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19
경북의 BYC(봉화, 영양, 청송)
경북 북부지역은 강원도를 젖히고 아직도 접근이 어려운 오지로
남아있는 곳이 더러 있다. 알파벳 이니셜로 BYC로 일컫는 봉화,
영양, 청송인데 그 중에서도 '영양군 수비면 수하리 오무마을'이
더 이상 갈 수 없는 탄광의 막장 같은 곳이다.
각설하고,
울산에서 새벽 같이 출발하여 3시간을 부지런히 달려 영양
자작나무숲 안내센터에 도착하여 몸을 부린다. 산간지대로
추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봄날이다. 주말 휴일인데도 방문객이
보이지 않고 우리 일행 뿐이다.
주차장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걷는다. 심호흡을 크게 한다.
코 속으로 스며드는 산공기가 청량하다. 골짜기로 흘러내리는
눈 녹은 개울물이 깨끗하기 이를데 없다. 산의 골격이 그대로
들어낸 앞산 이마를 짚어 보고 얼음풀린 시냇물 손 담가보니
심장 맥박소리 경쾌하고 손 끝엔 봄빛이 물들어 온다.
입춘이 지났다고 하나 골 깊은 곳엔 아직 겨울이 누워 있다.
그것도 아주 두터운 솜이불 같은 얼음을 덮고서...
그 모습이 마치 고집 센 노인의 표정 없는 얼굴 같다.
걷는 산길 주변 곳곳에 고로쇠 나무들은 하얀 링거주머니를
허리에 꿰차고 웅담을 채취하는 곰처럼 말간 수액을 눈물처럼
흘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고로쇠 수액 채취를 좋아하지 않는다.
몸에 좋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갑자기 흡혈기가
연상된다면 나만의 무리한 비약일까?
가다 쉬다 얼마쯤 걸어 올랐을까.어느 순간, 홀연히 눈앞에
나타난 자작나무 숲을 만난다. 유독 다른 나무들보다 이른
시기에 잎을 떨어내고, 저 멀리 흰 기둥과 흰 가지만으로
빛나는 자작나무는 영혼의 뼈를 발라낸 듯 하늘 높이 솟아 있다.
단 하나의 이파리까지 모두 지상에 내려놓은 빈 나무가 아름드리의
부피감 없이도 저리 빛날 수 있는 것은 자작나무의 어떤 힘 때문일까.
어둠과 빛이 한데 스며들어 그 경계조차 허물어진 산기슭에서
자작나무는 홀로 빛난다.
하지만 그 빛은 적막을 품어 눈부시지 않고 다만 고요할 뿐이다.
자작나무 숲에 하얀 겨울바람이 분다. 바람에 색깔이 있다면 이곳에
부는 바람은 분명 하얀 바람이었을 게다. 빽빽하게 무리지어 선
나무들이 서로의 가지를 붙들고 있다.
혼자서는 매서운 바람과 찬 서리를 견딜 수 없어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선 것일까. 칼바람에 생채기가 났는지 마른 나무껍질은
쩍쩍 소리라도 낼 듯 등짝이 거칠게 갈라져 있다. 터진 수피 속으로는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저 많은 나무들이 함께 살아가는 숲에서 자작이 유독 빛날 수 있는
것은 한 계절 너끈히 견뎌준 남루한 껍질을 스스로 벗고 북풍한설에
여린 속살을 단단히 여물게 했기 때문일 게다.
흰 몸통의 군데군데는 저희들끼리 몸을 부딪쳐 가지치기한 자리인
양, 흉터처럼 남아있는 옹이가 유난히 크고 짙어 보인다.
거대한 자연의 품에 한 그루의 옹골찬 나무로 우뚝 서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아픔이 고스란히 배어든 듯하다.
먼 곳에서 바라보았을 땐, 그저 신비롭고 아름답게만 보였던
자작나무 숲. 가까이 다가와 보니 이제야 알겠다.
저 빛나는 둥치를 갖기 위해 얼마나 혹독한 바람을 맨몸으로
맞섰을지, 부러진 가지가 스스로 낸 아린 상처 자국에 얼마나
숱한 시간의 겹을 덧입혔을지 비로소 알겠다.
숲에 군락을 이룬 자작나무는 하늘 높이 우뚝 솟아오르고도 내려보는
일이 없고, 앞에 서서도 뒤에 선 나무들의 배경이 될 줄 을 안다.
서로 경쟁은 하지만 같이 살아가는, 그래서 더 충일한 존재감이 되는
나무, 함께 있어 아름다운 것들은 ‘나’를 버리지 않고도 ‘우리’가 된다는
것을 자작나무 숲이 내게 넌지시 일러주는 듯하다.
자작나무 숲을 돌아 나오는데 누군가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목소리는 이 거대한 자연의 품에서 단지 하나의 사물로써 존재하는
내 이름을 나직이 불러주었고 그는 내가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자리에다
나를 주저앉혔다.
어떠한 대상도 여기서는 고요히 서 있거나 앉아 있는 하나의 물상에 지나지 않았다.
자작나무들의 들숨은 마침내 땅속의 먼 뿌리까지 닿고, 그곳을 돌아 나온 힘찬
날숨은 온 산맥을 굽이치며 함께 출렁인다.
몸살을 앓던 긴 겨울의 동굴을 나서며 얼었던 햇살이 녹아내리면서
반짝이는 눈부심에 현기증이 인다. 언땅 녹으면서 앓는 신열도
사나흘 꽃바람이 불면 잦아질 것이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내 안의 그가 기지개를 펴고 하품을 하려 한다.
2월은 겨울과 봄 사이의 휴지기다. 인고의 시간을 지난 모든 생물에게
잘 견디었다고 반가움의 안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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