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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여정(旅情)/▷문화예술(藝術)

김유신 묘

by 사니조아~ 2024. 3. 29.

일시 : 2019.4.2(화) 15:00
탑방 : 김유신 장군 묘 (:595∼673)
정의 : 경상북도 경주시 충효동에 있는 신라 삼국통일명장 김유신 묘

경주 단석산 산행을 하고 내려 오는길에 이곳 김유신 장균 묘소를 들렸습니다.
진입로가 비 좁고 나름 전망이 너무 좋은 곳 이기도 합니다.

경주 소화산 줄기가 동쪽으로 뻗어 전망이 좋은 구름 위의 울창한 소나무 숲에 자리
하고 있고 포항에서 내려 오는 강이 연결되어 동국대 경주 켐페스를 지나 언양천으로
연결된다.

내가 태어날 무렵 1963.1.21 사적 21호로 지정되었다.
수학여행코스이고 역사와 사회교과서에 등장은 하지만
사실 김유신 장군 묘소는 첨 탑방을 했습니다.  

문화해설사의 얘기를 빌리자면 “김유신 장군을 흥무대왕으로
추봉하였는데, 그 능은 서산(西) 모지사() 동향()한
산봉에 있다”고 하였으니 곧 태대각간()  지금으로
말하면 국무총리격에 해당 된다고 합니다.

한편,『삼국사기』에는 “문무왕이 그의 부음을 듣고 채백() 1천필과
조() 2천석을 증부()하고 군악고취() 100인을 보내
금산원()에 예장()하고, 유사()로 하여금 비를 세워

기공()을 기명하고, 민호()를 배정하여 묘를 수호하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전에는 이 묘 아래에 수묘()의 금산재()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없어졌다. ‘태대각’이라 새긴 신라비편()이
경주 교동에서 발견되어 김유신의 기공비편()으로
추정되기도 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이 비편에 의해 김유신이 죽자 당시 문무왕이 왕명으로
예를 갖추어 후대한  예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아울러 기공비가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석비는  1710년(조선 숙종 36)에
경주부윤() 남지훈()에 의해 건립된 것이다.

문인석, 무인석, 석상() 등은 모두 수년 전 보수할 때 첨가된
후보물()들이다.  그런데 학계 일각에서 이 무덤은 김유신묘가
아니고 신무왕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다

 

김유신묘는 지름이 30m에 달하는 원형의 큰 무덤이다. 봉분 둘레에는
둘레돌〔〕을 두르고 그 외곽에는 바닥에 깐돌〔〕을 깔았으며,
돌난간〔〕을 둘렀다. 둘레돌은 대체로 통일신라시대 왕릉의
둘레돌과 같은 양식으로서 벽석()·연헌석(), 연대석()
으로 짜여 있다. 둘레에는 95㎝ 높이의 탱주석()을 세웠는데
소면석()과 신상석()을 교대로 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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