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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취미활동(挑戰)/▶인문학공부(人文學)

힘의 오만을 넘어서~

by 사니조아~ 2026. 4. 9.

26.4.10(목) 雨
"힘의 오만을 넘어, 제발 공존의 길로"

바람과  봄비를 동반한 비가 내린다. 내일쯤 배낭을 메고 신불산, 간월산 등산을 하려 했으나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약 4주만 컴활 2급 교육이 오늘에야  종강(終講)을 했다. 오늘 신문사에 배급된 새벽신문을 보니 참으로 가관(可觀)이다.   “정의와 공정은 힘이 균형을 이룰 때만 성립한다.” 최근 하루하루가 유가 인상 등  초미(焦眉)의 관심으로 중동전쟁이 휴전을 한다 해서 이제 한숨을 돌려나했으나 또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아무런 예고도 없이 미사일로 휴전(休戰)을 무시하고  전쟁을 가했습니다. 고대의 통찰은 오늘의 세계에서도 유효하다. 힘이 압도하는 순간, 정의는 쉽게 침묵(沈默) 한다. 강자는 가능한 것을 실행하고, 약자는 감내(堪耐) 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 비극적 구조가 여전히 국제정치를 지배한다. 고대 그리스가 경계했던 휴브리스(Hubris)는 오늘날에도 반복된다. 권력과 성공이 축적(蓄積) 될수록 자기 확신은 비대해지고, 타자에 대한 공감은 축소된다. 그 결과, 타인의 고통은 ‘노력 부족’으로 축약(縮約) 되고, 복잡한 역사와 조건은 삭제된다. 개인의 일상에서도, 국가 간 관계에서도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세계는 두 개의 전쟁을 목도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되었고, 중동에서는 폭격과 보복(報復)이 일상을 잠식했다. 무너진 도시에 내리는 재와 비, 봉쇄된 바닷길, 삶의 터전을 잃은 민간인들. 이 참혹한 장면 앞에서 “완전한 승리”라는 수사는 공허하게 울린다. 전쟁에는 진정한 승자가 없다, 오직 더 깊어진 상처만이 남는다. 강대국의 행태는 종종 ‘질서유지’와 ‘안보(安保)’라는 이름을 내세운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반복되는 것은 힘의 과시와 선택적 정의다. 국제 규범은 상황에 따라 해석되고, 약소국의 생존은 협상 카드로 전락한다. 이것이야말로 휴브리스 (Hubris) 의 전형이다. 강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대로 실행하는 것이고 약자는 비참 하지만 응당 굴복하는 법이다."
이것이 어제 오늘날의 세상사 이치다.
스스로를 기준으로 세계를 재단하고, 타자의 삶을 수단화하는 태도.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기본으로의 회귀(回歸)이다.

첫째, 힘의 자제. 군사력의 사용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며, 그 정당성은 국제사회 앞에서 엄격히 검증되어야 한다. 둘째, 공감의 회복. 전쟁의 숫자 뒤에 있는 얼굴을 보아야 한다. 민간인의 생명과 존엄을 중심에 두는 인도주의 원칙은 어떤 이해관계보다 앞서야 한다. 셋째, 다자주의의 강화. 일방적 결정보다 국제기구와 다자 협의를 통한 해결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평화를 만든다. 그리스 비극은 오만(傲慢)이 파국으로 귀결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오늘의 세계가 그 교훈을 외면한다면, 비극은 반복될 뿐이다. 강대국의 힘이 절제와 책임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정의와 공정은 이름뿐이 아닌 현실이 된다. 전쟁이 아닌 협력, 지배가 아닌 공존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 우리가 선택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우리가 남긴 잿더미 위에서 같은 질문을 반복할 것이다. 어서 빨리 전쟁이 없기를  구축해야만 한다.  유가가 올라가니 모든 공산품 든, 대형마트는 눈치를 아래위로 보며 연구를 하고 있다. 어서 빨리 손에 손 잡고 강대국은  조건 없이 전쟁을 중단하고 꽃이 활짝 핀 봄이 왔는데 화해의 손길을 내밀길 바란다.  채희동/글 

  울산문화예술회관에 전시한 작품 

  전쟁으로 인한 한 도시가 폭염에 휩싸인 불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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