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15(토) 10시 / 울산문화예술회관
"태극기 물결 속에서 다시 만난 광복의 기억"
1974년, 초등학교 5·6학년 무렵이었다. 8월 15일 광복절이 되면 방학 중에도 초등학교5,6학년 학생들은 광복절 행사에 참석을 해야 했다.시골의 작은 학교였던 가은초등학교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운동장 한 복판에 뺴곡히 줄을 서서 들었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도 있었지만 어린 마음에는 솔직히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행사보다 왕복 약 20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 오가던 길이었다. 그때는 광복절 행사가 국가적인 기념일이었고, 학교에서도 정부의 지시에 따라 고학년 학생들이 행사에 참여했던 시절이었다. 가은초등학교만의 특별한 일이 아니라 당시 많은 학교에서 비슷한 모습이 있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나는 다시 광복절 행사장에 서 있습니다. 최근 울산광역시에서 열린 광복절 행사에 벌써 다섯 번째 참석했다. 예전과는 참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시청과 구청의 공무원들, 군인들, 적십자 봉사원들, 대학생들이 자리를 함께했고, 행사장에는 작은 태극기를 손에 든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태극기가 일제히 흔들렸다. 하얀 바탕 위에 선명한 태극 문양과 네 개의 괘가 물결처럼 이어지는 모습.그 순간 어린 시절 가은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보았던 태극기가 문득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광복이 무엇인지, 나라를 되찾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지금 그 태극기 앞에 서니, 광복은 단순히 역사책 속 한 줄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부모와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지켜낸 소중한 자유였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울산에도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고헌 박상진 의사가 있고, 소몽 채기중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이름이 오늘의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도 조국을 위해 헌신한 분들의 이름이 한 분 한 분 호명되었다. 그 이름들이 울려 퍼질 때마다 가슴 한편이 숙연해졌다.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후손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감사인지도 모르겠다. 행사의 마지막에는 광복의 기쁨을 되새기는 만세삼창이 이어졌다. 제9대 울산광역시 의장이신 이영해 의장께서 아주 딱부러지는 목소리로 시민 모두가 우렁찬소리로 만세삼창으로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독립 만세!”
“울산시민 만세!”
그리고 모두가 함께 노래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운동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동안 태극기는 힘차게 펄럭였다.어린 시절 왕복 20리를 걸어 광복절 행사에 참여했던 어린 초등학교 학생이 어느새 세월을 건너 오늘의 광복절 행사장에 서 있다.그때는 교장 선생님의 훈시 말씀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날의 기억 하나하나가 마음속에서 조용히 말을 건넨다.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고, 자유가 있어야 오늘의 삶이 있다.” 행사를 마치고 나는 사진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진 속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희생이 담겨 있었다. 한 장의 사진을 바라보고, 한 분의 이름을 읽으며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생각했다.1975년 가은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흔들던 작은 태극기와 2026년 울산 광복절 행사장에서 다시 흔들었던 태극기. 그 둘 사이에는 참으로 긴 세월이 흘렀지만, 태극기가 품고 있는 뜻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의 태극기는 어린 소년의 손에 있었고, 오늘의 태극기는 한 사람의 가슴에 들어와 있었다.광복절은 해마다 찾아오지만 그날의 의미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깊어진다. 어린 시절에는 행사였고, 지금은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역사는 다시 우리의 오늘이 되었다. 태극기 물결이 지나간 행사장을 바라보며 나도 조용히 마음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독립 만세!”
“울산시민 만세!”
그리고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선열들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올립니다.글/채희동







울산 출신으로 아전에서 출발해 종2품 동지중추원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조선 시대 외교관입니다. 태종·세종 대에 여러 차례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되어 수많은 조선인 포로를 송환하고 왜구의 침략을 방비하는 등 외교적 업적을 크게 남겼습니다.(울산문화예술회관 관복을 차려입고 의자에 의젓하게 좌정한 모습의 청동 좌상 형태이며, 받침돌에는 '忠肅公學坡李藝先生像(충숙공학파이예선생상)'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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