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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여정(旅情)/▷문화예술(藝術)

통도사 여시문(如是門)

by 사니조아~ 2025. 8. 20.

25.8.18[화] 18시
식사후  통도사  암자인  비로암,극락암,지장암을  다녀왔습니다.통도사 비로암(毘盧庵) 입구에는 여시문 (如是門) 이라는 현판을  '경봉스님'께서 쓰셨는데 검은 바탕 위에 힘찬 필체로 쓰인 이 세 글자는, 얼핏 보면 누구라도 쉽게 읽기가 너무 어렵더군요.  그러나 그 뜻을 알고 나면 마음 깊이 울림을 줍니다.

如是(여시)란 불교 경전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여시아문 (如是我聞, 나는 이렇게 들었다)”의  “여시”에서 비롯된 말이다.

國語辭展을 펼처보니  이렇게 설명을 해 났더군요.
如(여): 있는 그대로, 진실 그대로
是(시): 옳다, 그러하다

즉, 여시문은 “부처님 진리 그대로 들어가는 문” 이라는 뜻을 지닌 상징적인 이름입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 비로암에 걸린 이 현판은 그만큼 특별한 의미를 품고 있다.  그런데 대중들과 소통하라는 부처님 말씀과 너무 어려워  많이 불편했습니다.

이번 사찰 순례는 산림경영기술지도과정 교육생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중에  함께 하자는 선생님께서는  종교는 서로 달라도  불교를  이해를 하시는 견문이 넓어셨습니다. 문화적 가치와 한국사 의 뿌리를 느끼며 함께 길을 걸었다.

비로암에서 법당에 들리고 난후 , 이어 극락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공양이 끝난 뒤였고 , 공양보살님들도 자리를 정리한 뒤라, 고요한 법당 안을 잠시 둘러보고 나오는 형식이 였습니다

극락암은 한때 경봉스님 시절, 통도사의 큰 그늘 아래 함께 호흡하던 도량이었습니다. 그 역사를 떠올리며 걸음을 옮기니, 어느새 자장암으로 향하는 산사 길에도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영축산 저녁놀은 이미 사라졌지만, 산사의 고요함 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자장암에 도착해 간단히 기념사진을 남기고, 다시 길을 내려와 ‘에밀레’에 들러 회양(懷暘)하며 하루 순례를 마무리했다.

이번 순례는 단순한 산사 탐방이 아니라, 부처님의 진리를 마주하는 문(如是門) 앞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종교를 떠나,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고요한 산사, 여운이 남는 발걸음.오늘 하루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통도사 절문을 나와  에밀레 카폐에서 회양식을 했습니다. 함께 하신분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여시문 如是門 [경봉스님 친필]
               이 여시문은  극락암도  있습니다.

상사화

1.창건 배경
비로암은 통도사의 산내암자 중에서도 오래된 역사와 수행 전통을 이어온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와 조선 시기에 걸쳐 통도사가 크게 번창하면서, 산내 여러 암자들이 선·교·율 수행을 나누어 담당했는데, 비로암 역시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2. 이름의 의미
비로(毘盧) 는 비로자나불의 약칭으로, 진리 그 자체이자 온 우주의 본체를 상징합니다.
즉, 비로암은 “진리의 빛을 머금은 도량”, “법신불의 세계를 닮은 암자”라는 상징을 지닙니다

3. 역사적 위치
영축산 자락에 자리한 비로암은 통도사 본사보다 한층 고요한 산중 수행처로, 오랫동안 선승들이 안거를 지내고 참선수행을 이어온 도량입니다.

조선 후기 '경봉스님' 같은 고승들의 가르침을 받들던 도량 으로, 수행자들에게는 마음을 닦는 “청정한 도량”으로 기억됩니다.

4. 현판 ‘여시문(如是門)’
입구에 걸린 여시문은 불교 경전의 첫 구절 여시아문
(如是我聞) 에서 따온 것으로, “진리 그대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비로암이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경전의 진리와 수행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임을 상징합니다.

                                자장암 관음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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