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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취미활동(挑戰)/▶Raido- HAM(햄送受)

'26년, 어린이전파교실

by 사니조아~ 2026. 8. 13.

26.8.12(수) 13:00
'26년, 어린이전파교실 다녀와서~ (부산과학관)
"전파는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잇는 다리였습니다"
2026년 여름방학, 울산, 부산전파관리소가 주관하고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울산본부와 부산본부가 후원한 '26 어린이 전파교실' 이 부산과학관에서 열렸습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약 4시간 동안 전파의 원리와 아마추어무선(HAM)의 세계를 소개하고, 다양한 무선통신 체험을 함께하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강의를 총괄하신 DS5GJS OM께서는 첫 질문부터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과연 전파, 즉 빛의 속도는 1초에 얼마나 갈까요?" 잠시 정적이 흐른 뒤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답을 찾으려 했고, 이어 "빛은 1초에 지구를 약 7바퀴 반을 돈다."는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의 눈은 금세 동그래졌습니다. 다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그럼 지구 한 바퀴는 몇 km일까요?" 지구의 둘레는 적도 기준 약 40,075km. 여기에 7.5를 곱하면 약 300,562km,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빛의 속도 약 30만 km/s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순간 과학 수업은 자연스럽게 수학과 연결되었고, 아이들은 숫자 속에서 전파의 위대함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울산본부에서는  DS5KIH 울산본부장, DS5ATY 전 본부장, HL5JAC, HL5BZJ, 6K5CMY,6K5EKI , 6K5CRS  여러 아마추어무선사가 참여하여 다양한 통신 방식을 직접 설명했습니다.먼저CW(Continuous Wave) 는 일정한 주파수의 전파를 끊었다 이어 보내며 모스부호(ㆍ, ―)로 통신하는 가장 전통적인 전신 방식입니다. 짧은 신호와 긴 신호만으로도 세계 어느 곳과도 교신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이어FM(Frequency Modulation)은 음성에 따라 전파의 주파수를 변화시켜 통신하는 방식으로, 잡음이 적고 선명한 음질 덕분에 생활 무전기와 아마추어무선에서 널리 사용된다는 점을 설명했습니다.또한 SSB(Single Side Band)는 반송파와 한쪽 측파대만을 이용하여 전력과 대역폭을 절약하는 고효율 단파 음성통신 방식입니다. 특히 USB(Upper Side Band)와 LSB(Lower Side Band)의 차이와 사용 주파수 대역까지 소개하며 단파 통신의 원리를 이해하도록 도왔습니다.디지털 시대의 대표적인 통신 방식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DMR (Digital Mobile Radio)는 음성과 데이터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여 무전기나 인터넷 핫스팟을 통해 세계와 연결하는 방식으로, 깨끗한 음질과 효율적인 통신이 특징입니다.이어 D-STAR는 일본아마추어무선연맹(JARL)이 개발한 디지털 음성·데이터 통신 규격으로, 호출부호(콜사인)를 기반으로 인터넷과 연동하여 전 세계 무선사와 교신할 수 있는 첨단 시스템이라는 점도 소개했습니다. 기술적인 설명만으로도 어느덧 세 시간 반이 훌쩍 흘렀습니다. 즉석에서 Vox DMR로 프랑스에 살고있는  'F4ETA'  Mr.Suave gerard 분과 짧게 교신하는 모습을  장면도 함께 했습니다.
                       
