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3.4.13~14(1박2일)
행선지 : 의성 고은사
떠난사람 : 정세호, 박득자, 이영옥, 박영옥, 류경자, 임윤경, 금강덕, 채희동 .
주관 : 울산불교청년 한마음회 일원
제목 : 13년 4월 10대명찰 사찰순례 1번쨰 의성고은사
목적 : 불자들간의 신심을 쇄신하며 부처님의 법을 따라 올바른 신심을 찾아가고 더 나아가 친목을 도모하는 행진
행동 : 108배
죽비 : 정세호 염주 : 류경자
촬영 : 채희동
경전기도 : 박득자
이동수단 : 스타랙스 12인승 1대 (운전 정세호 부회장)
음식 : 사전 음식을 준비하여 현장에서 실시 함.
스타랙스 한대에 8명이 탑승 울산을 출발 동명휴게소에서 미리준비 해 간 아침식사를 했다.
경비를 줄이자는 차원도 있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것은 자리를 펴고 버너에 불을 피워 밥을 퍼고
국을 떠서 설거리를 하는 것도 작은 기도에서 출발 하는것 처럼 서로 서로 누구 누구 할것 없이
착착 손 발이 맞게 행복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우리 회에서 늘 일인 3역으로 몸을 아끼지 않는
정세호 부회장 ^^^ 일명 혈액형이 운전형이라고 자칭하고 말씀 하신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웃자는
것이고 그 만큼 사찰 순례에 대한 안전과 모든것을 책임을 진다는 의미가 더 크다...
고은사에 도착하여 다 열거 하기가 뭣 할 정도로 신명나는 기도와 108 관세음 보살 정근이 시작
되었고 그 의미 또한 크다. 계획을 실천 할수 있을까 한것도 오늘의 숙제이다.. 류경자 법우님은
염주를 돌리고 세호 형님은 사찰순례의 의미를 설명하고 한 사람도 낙오자 없도록 동참을 협조 하며
죽비 소리는 고은사 법당을 한올 한올 돌아 갔다.
중략 ^^^
아래는 설명서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이신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부용반개형상(연꽃이 반쯤 핀 형국)의 천하명당에 위치한 이 사찰은 원래 高雲寺였다. 신라말 불교와
유교ㆍ도교에 모두 통달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여지ㆍ여사 양대사와 함께 가운루(경북 유형
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를 건축한 이후 그의 호인 孤雲을 빌어서 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풍수지리사상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켜 세웠으며
그 당시 사찰의 규모가 五法堂十房舍(5동의 법당과 10개의 요사채)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약사전의 부처님
(보물 제246호)과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경북 문화재자료 제28호)은 도선국사께서 조성하신 것들이다.
특히 고운사는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리는 지장보살영험성지이다. 옛부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고 하는데 지장보살님의 원만자비하신 풍모는 물론이거니와 명부십대왕의
상호와 복장도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위엄과 정교함을 자랑한다.
일제시대에는 조선불교 31총본산의 하나였고 지금은 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에
산재한 60여 대소사찰들을 관장하고 있다. 사세가 번창했을 당시에는 366간의 건물에 200여 대중이 상주했던
대도량이 해방이후 쇄락하여 많은 사찰재산이 망실되고 지금은 이십여명 대중이 상주하는 교구본사로는 작은
규모의 사찰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10여년전부터 중창불사의 뜨거운 원력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낡은 건물들을 수리 및 단청하여 지금은 위풍당당한
본산의 위상과 소박하고 절제된 수행지로서의 이미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정도 규모 이상의 고찰로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 고운사는 민가로부터 3km 정도 떨어져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을 자랑하며 일주문에 이르는 솔밭 사이 비포장길은 부처님께 진실된 마음으로 다소곳이 다가서는 불자들의
마음처럼 포근하고 정감넘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청정하고 엄격한 수행가풍을 자랑하는 고금당선원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을 비롯한 고운사의 모든 대중들은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대승불교의 참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새벽의 찬공기를 가르며 부처님전에 발원을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