이옥비 여사(맨 왼쪽). (사진=이육사 문학관 제공) 201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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