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08.12.29(월) 12:40
대상 : 통도사 자장암
경상남도 양산시(梁山市) 하북면(下北面) 지산리(芝山里) 영취산(靈鷲山)에 있는 사찰. 통도사에 딸린 암자로
신라 진평왕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 회봉(檜峰)이 중건하였고, 1870년(고종 7) 중수되고, 1963년
용복(龍福)이 중건하였다.
법당과 자장전 사이 암벽에는 통도사에서 유일한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데, 높이가 약 4m에 달한다. 1896년 조성
되었다는기록이 새겨져 있다. 또한 법당 뒤쪽 석벽에 석간수(石間水)가 흐르는 작은 구멍이 있는데, 자장율사가
신통력으로 구멍을뚫고 2마리의 개구리를 들어가 살게 했다는 설화가 있다. 지금도 몸은 청색이고 입이 금색인
한 쌍의 개구리가 있으며, 이 개구리는 절대 산문(山門)을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 외에도 금개구리에 대한 많은
설화가 남아 있다.
사찰은 부처님의 탑과 절이 있는 곳으로 그 형상을 모시기도 하고, 경전이나 사리를 모시기도 합니다. 경전을
모신 곳으로는 해인사, 사리를 모신 곳으로는 통도사가 대표적인데 이는 불교의 3가지 보물을 칭하는 3보 중
두가지 입니다.
이런 사찰에는 공부를 하시는 즉 수양을 하시는 스님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배하는 중생들이 많이 출입을
하고 스님들이 이 중생들을 위하여 경을 읽어 주기도 하시고 축문을 하여 주기도 하시며 법문을 하기도 하고
질문에 답을 하여 주기도 합니다. 가끔씩은(부처님 탄신일 등) 공양을 베풀어 식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통상은 이런 사찰에 승방이 한쪽편에 마련되어 있어서 스님들이 평소에는 수양도 하시고 쉬시기도 하시다가
참배객들이 오면 경을 읽어 주시고 승방에서 함께 법문을 하시거나 담소를 나누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규모가 큰 사찰인 때에는 참배객이 많아서 하루종일 붐비게 됩니다. 그리고 거의 매일 참배객
들이붐비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스님들은 당연히 사생활도 없고 쉴 수도 없습니다. 스님들도 아직 성불을
하신 것은아니어서 부끄러운 것도 있고 숨기고 싶은 것도 있을 터인데 365일 단 하루 한 순간도 쉴 수가 없고
사생활도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면 수행을 하기가 매우 어렵겠지요. 도력이 매우 높으신 분이라면 별 문제가 안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일반 학승들에게는 매우 큰 두통거리일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큰 사찰에서는 경치 좋고 조용한 곳에 자그마한 암자를 지어 예배도 하고 수양도 합니다. 그 마저도
번거로우신 분들은 더 깊은 산속에 들어가 모옥을 짓거나 동굴같은 곳에서 수양하시기도 하는데 그런 곳도 나중에는
다 절을 지어 암자가 되기도 하고 사찰이 되기도 합니다. 이는 암자도 마찬가지인데 처음에는 도력이 높으신 분들이
조용히 수양을 하시던 곳인데 그런 분들이 열반하시고 나면 아무개가 계시던 곳이다 하고 소문이 나서 점차 향화객들이
늘어나게 되고 오는 향화객들을 오지 말라고 쫒아낼 수도 없으니 점차 사찰처럼 되어 나중에는 사찰과 거의 분간이
안가게 됩니다. 아마도 님께서 질문을 하신 것은 그런 이유인 듯 합니다.
통도사는 신라시대 때 자장율사께서 창건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곳에서 매우 먼 곳에 자장암이라는 곳이
있읍니다. 자장율사께서 나중에는 그 곳에 머무셨다고 하는데 그 때에 그 곳에 먼저 와서 살고 있던 금개구리를
잡아서 바위속에 구멍을 뚫어 집을 만들어 주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그마한 모옥이었겠지만 지금은
번듯한 사찰의 규모가 되었습니다. 백련암이라는 곳도 있는데 이곳은 해인사의 성철스님 이전에 불가의 최고
어른으로 도승으로 알려져 있으며 열반하실 때에도 실제로 하늘의 기적이 일어났던 경봉스님이라는 분이 머물며
수양하시던 곳입니다.
이분이 살아계셨을 때에는 순서가 경봉-성철-월하의 순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마어마하게 커져서 거의
본사인 통도사에 비견될 정도라고 합니다.그리고 그토록 규모가크고 향화객이 많다면 암자라고 하기엔 쑥스러울
것이고 예전에는 암자였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지요!
그리고 말사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포교의 목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사찰을 세워 승려들을 파견하거나 그런 사찰들과
협력하여 승려들을 보내 중생들을 교화하는 곳으로 이런 곳은 암자가 아니고 사찰이며 말사라 부릅니다. 그러나 이런
말사들도 나중에는 규모가 커지고 승려들이 늘어나 독자적인 포교능력을 갖추게 되면 독립된 사찰이 되는데 통도사
인근의 내원사같은 곳을 들 수 있는데 지금은 그 규모가 오히려 통도사를 능가할 만큼 큽니다.
무엇이든 세월이 흐르면 변하는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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