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17 / 문화일보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가수 최백호는 그야말로 옛날식 공간에 앉아 낭만에 대하여 노래한다.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이 있는 곳, 도대체 그런 위스키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도라지 위스키’ 한 잔을 파는 곳이다. 오늘날에는 마담이 도라지 위스키를 파는 옛날식은 없지만 그래도 다방은 여전히 있다. 서울만 해도 을지로, 대학로에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다방’이란 이름을 붙인 곳이 있고 각 지역에도 유서 깊은 다방이 있다.
다방이란 공간을 이해하려면 한자 ‘茶(차 다)’를 알아야 하는데 이 한자가 좀 고약하다. 뜻은 ‘차’이고 소리는 ‘다’일 텐데 ‘차’는 고유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차’ 또한 이 글자의 다른 음 중 하나이니 한자의 음이 마치 뜻인 것처럼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조상들도 식물의 잎을 뜨거운 물로 우려내어 마셨겠지만 그것을 뜻하는 단어가 오늘날에는 남아 있지 않아 이러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 글자의 비밀을 알고 나면 ‘다실, 끽다점, 찻집’ 등이 모두 기원이 같다는 사실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다방은 차를 파는 곳이어야겠지만 다방의 주된 메뉴는 커피였다. 일제강점기의 다방에서는 차나 각종 음료를 팔기도 했지만 커피가 빠져서는 안 됐다. 다방이 전성기를 누렸던 1970∼1980년대에는 저마다의 황금비율을 자랑하는 분말 커피가 다방의 주메뉴여서 오늘날까지도 ‘다방 커피’란 말이 특별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커피가 주메뉴인 다방은 아이러니하게도 커피 때문에 사라지게 되었다. 분말 커피가 아닌 ‘내린 커피’를 파는 커피 전문점, 혹은 카페에 밀려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그래도 달걀노른자가 동동 뜬 쌍화차, 혹은 비엔나의 마부들이 마시던 커피가 궁금하면 찾아갈 수 있는 다방은 지금도 주변에 있다. 그리고 백씨 성을 가진 이가 만든 다방에 가면 다방 커피를 주문할 수도 있고 청년들이 만든 다방에 가면 조화가 의심스럽지만 떡볶이와 커피를 함께 즐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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