학생들의 수준은 저마다 달랐고, 같은 내용을 세 번, 네 번 반복해서 설명해야 했습니다. 목은 점점 잠겨 갔지만, 아이들의 "왜요?", "어떻게요?"라는 질문 앞에서는 피곤함보다 보람이 먼저였습니다.그 순간 새삼 깨달았습니다.좋은 선생님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내용을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특히 현직 김천중학교 과학 교사이신 6K5XZE 정철화 국장님께서 평소 학생들을 가르치며 흘리셨을 땀과 노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부산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행사를 이끌어 주신 DS5KIH 울산본부장님, 함께 봉사해 주신 울산, 부산본부 임원진과 모든 아마추어무선사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보이지 않는 전파는 국경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 줍니다.그리고 그날 부산과학관에서는 전파보다 더 빠르게 아이들의 가슴속으로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미래를 향한 꿈이 퍼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전파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잇고, 세상을 연결하며, 미래를 향한 꿈을 전하는 가장 아름다운 다리임을 아이들과 함께 다시 한번 확인한 소중한 하루였습니다. 부산과학관을 둘러보던 중, 세 분의 위대한 과학자 앞에서 자연스레 걸음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의 삶과 업적을 마주하는 순간, 과학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풍요롭게 하며, 나라의 미래를 밝히는 희망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환자들에게도 따뜻한 손길을 내밀며 우리나라 간암 수술의 새로운 길을 연 장기려 박사 앞에서는 생명을 향한 숭고한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의술은 기술을 넘어 사랑과 헌신임을 몸소 보여주신 참된 의사였습니다. '씨앗으로 희망을 열다'라는 말처럼, 우장춘 박사는 종(種) 연구와 품종 개량으로 우리 농업의 근대화를 이끌었습니다. 한 알의 씨앗 속에 국민의 식탁과 나라의 미래를 담아낸 그의 열정은 오늘날에도 깊은 감동을 전해 줍니다. 그리고 장영실 앞에서는 더욱 큰 경외심이 들었습니다. 세종대왕 시대에 측우기와 해시계 등 뛰어난 과학기술을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과학을 실현한 그의 창의력과 도전정신은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유산입니다. 세 분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 보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시대는 달랐지만 세 분 모두 자신의 재능을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국민과 나라를 위해 바쳤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과학은 사람을 위한 것이고, 위대한 업적은 따뜻한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부산과학관에서 다시 한번 배웠습니다. 그분들이 남긴 빛나는 정신은 앞으로도 우리 모두의 길을 밝혀 주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글/채희동 

장기려 박사, 사랑으로 걸어온 의사의 길
한평생 칼을 들었지만, 그의 손끝에는 돈보다 따뜻한 사랑이 먼저 있었습니다.
박사. 그는 뛰어난 의술을 가진 의사였지만,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보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곁에 머물렀습니다.일찍이 그는
“의사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짐을 평생의 삶으로 지켜냈습니다. 1943년, 국내 최초로 간암 환자의 간 절제술에 성공하며 우리나라 간장외과의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1959년에는 대량 간 절제술에도 성공하며 뛰어난 의술을 세상에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수술실 안의 뛰어난 기술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한국전쟁의 포성이 이어지던 1951년,
부산 영도에 피란민과 가난한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세웠습니다. 그곳이 오늘날의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으로 이어졌습니다.
그에게 병원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아픈 사람에게 희망을 건네고, 가난한 사람에게 마지막 손을 내미는 곳이었습니다. 치료비가 없어 퇴원하지 못하는 환자가 있으면 밤늦게 병원 뒷문을 열어 몰래 나가도록 도와주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때로는 자신의 월급으로 환자의 치료비를 대신 내주기도 했습니다. 1968년에는 “건강할 때 이웃을 돕고, 병났을 때 도움을 받자”는 뜻으로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세웠습니다. 가난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그의 뜻은 훗날 우리나라 의료보장제도의 발전에도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는 의술의 명예도, 부도 탐하지 않았습니다. 평생 자신의 집 한 채 마련하지 않고 병원 옥상의 소박한 사택에서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의사였지만 의사 이상의 사람이었고,
학자였지만 지식보다 사랑을 먼저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1979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라몬 막사이사이상 사회봉사 부문을 수상하며 그의 삶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2006년에는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장기려 박사에게 가장 소중한 훈장은 화려한 상이나 명예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병든 사람이 다시 웃으며 병원을 나서는 모습, 가난한 이가 치료받고 삶의 희망을 되찾는 순간, 그것이 그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훈장이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의술이 수많은 생명을 살렸고,
한 사람의 사랑이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살렸습니다. 장기려 박사가 남긴 길은
의사가 걸어야 할 길만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기억합니다. 가난한 이의 곁에서 평생을 낮추어 살았던 의사, 의술보다 인술을 먼저 생각했던 사람, 그리고 자신의 삶으로 사랑을 증명했던 사람. 장기려 박사.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병원도, 의학적 업적도, 수많은 상도 아닌 “사람을 살리는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가르침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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