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6.10.12
제목 : 라인홀트 메스너 (Reinhold Messner)
울산에 울산 복합 헬빙센타에 라인홀트 메스너 (Reinhold Messner)
(63세) 대 강연이 있었다. 셰계산악문화재 첫 해를 맞이하여 나름 도전과
성공의 신화 답게 라인홀트 메스너 (Reinhold Messner)초청강의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히말라야 14좌 완등한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한 오스트리아계
이탈리아인 라인홀트 메스너(63)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산과 사막과 인생은 어떻게 보면 서로 비슷할지 모른다. 끝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번 가본 사람도 다시 가보면 조금은 익숙할지 몰라도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곤 한다. 더욱이 인생은 반복이 없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이 되돌리지 못하는 인생의 시간 대부분을 산에 바친 위대한 산악인이 있다. 현존하는 산악인 중에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단순한 산악인으로서 업적 뿐만 아니라 그가 겪었던 산에 대한 느낌과 감회, 경외감, 내면의 사색 등을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겨 산악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그가 낸 책만 해도 20권이 넘는다. 인류 최초로 8000m 이상 히말라야 14좌 완등한 산악인이자 모험가, ‘산악계의 살아있는 전설’ 등으로 불리는 오스트리아계 이탈리아인인 라인홀트 메스너(63)가 바로 그 인물이다.
그가 이번엔 2000㎞가 넘는 고비사막을 6주 동안 홀로 걸어서 횡단하고 그 기록과 내밀한 고백을 또 책으로 냈다. 2004년 5월 배낭, 특수 제작된 물통, 위성항법장치가 내장된 시계만을 지닌 채 동고비 사막의 바얀트우카를 출발, 유목민들의 천막집을 전전하면서, 목동생활을 하는 유목민의 도움으로 텅 빈 사막을 걸어서 가로지르는 6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무(無)로의 여행, 마음으로의 여행 〈내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황금나침반 刊)란 책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책 서문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고비사막 횡단은 25년 전부터 열망하던 일이었다. 나를 찾거나 필요로 하는 사람,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비로소 내 안에 자리한 사막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하루 16시간씩 50㎞를 걷는 강행군을 한 메스너는 스스로 “내 실행 능력과 고통 극복 능력의 한계에까지 가보는 여행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70년 세계 9위봉
(8,126m)를 오를 때 동상으로 발가락 6개를 자르는 아픔을 겪었다. 이어 90년 남극탐험 사상 최초로 걸어서 남극 대륙 2,740m를 횡단할 때 발목이 부러진 상황에서 무려 수십㎞를 걷는 불굴의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그의 발은 당시 입은 상처로 엄지 발가락과 발등을 연결하는 뼈가 튀어나와 걷는데 불편함과 아픔을 동시에 겪고 있다.
42세 나이로 로체(8,516m)봉 등정.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4개를 16년에 걸쳐 세계 최초로 마무리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메스너가 가지고 있는 기록은 세계 최초의 히말라야 14좌 완등 말고도 15차례의 무산소 등정과 7차례의 루트 개척 등이 있다. 메스너는 자연과 직접 호흡하기 위해 산소통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집단 등반이 아닌 한 두 명만이 자일 파트너로 참여해 직접 장비를 짊어지고 등정하는 알파인 스타일의 개척자로도 유명하다. 그의 등반업적 뿐만 아니라 산에 대한 그의 소회와 삶의 자세는 또한 어떤가. 감동이 넘친다. 세기의 철인(鐵人)이 아니라 철인(哲人)의 수준이다.
“탐구해야 할 것은 산이 아니라 인간이다. 나는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기 위해 오른 것이 아니다. 그랬으면 성공의 보장을 위해 처음부터 쓸 수 있는 모든 기술을 동원했을 것이다. 나는 이 자연의 최고 지점에서 자기 자신을 체험하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에베레스트의 장대하고 준엄한 모든 것을 내 팔에 안고 싶었다.
이런 일을 산소마스크의 힘을 빌려서는 할 수 없다. 나는 처음부터 유토피아에서 살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의사와 물리학자와 등산가들의 논쟁의 초점이던 8,848m의 고봉 에베레스트의 무산소 등정의 가능성이 바로 나의 유토피아였다.” “나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 그 대신 산으로 가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너무 많은 답을 기대한다. 산은 모든 사람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 그 곳에는 매일 새로운 답이 있다.”
“인간이 살지 않는 지구위의 별천지! 그러나 이 오지에는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이 있으며, 숲과 야생화와 초원의 천국이다.” “나는 산을 정복하려고 온게 아니다. 또 영웅이 되어 돌아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난 두려움을 통해 이 세계를 알고 싶고 또 새롭게 느끼고 싶다.”
“등산의 진정한 예술은 살아남는 것이며, 가장 어려운 시점은 그 때까지 전형적인 등반업적으로 여겨졌던 것을 이루어내면서 자신이 한 단계 더 전진하려고 시도할 때이다. 그 전엔 아무도 존재하지 않던 곳으로, 어느 누구도 따르고 싶지 않은 곳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전진하는 것이거나 심지어 자신이 하고자 노력하는 바가 도대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한 미지의 지역에선, "잘 길들여진" 땅으로부터의 어떠한 감동과 감각, 경험보다도 단연 더 큰 긴장과 집중을 가져다준다.”
