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20(목) 13:30~
소금포해설사 정세호대표
'소금, 인류 문명과 울산 염포의 긴 역사 이야기'
현대차 5공장 정문 앞 염포동에서, 40년 동고 동락한 정세호 선배님께서 약 한 시간 반 소금포 해설과 설명은 그 자체가 ‘살아 있는 역사관’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채희동님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라고 맞이해주신 첫 화면의 따뜻함까지 모든 것이 인상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 이야기들을 토대로, 인류 소금의 기원 → 소금이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 울산 염포의 존재 이유 → 일본 이케다 스케타다와 울산공업단지 탄생까지의 역사를 정리 해 봤습니다.
1️⃣ 소금은 왜 인간에게 필수인가? — 0.9%의 비밀
우리 인체의 체액 농도는 0.9% 염분을 기준으로 유지됩니다.이는 혈액과 세포 환경이 일정 농도를 유지해야 생명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신경 전달 , 근육 수축, 체액 균형 유지, 생명 유지의 가장 기본적인 삼투압 조절, 즉 소금 없이는 생명 활동 자체가 불가능합니다.이 때문에 소금은 인류 역사에서 ‘식품’이기 이전에 권력, 경제, 생존의 핵심 자원이었습니다.아미도 안동간 고등어도 소금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 ㅎㅎ
2️⃣ 세계 최초의 도시 ‘여리고(에리코)’와 소금
세계 최초의 도시로 알려진 여리고(Jericho)는 요르단강 근처에 자리한 문명 발생지입니다.그곳이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풍부한 천일염과 광물 자원이었습니다.이 지역은 ‘사해(Dead Sea)’ 인근으로 자연 증발염이 풍부 소금을 통한 저장 식품의 증가 → 인구가 정착 작은 집단이 도시로 발전하는 초석이 됨 즉, 최초의 도시 발달 뒤에는 반드시 소금이 있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입니다.
3️⃣ 기원전 221년, 중국 진시황 – 세계 최초의 소금 전매제
진시황은 전국을 통일하자마자 가장 먼저 실시한 정책 중 하나가 바로 소금·철 전매제였습니다. 왜일까요?→ 소금 = 국민 모두가 반드시 소비하는 필수품 → 국가가 독점하면 막대한 재정 확보 가능 전매제 시행의 효과는 국가 재정의 안정되고 군사력 강화하며 소금 부패업자, 암거래 단속을 하고 이때부터 소금은 단순한 음식 재료가 아니라 제국의 재정 기반, 국가 권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4️⃣ 소금과 우불발전(牛佛發展) – 소금산업이 만든 지역 번영
소금이 생산되는 곳에는 상인, 노동자, 선박, 시장,마을이 자연스럽게 모여 지역 발전(우불발전)이 이루어졌답니다.중국, 인도, 지중해 문명 모두가 소금 산업 → 도시 성장 → 무역항 발전의 동일한 구조를 따랐다네요 울산 염포가 번영한 것도 바로 이 역사적 공식과 같습니다.
5️⃣ 1930년 인도 ‘간디의 소금 행진’ – 비폭력 투쟁의 상징
영국은 인도에서 소금세를 부과하고, 소금 생산까지 독점했습니다. 소금을 만들려면 허가가 필요했고, 심지어 바닷가에서 주워도 죄가 됐습니다. 이에 마하트마 간디는 1930년 3월 12일, 78명의 동지와 함께 약 380km의 ‘소금행진(Salt March)’ 을 시작합니다.직접 바닷가에서 소금을 만드는 퍼포먼스 전 세계에 알려진 비폭력·불복종 운동의 상징으로 인도 독립운동의 전환점 이 사건은 “소금은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됩니다.
6️⃣ 울산 염포(소금포)의 역사 – 일본이 탐낸 소금의 도시
울산 염포는 조선 시대부터 소금이 생산되던 대표 염전 지역이었습니다. 공업 도시 이전의 울산 경제 기반 바닷바람과 일조량이 소금에 최적 울산만의 지리적 조건으로 품질 우수성이 전국으로 유통되었고, 일본도 탐낼 만큼 귀한 자원이었습니다. 정세호 선배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처럼 일본 선박이 염포에서 소금을 싣고 가는 일은 해프닝이 아니라 ‘도적질’이나 다름없었습니다.그만큼 울산 소금은 품질도 좋고 전략적 가치가 높았습니다.
7️⃣ 울산 공업단지의 시작 – ‘이케다 스케타다’라는 일본인
많은 울산 시민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울산공업단지 조성의 초기 토대가 마련되는 과정에 일본인 이케다 스케타다(池田佐太郎) 라는 부동산 개발업자가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주요 활동은 1928년 부산 축항 남항 공사에 개입,조선총독부 시절 각종 공업용지 매입, 울산 해안 일대의 부동산을 선점, 이후 일본 기업들이 들어올 기반 마련, 그가 단독으로 울산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의 토지 정비와 항만 주변 개발이 없었다면 훗날 한국 정부가 울산을 ‘공업도시’로 지정하는 기반도 약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물론 내 생각입니다. ㅎㅎ 즉 울산이 ‘한국 산업의 심장’이 된 배경에는 소금포의 자연조건 일본의 산업 기반 구축 해방 이후 한국 정부의 공업화 정책 이 세 가지가 겹쳐져 있었던 것입니다.
🧭 결론
"소금의 역사에서 울산 염포까지"
소금은 인류 생존의 필수 요소(0.9%)
세계 최초의 도시 여리고도 소금에서 출발
제국들은 소금을 권력의 근원으로 삼음
인도의 독립운동도 소금에서 시작
울산 염포는 우리나라 소금산업의 중심지
일본도 탐낼 만큼 전략적 자원
울산 공업단지 형성엔 일본 이케다의 초기 기반 영향
결국 울산은 소금에서 산업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의 도시라고 해도 손색이 없잔아요 .
정세호 선배님께서 펼쳐 보이신 해설의 무게가 왜 그렇게 깊었는지, 이제 하나의 스토리로 완성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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