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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여정(旅情)/▷국내여행(Dom)

새마을운동 역사관

by 사니조아~ 2025. 11. 28.

25.11.27
절친(切親) 외식이 얼굴 뵈로 구미를 찾았습니다. 80년초 구미는 문경으로가는 길목, 금오산(8회)을 오르기 위해 구미를 몇번 왔던기억이 납니다.구미 하면 삼성전자(주)경리부 여직원과 펜팔을 했던 기억이 전부입니다. 그 아가씨는 함창 상지여상 출신인데 지금도 미련이 있습니다. ㅎㅎ 구미하면 박정희생가가 있었지만 사실 그쪽으로 발길이 가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가, 문학관 있으면 갈수도 있었는데 정말 오래만에 구미와서 즐거운시간을 보냈습니다.  절친 신외식이가 구미코로롱에서 정년퇴직을 했다하여 외식이 에겐 삶의 전부나 다름 없는 곳이기도 하고 점심먹고 차 마시고 외식이가 안내 하는 곳으로 즐기고 왔습니다. 새마을운동 역사관이라는 박물관처럼 되어 있더군요. 내 평생 처음으로 박정희생가와 새마을운동 역사관을 찾았습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전쟁과 피난등으로 정치적으로 이승만, 박정희로 연결되는 정치는 사실 민주적이지 못했다. 그럴수 밖에 없는  실정도 이해는 되나 장기집권을 하다 보니 그게 문제가 된걸로 알고 있다. 어려운 처지에 시골은 빈곤하고 도시 마저도 썩 좋은 교육환경 기계산업이 그이 황무지나 다름없은 열악환 환경에 기계공업과 중화학 공업이 발전되어 갈 무렵 울산은 기반적으로 이미 밑 바탕이 깔려 있어서 성장동력이 다른 기타도시에 비해 월등이 앞 지른것은 사실인데 노동자를 앞 세우고 노동법 하나 제대로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경제 성장에 밑거름은 사실 울산, 창원, 마산,의 제조업 이였습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가꾸세' 라는 노래는 온 국민이 다 알고 있을것입니다.   일명 새마을운동이 발판이 되었습니다.공장에서 인력을 팔다보니 노동법은 사실 뒤전이 였습니다. 독일 광부에서 독일 간호원으로 달러를 벌어 오는것이 우선이 였습니다. 박정희정신은 새마을 운동과 겸동하는 사상이나 다름이 없었잖아요 . 인문계 고등학교 보다는 실업계, 기계과 상업부기, 주산 인문계를 비인기 종목이 였습니다.

통일벼이야기, 새로운 흙담길을 허물고 벽돌로 담장과 삽짝껄을 만들던 이 어려운 시절을 우리는 기억을 합니다. 그 당시만해도 '국토의균형개발'을시키는 문구가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대통령이 그런 생각을  한것은 멋진 아이다어 아니겠어요.마지막으로 박정희 前대통령 비석을 돌고 나오는데 8.15경축사 도중에 '문세광'이라는사람에게 故육영수 여사를 잃은 심정은 얼마나 비통하고, 하늘이 무저지는 심정을  비문 쓰인 詩 한편을 읽고 정말  마음이 찹찹하고 순간 감정이 거석했습니다. 우리사회에 이와 같은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되지만 지금도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무력과 폭력으로 한 사람을 목숨을 잃게 하려고 하는것은 잘못 된일입니다. 허술한 보안체계의 한계앞에 나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른 저른 사유로 구미 새마을운동 역사관을 찾았지만 울산박물관에 전시된것과 일치 한것도 발견 할수 있었습니다. 잘 왔다는 생각을 남기고  박정희 생가에서 처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참배(參拜)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85년도 입사한지 얼마 안되서 부서를 대표하여 차트를 가지고 분임조발표대회에서 입상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게 계기가 되어 어린나이에 부서에서 발표하는것은 내 몫이 되었습니다. 지나고 나니 내 인생에 큰 대들보가 되었습니다. 약10년간 공장혁신활동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것도 분임조 제안활동 6시그마 활동 등이 회사의 비용을 줄이는대 기여를 한것 같습니다. ^^^ 

  경주남산 칠불암 신선암 부처님 좌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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