“걸어갈수록 사막은 더 넓어졌다. 목적지이기를 사양하는 것 같았다. 사막은 정상이 있는 산과는 달리 열려있을 뿐이고, 피안의 희망처럼 내 안에 있었다. 그러니까 어떤 장소의 명칭도 사막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목표지향적인 열광도 맞지 않았다. 사막은 형태도 없었다. 다만 통째로 경험하거나 피할 수 있을 뿐이었다.”
“도움을 바라면 겁이 나기 마련이다. 황무지에서 자신의 불안에 내맡겨진 사람은 미쳐 버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한계를 넘어가는 모험을 하자면 방치된 상태를 겪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죽음이 삶에 속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죽음은 설령 멀리 있다 하더라도 사막에 가는 조건부에 선택이며, 그러한 두려움이 없는 모험은 결코 모험이 아니다.” “외로움은 기다림과 더불어 켜져서 나의 용기를 꿀꺽 삼켜 버릴 듯하다가 걸어가는 동안 줄어들었다. 다만 저녁때가 되면 무거운 짐처럼 다시 나를 덮쳤다. 매일 아침마다 그 고독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했기 때문에 나는 날마다 내몰리는 자가 되었다.”
“살다보면 누구나 에베레스트보다 더 높은 생의 고비를 만난다. 인간이 거주하지 않는 세계, 시간을 잃은 세계, 아무 것도 없는 무(無)의 고향에서 마음의 쉼을 얻다.” 그의 등반에 대한 자세는 다음과 같은 이 한가지의 모습으로 전부 보여질 수 있겠다.
지난 1988년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캐나다 캘거리에서 벌어진 제15회 동계올림픽대회에서 세계 14좌를 최초로 완등한 그와 폴란드의 예지 쿠쿠츠카에게 올림픽 메달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자, 그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등반에서는 싸우는 상대도 없고, 심판도 있을 수 없다. 단지 나 자신과의 싸움이 있을 뿐이다.
메달을 받는다는 것은 등반이 경쟁임을 자인하는 것과 같다. 수영이나 스키 등은 경기지만 산을 오르는 것은 경기가 아니다. 그리고 산을 오른다 해도 루트가 각기 다른데 어떻게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있겠나. 이것이 내가 수상을 거부했던 이유이다.”
그의 인생은 모험, 그 자체였다. 그는 90년 2월엔 아르베트 푸크스와 더불어 남극 탐험사상 최초로 걸어서 남극대륙 2,749㎞를 횡단했으며, 93년엔 동생 후베르트와 함께 최초로 그린란드 설원 2,000㎞를 90일 동안 남북으로 종단하기도 했다. 티베트 동쪽, 서고비사막 등을 횡단 등도 걸어서 횡단했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유럽의회 의원으로도 5년간 활동한 그는 어쩌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착민이 아닌 유목민의 성향을 끝까지 내비치고 있다. 유럽의회 의원을 관두고 나선 이번 고비사막 2,000㎞ 횡단이 어쩌면 그의 생에 마지막 여정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나이, 신체 상황 등을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의 인생이 끝날 때까지 그는 이 지구상을 누비고 다닐 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러다 인생의 마지막을 맞았을 때 그는 무슨 말을 한마디 남길까? “난 내 인생을 성실히 살았다?” “난 내 인생을 후회하지 않게끔 살았다?” “신은 산에도, 사막에도, 어느 곳에도 없었다. 신은 오로지 자기 자신 안에 있다?” 아니면 아예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조용히 사라질까.
그의 삶에 안주하지 않는 자세, 모험심, 불굴의 도전 정신 등은 지금 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것 같다. 그의 삶을 보통 사람들은 한번 뒤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세계 최고봉 히말라야 14좌는 다음과 같다.
01. 에베레스트 (Everest ) 8,848m 네팔/중국 02. 케이투 (K2) 8,611m 파키스탄/중국 03. 캉첸중가 (Kangchenjunga) 8,586m 네팔/인도 04. 로체 (Lhotse) 8,511m 네팔/중국 05. 마칼루 (Makalu) 8,463m 네팔/중국 06. 초오유 (Cho Oyu) 8,201m 네팔/중국 07. 다울라기리 (Dhaulagiri) 8,167m 네팔 08. 마나슬루 (Manaslu) 8,163m 네팔 09. 낭가파르밧 (Nanga Parbat) 8,125m 파키스탄 10. 안나푸르나 (Annapurna) 8,091m 네팔 11. 가셔브룸1봉 (GasherbrumⅠ) 8,068m 파키스탄/중국 12. 브로드피크 (Broad Peak) 8,047m 파키스탄/중국 13. 가셔브룸2봉 (Gasherbrum Ⅱ) 8,035m 파키스탄/중국 14. 시샤팡마 (shisha Pangma) 8,012m 중국
14좌 발견 이후에 발견된 8,000m급 이상 되는 고봉을 합쳐 요즘은 16좌라고도 합니다.
15. 얄룽캉 (Yalung Kang) 8,505m 네팔 16. 로체샤르 (Lhotse Shar) 8,400m 네팔/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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