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7
양산산림교육원에서 교육시간에 본 다큐 민둥산의 기적을 아주 감명있게 봤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선경지명한 분이시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국립산림과학원 안에 있는, 홍릉숲 최장수 나무이자 산증인인 1892년생 반송 앞에서 산림녹화UNESCO등재추진위원회 이경준 위원장(가운데)과 본부장들이 등재추진을 위한 결의를 다지고 있다

한국 산림녹화는 세계가 배워야 할 모범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계속되고 있지만 홍릉숲 사단법인 산림정책연구회 사무실에는 늘 임업 1세대가 모인다. 1950년대 우리 국토의 58%는 사막화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황무지였다. 예부터 내려오는 봉산·금산·금송 등의 전통은 식목보다는 숲과 나무를 보호하는 정책이었다.
이런 정책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가난이 확산하면서 무력화됐다. 조선말 이미 망가지기 시작한 우리의 산림은 일제강점기 송탄유를 생산하기 위해 소나무 뿌리까지 캐가는 산림 수탈로 피폐화되고 6·25전쟁으로 더욱 파괴됐다. 이승만정부도 산림녹화에 공을 들였지만 피란민으로 증가한 인구가 필요로 하는 연료림과 전후 복구에 필요한 목재 자원의 수요를 충당해야 하는 형편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1967년 산림청을 발족하고 1973년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수립하면서 본격화한 산림녹화는 불과 반세기 만에 한국은 산림률(국토 면적 대비 산림 면적)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핀란드, 스웨덴, 일본 다음으로 세계 4대 산림 강국이 됐다. 이제 우리나라는 인도네시아, 몽골, 미얀마 등 20여 개국의 산림녹화를 지원하는 공적원조 제공국가이기도 하다.
이 추진위원장은 우리나라 산림녹화 과정을 ‘세계사적인 환경운동’이자 ‘민초 조림’으로 정의한다. 환경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레스터 브라운 미국 지구정책연구소 소장은 ‘문명을 구하기 위해 모두 나서자’라는 부제를 단 자신의 저서 <플랜B 3.0>에서 “한국은 여러 측면에서 다른 국가들에 조림사업의 모범이 됐다”고 썼다. 산림녹화의 결과뿐 아니라 빈곤과 식량, 환경 등 여러 문제를 함께 해결했다는 평가가 담긴 말이다.
브라운 소장은 2013년 8월 3일 방영된 KBS <다큐 공감-민둥산의 기적>에 출연해 “이 프로그램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방영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산림녹화는 위기에 닥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세계가 배워야 할 모범으로 꼽고 있다는 이야기다.


"민둥산의 나라에서 산림강국으로 대한민국 산림녹화, 인간 의지의 승리"
한국은 한때 ‘조립단계의 국가’로 분류되던 나라였다. 세계적인 환경정책 연구기관인 지구정책연구소(Earth Policy Institute)의 설립자 레스터 브라운 소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한국을 언급하며, 불가능해 보였던 조건 속에서 국가적 도약을 이뤄낸 보기 드문 성공 사례로 평가했다. 그중에서도 세계가 가장 놀라워한 성과는 단연 산림녹화였다
한국전쟁 직후의 산하는 처참했다. 우리는 흔히 그 시절을 “붉은 산에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라 표현한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붉은 민둥산은 단지 볼품없는 풍경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재난의 근원이었다. 비가 조금만 내려도 산사태와 토사 유출로 하천과 강바닥이 높아져 홍수가 발생했고, 논밭은 매몰되어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반대로 가뭄이 들면 산과 계곡은 순식간에 말라붙었고, 흉년은 일상이었다. 당시 산림의 저수능력은 지금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해, 물 부족과 생태계 파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나무는 생존의 문제였다. 그러나 나무를 심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이승만 정부 시절에도 식목일 제정과 조림 정책이 추진되었지만, 재원과 경험의 부족, 병충해와 잦은 수해, 그리고 무엇보다 생계를 위한 벌목 앞에서 성과는 미미했다. 겨울을 나기 위한 땔감은 아궁이로 사라졌고, 나무 한 토막을 팔아 현금을 마련해야 했던 시대에 조림은 사치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결국 생계형 도벌은 기업형 도벌로까지 번졌고, 지리산마저 민둥산이 될 위기에 놓였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것은 국가적 결단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새마을운동을 통해 산림녹화를 국가 생존 전략으로 격상시켰다. 이는 단순한 나무심기 운동이 아니라, 행정력과 치안력, 과학기술과 주민 참여를 결합한 총체적 국가 프로젝트였다. 현신규 박사를 비롯한 산림학자들의 연구 성과, 양묘 사업과 유실수 재배를 통한 농가 소득 증대, 독림가 지원 제도, 대체연료 개발과 보급, 묘목이 뿌리내릴 때까지 관리하는 교차검목 제도까지 촘촘한 정책이 이어졌다.
그 결과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69년까지만 해도 UN은 한국의 산림 황폐화를 “치유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1982년 FAO 보고서는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복구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라고 선언했다. 레스터 브라운 역시 저서 『플랜 B 2.0』에서 한국의 산림녹화를 “세계적 성공작”이라 극찬했다. 불가능의 상징이던 민둥산의 나라가, 이제는 세계가 배우고자 하는 산림강국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4위의 산림강국으로 평가받는다. 더욱 주목할 점은 경제성장과 산림복구를 동시에 이뤄낸 유일한 나라라는 사실이다. 영국과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들조차 산업화 과정에서 산림을 잃은 뒤에야 복원을 논했지만, 한국은 성장과 녹화를 병행했다. 이는 정책의 힘이자, 국가 목표에 공감하고 헌신한 국민의 힘이었다.
민둥산의 가난한 나라에서, 지구 환경 회복을 논하는 선도국가로. 대한민국 산림녹화의 역사는 단순한 환경정책의 성공을 넘어, 인간의 의지와 공동체의 힘이 역사를 바꿀 수 있음을 증명한 인간 승리의 기록이다. 이 자랑스러운 경험은 이제 한국만의 자산이 아니라,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전 세계가 함께 나눠야 할 희망의 교과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