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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취미활동(挑戰)/▶인문학공부(人文學)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

by 사니조아~ 2024. 4. 30.

24.4.30

James Dewey Watson(김명남 역),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

'운동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들면 나는 바로 드러누워 버린다.' 로버트 메이너드 허친스가 했던 유명한 말이다. 물론 과장 섞인 말이지만(허친스는 제임스 왓슨처럼 열렬한 테니스 애호가였다), 허친스는 자신에게 제일 중요한 운동은 마음의 운동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추천사) (6면)

1장 어린 시절
닮고 싶은 젊은 영웅을 찾아라
나는 1928년 시카고에서 책, 새, 민주당을 믿는 집안의 맏이로 태어났다. (12면)

나는 열한 살에 견진성사를 받자마자 일요일에 성당에 나가는 것을 그만뒀다. 대신에 아버지를 따라서 일요일 아침마다 새 관찰에 나섰다. 나는 꼬마일 때부터 새에 매력을 느꼈다. 일곱 살에 시카고 필드 자연사 박물관의 조류 학예사 리드여드 불턴이 쓴 '새와 함게 하는 여행'을 삼촌 톰과 고모 에타에게 선물 받았는데, 철새의 이동을 소개하는 어린이 책이었다. (18면)

아버지는 처음부터 내게 새를 관찰한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해두라고 가르쳤다. (20면)

2장 대학 시절

생각하는 법을 배워라
1943년 여름에 나는 시카고 대학에서 첫 강의를 들었다. (36면)
허친스는 14년 전인 1929년, 서른 살의 나이로 총장이 되었다. ... 허친스는 1931년 이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두 가지 혁신적인 발상을 덧붙였다. 하나는 통상의 교재들 대신에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다윈, 마르크스, 프로이트에 이르는 서구 문명의 명저들을 읽게 하자는 발상이었다. 역시 혁명적인 두 번째 계획은 고등학교 2학년 과정을 마친 학생들을 입학시키는 것이었다. (37면)

내 성향상 무식하게 힘만 센 것이 전부가 아닌 핸드볼 경기에 끌렸다. (40면)

새에 관심이 많아 생물학을 전공하려고 마음먹고 있던 나는, 8월의 종합 시험에서 또 B를 받자 낙담했다. 나는 차차 과학에 집중하기 시작했지만,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2학년 필수 과목들이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과목들은 탁월한 강의란 이런 것이라고 하는 잊지 못할 기억을 안겨줬다. (40면)

나는 대학 시절 내내 열정적인 탐조가였다. (41면)
하지만 나는 과학과 의학을 발전시키려면 동물 실험 이외의 대안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사람들도 대부분 같은 의견이었다. (42면)

이학 학사학위를 받게 될 1947년 6월의 학위 수여식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내가 파이 베타 카파로 선정되었다는 깜짝 소식이 들렸다. (50, 51면)

물떼새들이 호숫가를 내달리는 광경을 보면서, 어떤 진화적 압력이 있었기에 절대 단독으로 행동하지 않고 언제나 뭉쳐서 움직이는 저런 사회성 있는 동물이 탄생했는지 생각해보았다. 새들의 사회적 행동을 관장하는 일반 원칙이 존재할지, 존재하지 않을지, 그것은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51면)

조류학에 비하면 유전자에서 내가 발견해야 할 사실들은 비교적 명확해 보였다. 유전자는 틀림없이 실존하는 존재이고, 다만 어떻게 작동하는지 우리가 모를 뿐이었다. (51면)
대학은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52면)

처음에 겁이 났던 과목들을 수강함으로써 지적 영역을 넓혀라. (77면)

