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16(일) 11:00~
"바다와 시간이 빚어낸 풍경, 경주 양남 주상절리를 걷다"
오래만에 경주 양남의 주상절리를 다시 찾았다.경주와 울산의 경계가 맞닿은 이곳에 들어서니, 산과 바다가 마치 오랜 친구처럼 다정하게 마주 보고 있었다. 바닷가에 우뚝 선 주상절리 전망대는 생각보다 운치가 있었다. 전망대에 올라서자 발아래로 펼쳐지는 푸른 바다와 오랜 세월 파도에 몸을 맡겨온 주상절리가 한눈에 들어왔다.이 아름다운 풍경도 한때는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양남 주상절리 일대는 오랫동안 군사작전지역으로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었다. 바닷가를 따라 삼엄한 경계가 이어졌고, 일반 시민들에게는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던 중 2009년 군부대가 철수하면서 조금씩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그때부터 이곳의 바다는 시민들에게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첨단 감시장비가 해안을 빈틈없이 지키고 있다.바다를 향한 경계의 방식은 달라졌지만, 그 덕분에 사람들은 철조망 너머에 감춰져 있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군사시설이 떠난 자리에 자연이 시민들에게 다시 돌아온 셈이다.
주상절리 둘레길을 천천히 걸었다.약 2천만 년 전, 뜨거운 용암이 차가운 바닷물을 만나 식어가면서 만들어졌다는 주상절리. 오각형과 육각형의 돌기둥들이 마치 누군가 정교한 조각칼로 다듬어 놓은 듯 바닷가에 길게 누워 있었다.바위 하나하나가 자연이 빚어낸 작품이었다.사람은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지만, 자연은 아무 말 없이 수천만 년 동안 한 장의 작품을 완성해 왔다. 파도는 오늘도 그 작품 앞에서 철썩철썩 박수를 치고 있었다.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와 비교하면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주상절리 전망대가 들어서고 둘레길이 정비되었으며, 주차장과 카페와 음식점도 하나둘 들어섰다. 이제는 가족과 연인, 사진가와 여행객들이 찾아와 바다를 바라보며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관광명소가 되었다.자연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지역 주민들의 삶도 함께 이어지고 있었다.둘레길을 걷다 보니 멀리 현대자동차 인재개발원이 눈에 들어왔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그곳을 바라보니 문득 지나온 세월이 떠올랐다.퇴직한 지 시간이 흘렀지만, 저곳을 바라보는 순간 마음 한편에 옛정이 피어올랐다.청춘의 시간과 땀, 함께했던 사람들의 얼굴과 수많은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다시 가슴 깊은 곳으로 물러갔다.세월은 사람을 떠나보내지만, 장소는 기억을 붙잡고 있는 모양이다.한때는 자동차와 공장, 일터를 오가며 바쁘게 살았지만 이제는 천천히 걷는다. 예전에는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면, 지금은 길 위의 풍경을 바라보며 걷는다. 바위 하나, 풀잎 하나, 파도 한 번에도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주상절리 둘레길을 걷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사람의 역사도 자연의 역사 앞에서는 아주 짧은 한순간에 불과하구나.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모든 것이 영원할 것 같지만, 수천만 년의 시간을 품은 바위 앞에 서면 인간의 삶이 얼마나 짧고 귀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아직 도로가 좁고 주차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마저도 이곳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느껴진다. 너무많은 것이 들어서지 않고, 바다와 바위와 바람의 여백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경주 양남의 바다는 오늘도 말없이 시간을 이야기한다.바위는 오래 살았고 파도는 오래 노래했으며 사람은 이제야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았다.오늘 나는 역사책을 읽듯 주상절리 둘레길을 걸었다.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오래 기다려주었구나.이제야 다시 만나러 왔다.”경주와 울산의 경계에서 산과 바다가 서로의 어깨를 기대고 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자연이 남겨놓은 시간의 흔적과, 내 삶에 남아 있는 세월의 흔적을 함께 바라보았다. 주상절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파도는 변함없이 바위를 어루만지고 있었다.사람만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풍경도 세월을 품고 깊어지는 모양이다 . 글/채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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