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10
– 20년 만에 다시 찾은 영남루 –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무려 20년 만에 영남루를 다시
찾았습니다.밀양 마라톤 하프코스를 달린 뒤, 현대차 마라톤 회원들과 함께 강변길을 따라 걸어 올라던 기억이 남니다.
마라톤으로 땀을 쏟고 난 뒤라 그런지, 영남루에 오르자마자 불어오는 강바람이 그야말로 시원했습니다.
밀양강 위에 걸린 누각은 예전 그대로 우뚝 서 있었고, 2층 마루에 올라서니 강과 산, 시내가 한눈에 펼쳐져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20년 전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풍경만 눈에 들어 왔는데, 오늘은 그 세월 속에서 변한 나 자신과, 여전히 변치 않은 영남루의 위용이 함께 느껴졌습니다.
회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강물에 비친 누각을 바라보며 잠시 쉬어갔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 오릅니다.
달리기 후의 뿌듯함,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 같은 풍경, 그리고 함께한 동료들의 웃음소리까지…
오늘 하루는 그 자체로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영남루 밀양강 절벽 위의 누각 “여기가 바로 영남루 (嶺南樓)입니다." 영남루는 조선시대 조선 3대 누각 중 하나로 꼽히는데, 다른 둘은 평양 '부벽루'와 진주 '촉석루'입니다.
이곳은 예부터 관동팔경 못지않은 절경을 자랑하여, ‘영남 제일루’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습니다.”
1. 위치와 풍경
“보시는 것처럼, 영남루는 밀양강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래로는 강이 유유히 흐르고, 멀리에는
아리따운 산세가 펼쳐져 있죠.특히 아침에는 강물 위로
안개가 피어올라, 마치 수묵화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줍니다.조선의 수많은 시인과 선비들이 이곳을 찾아 시를 짓고 술잔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2. 역사
“영남루의 역사는 고려 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원래는 밀양객사의 일부로, 지방을 찾은 중앙 관리들이
머물거나 연회를 열던 곳이었죠. 현재의 건물은 조선
숙종 34년(1708년)에 중건된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높은 기단과 넓은 마루, 기둥들이 웅장하게 서 있는 모습이 당대 목조건축의 위엄을 잘 보여줍니다.”
3. 건축 특징
“영남루는 팔작지붕을 올린 2층 누각 구조입니다.
1층은 기단부 역할을 하고, 2층 마루에서는 사방이 탁
트여 강과 산,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특히 기둥이 60여 개나 되는데, 모두 나무결이 곧고 고르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처마 끝 풍경이 맑게 울리고, 마루에 앉으면 강바람이 그대로 스쳐 지나가죠.”
4. 문화적 가치
“영남루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영남 선비문화의 상징이었습니다. 과거에는 과거시험을 치른뒤 합격자
들이 이곳에 올라 시를 읊었고, 군사적 관측소 역할도 했습니다. 또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는 군사 집결지로 활용되기도 했죠.”
5. 지금의 영남루
“오늘날 영남루는 밀양 시민들의 사랑을받는 휴식처이자 관광객이 반드시 들르는 명소입니다.
특히 봄에는 밀양강 둔치의 벚꽃, 여름의 푸른 물결, 가을
단풍, 겨울 설경까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습니다.
저녁 무렵에는 강 건너에서 바라본 영남루의 야경이 장관을 이룹니다.”
💬 “자, 이제 저기 마루 위로 올라가서 직접 강을 내려다 보시죠. 마루에 앉아 있으면, 조선시대 시인들의 심정이 절로 느껴질 겁니다.”












열심히 육조단경 불경을 공부하더군요.














영남루 주요 현판 문구 및 설명
1. 嶺南樓 (영남루)
가장 중앙에 걸린 현판으로, 당시 명필 송하(松下) 조윤형(1725–1799)이 1788년경 64세에 쓴 것으로 전해집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 느껴지는 행서체가 특징입니다.
특히 이 건물 중창 당시, 이인재 밀양부사의 아들 이현석이 7세 때 쓴 동일한 글씨도 내부에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2. 嶺南第一樓 (영남제일루)
‘영남에서 제일가는 누각’이라는 뜻이며, 이현석의 형 이증석이 11세 때 쓴 글씨입니다.
3. 江左雄府 (강좌웅부)
‘낙동강 왼쪽의 웅대한 고을’이라는 의미입니다. 현판은 서예가 귤산(橘山) 이유원이 썼습니다.
4. 嶠南名樓 (교남명루)
‘문경새재 이남 지역에서 명성이 높은 누각’이라는 뜻입니다. 역시 귤산 이유원의 작품입니다.
5. 江城如畵 (강성여화)
‘영남루 앞의 강과 읍성이 마치 그림 같다’는 의미입니다.
6. 顯敞觀 (현창관)
‘영남루에 오르니 사방이 높고 넓게 보인다’는 뜻입니다.
7. 湧金樓 (용금루)
‘높은 절벽 위에 우뚝 솟은 아름다운 누각’이라는 의미입니다.
문화적 의미와 가치
영남루에는 9개에 이르는 대형 현판이 걸려 있으며, 세월의 흔적과 함께 누각의 역사와 서예적 예술성을 보여주는 현판 전시장이라 불리울 정도입니다.
각 현판은 여러 서체와 작가의 필치, 그리고 시대의 미감이 공존하는 문화예술의 현장이자, 역사적 가치가 담긴 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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