지적 호기심을 논문 주제에 국한시키지 말고 더 넓게 유지하라. (80면)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 온 힘을 쏟는 마라톤을 달리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나는 논문 작업을 하면서도 항상 다른 과목들을 들었다. 덕분에 대학원 시절의 경험이 풍부해졌다. 실험에서 바람직한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다른 곳에서 지적 자극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두꺼운 기말 보고서를 요구하는 수업들을 좋아했다. 그런 기회가 아니라면 주제를 파고들어  원전 논문들을 읽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트레이시 손번의 제안에 따라 독일의 생화학 유전학자 프란츠 뫼부스에 관해 썼던 보고서는 내 지적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80면)

4장 파지 연구 시절
일요일에도 일하라
현명한 사람이라도 대부분의 시간에는 진부한 생각들을 한다. (103면)

운동은 지적 우울을 몰아내는 특효약이다. (104면)

5장 젊은 과학자
대단한 목표를 설정하라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라고 느낄 만큼 대단한 목표를 설정하라. (132면)

세미나의 제목에 관심이 갈 때는 맨 앞줄에 앉아라. (133면)

과학은 극도로 사교적인 행위이다. ....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수다는 일상이다. 집단에 속해 새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한다면, 한 손을 등 뒤로 묶고 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36면)



6장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원

시대에 앞선 목표를 선택하라



세상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장엄함과 독특한 지적 스타일을 예감하면서, 나는 1951년 가을 케임브리지에 도착했다. (140면)

대부분의 역사에서 케임브리지 대학은 아주 분권적인 조직이었다. 학생들의 교육은 거의 전적으로 기숙 칼리지에서 이루어졌다. 가장 우대한 칼리지는 헨리 8세라는 압도적인 후원자가 뒤를 봐주었던 트리니티 칼리지였다. 트리니티의 그레이트 코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젊은 뉴턴이 살았던 방이 있다. 뉴턴은 조폐국 국장이 되어 런던으로 거기까지 그곳에서 2,30대를 보내며 위대한 과학을 수행했다. (140, 141면)

찰스 다윈이 자연사와 지질학에 심취하게 된 것도 1830년대 초에 크라이스트 칼리지의 가르침에 접했기 때문이다. (141면)

1871년에 데번셔 공작인 헨리 캐번디시가 기부한 돈으로 캐번디시 연구소가 탄생했고, 초대 캐번디시 교수로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임명되었다. 맥스웰은 자기 이름을 붙인 방정식들로 전기와 자기 역학을 통합해낸 인물이었다. 맥스웰이 1879년 마흔 아홉 살의 이른 나이로 죽자, 과학 분야의 연구로 유명했던 스물아홉 살의 존 윌리엄 스트러트(레일리 경)가 2대 캐번디시 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1904년에 레일리 경은 노벨상을 받았다. 그의 뒤를 이은 네 명의 소장들은 모두 노벨상을 받았다. (141면)

물리학자들이 영국 전투에 나선 공군 조종사들에게 레이더를 달아주지 않았다면, 그리고 블레츨리 파크에 모인 암호 해독가들이 독일의 이니그마 암호를 깨서 연합국 호송 선단을 호송하려는 유보트 잠수함들의 위칠를 알아내지 못했다면, 전세는 아주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142면)

... 엑스선 결정학을 활용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밝히는 작업이었다. (142면)

내가 케임브리지에 도착할 무렵, 프랜시스는 결정학 이론 분야에서 차차 권위자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 나는 거의 매일같이 프랜시스와 이글이라는 펍에서 점심을 먹었다. (146면)

킹스 컬리지의 엑스선 사진들이 아니더라도 DNA의 기초 구조가 이중나선임을 암시하는 근거는 화학 문헌에 이미 충분히 존재했다. (150면)

사실 로절린드야말로 두 가닥 DNA 모형에 당연히 집중했어야 하는 장본인이었다. 그녀는 1년도 전에 A형 DNA 결정의 엑스선 회절 무늬를 꼼꼼하게 조사하여 분자의 대칭성을 확인했다. (155면)

... 순식간에 나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DNA 속 염기쌍들, 즉 A-T와 G-C 쌍을 만들어냈다. (156면)


