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12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368
주암정은 주암(舟巖) 채익하(蔡翊夏),선생님은
나한테 11대 조부(組夫)님입니다.
그러니까 348년 전이야기 입니다
1573-1615, 현종(顯宗)14년(1673)
계축 (癸丑)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三等)) 선생을
기리기 위해 인천채씨 후손들이 세운 정자입니다..
주암정기를 토대로 살펴볼 때 대체적으로 지금으로
부터 70여년 전인 1944년에 건립한 것으로 보여진다.
건물 양식은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아담한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평면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1칸씩을
둔 중당협실형인데 대청의 전면에는 4분합
들문을 설치하여 마루와 방의 기능을 복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마루방을 이루게 하였다.
그리고 전면으로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으며,
툇간의 전면에는 평난간을 설치하였다. 가구는
오량가의 홑처마집이며 전면 기둥의 상부에는
초익공으로 장식하였다.
건물은 매우 잘 관리되고 있으며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차양을 하기위해 처마에 양철을
달아낸 것이 흠이라면 흠이라 할 수 있다.
주암 채익하 선생은 자(字)가 비언(?彦),
호(號)가 주암(舟巖)으로 나재(懶齋) 채수(蔡壽,
1449~1515) 선생의 6세손이며 교위(校衛)
채극명(蔡克明)의 아들이다.
성균관 생원을 지냈으며 학덕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후손인 채홍탁(蔡鴻鐸)이 지은 주암정기(舟巖記)에
서는 주암정이 지어진 내력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웅연(熊淵)의 남쪽에 큰 바위가 있어 형상이 배와 같은데
벼랑을 다듬어 길게 매어놓았다. 옛날에 우리 선조 상사
(上舍) 부군(府君)이 일찍이 시내를 거슬러 오르며 노닐고
즐기면서 시를 지어 자신의 뜻을 붙였다.
이로 인해 주암(舟巖)으로 이름하였으나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찍 돌아가셨다. 그 후에 이 바위를
지나며 노닐던 일들이 모두 사람은 갔지만 이름은
남아있게 되었다.
熊淵之南有大巖形如舟而治崖長繫昔吾先祖上舍府君嘗??
遊賞題詠寄意因以舟巖爲標號竟未?
志而早世後之過此巖遊此巖者咸有人去名存之盛






주암정 정면 네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있다.
舟巖萬古泛錦川 주암만고범금천 주암은 금천에 만고를 떠 있고
絶壁橫松倒立奇 절벽횡송도입기 소나무는 절벽에 넘어질 듯 매달렸네.
顯祖醉月遊賞處 현조취월유상처 그 선조가 달에 취해 노닐던 자리에
賢孫羹墻築小亭 현손갱장축소정 어진 후손 작은 정자 세워 추모의
정을 더하네.
500여년전 주암 채익하 선생은 이곳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때로 돌아가 주암선생을 만나지 않더라도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 하다.
자신만의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고, 주변사람들과 함께나누는
아름다운 모습과 자연에 순응해, 자연과 함께하는 공간의
형성이야 말로 진정한 선비의 안빈낙도에 대한 개념이
아니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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