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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여정(旅情)/문화예술(藝術)

오릴적 문화 전통

by 사니조아~ 2024. 2. 5.

멀어져가는 우리들의 어린 시절 풍경이 있다.

이제 그 모습들은 우리의 뇌리 에서는 이미 사라졌고

문득문득 뜻하지 않은 곳에서 한 번씩 만나게 됩니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일 것이며

가슴이 그 모습을 잊지 않고 있었기에 그 모습 속에서

우리는 향수와 추억을 떠올린다.

 

그럴수록 추억은 깊어만 가고

향수는 끝간데 모르고 달려가고

우리의 어린 시절 다시 돌이킬 수 있다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지금부터 함께 그 시절로 빠져 보겠습니다.

 

 

처마 밑에는 장작이 쌓여 있고  추녀 밑에는 씨앗이 될 곡식들을 말렸습니다.

 

나뭇단의 모습이 정겹다.

우리들은  적어도 저런 나뭇단을 서너개는 거뜬히 지는 장사였다. 

우리 어린 시절만 해도 다듬이질 하시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고생을 뒤로하고 이제는 다듬이 질을 마치 무슨 음악정도로 느끼는 세월이 되었습니다. 

 

등잔불이 아무리 밝아도 촛불만 못했고 촛불이 아무리 밝아도 30촉짜리 백열등보다 못했지요.

그러던 것이 60촉 100촉짜리 백열등을 이어 형광등과 네온사인과 적외선 형광등까지 나왔습니다.

세상의 변화가 그렇게 빠른데도 아직 우리 가슴속에는 등잔의 추억이 남아 있습니다. 

 

 

삼림감시원,

즉 똥태가 동네에 나타나면 산에서 가져온 나뭇단은 다 숨겨버리고 처마밑에는 장작만

쌓아두었습니다.

잔솔가지 같은 것은 산에서 조달하는 것이 상례였지만 장작은 시장에서도 살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망태기 만큼 용도가 많은 것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저속에 토끼풀도 들어갔고 사과나 감자도 들어갔고 벼이삭도 들어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부뚜막에 저렇게 음식상을 봐놓으시고 학교 갔다오는 우리를 기다리셨습니다.

개다리 소반과 상보....정겹지요.

 

부엌 아궁이 앞에는 언제나 저렇게 땔감이 놓여 있었습니다.

장군입니다.

물을 담으면 물장군 똥물을 담으면 똥물장군이 되었지요. 

 

구슬치기를 다마치기라고 불렀지요.

말속에서 아직 일제 시대의 잔재를 떨쳐버리지 못했던 모양이며

오색 영롱한 구슬들은 '꼬까'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맨숭맨숭 단색의 구슬보다 훨씬 귀하게 여겼지요.

 

어지간한 초등학교 3-4학년이면 저 정도는 다 혼자서 만들어 탈 줄 알았다.

언제 함께 얼음 썰매라도 같이 타보시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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