만일 우리가 킹스 칼리지의 엑스선 결과를 몰랐다면 DNA 구조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기에, 우리는'네이처'에 보낼 논문에 모리스의 이름도 함께 실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모리스는 주저 없이 거절했다. 아마 자기 못지않게 중요하게 기여한 로절린드 프랭클린과 레이먼드 고슬링의 입장을 고려한 일이었을 것이다. 1953년 4월 25일자 '네이처'에 우리 모형을 설명하는 900단어의 글이 실렸다. ... 나중에 모리스는 우리 논문에 이름을 올리지 않겠다는 결정이 자기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말했다. (158, 159면)

반면에 프랜시스와 나는 우리 힘으로만 일을 해낸 게 아니었다. 일단 명석한 빌 코크란의 번득이는 통찰이 있었다. (159면)

... 그때 이후로 우리 둘은 정점에서 내려오지 않으려고 무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 그 과제는 각자 따로 수행하게 되었다. (165면)
시대에 앞선 것이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라. (165면)

몇 년 내에 구체적인 성공이 예견되는 문제만 다뤄라. (166면)

뱀의 머리보다 용의 꼬리가 되라. (167면)
지적 경쟁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라. (167면)

7장 하버드 대학 연구원
실험실 조수는 혈기왕성한 사람으로 채용하라
내가 1956년 가을에 옮겨간 하버드 대학은 스스로 미국 최고의 대학이라고 자부하는 곳이었다. (172면)
하지만 나머지 교수들 대부분은 진부한 시각의 소유자들이었고 학생들의 뛰어난 수준에 부합하지 못했다. 생물학과 개론 수업들은 너무 판에 박혀서 아무런 영감을 일으키지 못했다. (173면)

유전학을 생물학 연구의 중심으로 삼은 칼텍과 달리, 현학적인 호박곤충 전문가 프랭크 카펜터가 이끄는 하버드 생물학과는 여느 한 분야를 다른 분야들보다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다. (173면)

내가 칼텍을 떠나 하버드로 가기로 결정한 데는 화학자 폴 도티와의 우정이 깊어진 탓도 있었다. (177면)

강의 시간을 꽉꽉 채울 만큼 많은 자료를 외우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나는 미리 다음 강의들의 개요를 꼼꼼하게 작성했다. (179면)

미혼으로 하버드에 온 나는 한때 별도의 여자 대학이었던 레드클리프 칼리지의 사정에 관심이 많았다. (180면)

나는 쓸데없이 머릿수가 많은 구세대 인사들이 내게 불리한 표를 던질까 봐 적잖이 걱정되었다. 실제로 다수의 교수가 그렇게 하여, 내 승진 논의는 1년 미루자는 쪽에 표를 던졌다. ... 번디는 강경한 태도를 견지했다. ... 그러자 며칠 전만 해도 내 승진에 강하게 반대했던 교수들이 잽싸게 자신들의 생각이 짧았음을 암시하고 나섰다. 그들은 좀 더 숙고해보겠다고 하더니, 내처 특별위원회의 권고를 열정적으로 환영한다는 태도로 돌변했다. (180, 181면)

그래도 나는 하버드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동료 교수들의 질보다 학생들의 질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점에 있어서 하버드는 틀리지 않은 선택이었다. (181면)

연구 내용을 강의에 포함시켜라. (181면)
단순 암기를 넘어서도록 학생들의 능력을 끌어올려라. (182면)
학생들이 당신의 전문 분야 밖의 주제들을 공부하도록 격려하라. (182면)
실험실 조수는 혈기왕성한 사람으로 채용하라. (183면)
8장 하버드 대학 강사
여행을 해야 연구가 강해진다
9장 정부 자문위원
기적이 필요한 계획은 지지하지 마라

10장 노벨상 수상자
명성을 이용하려는 청원서에는 사인하지 마라
11장 하버드 대학 교수 1
성공에 걸맞는 보상을 요구하라
12장 '이중 나선'의 저자
좋은 이야기를 제일 먼저 들려주는 사람이 되라

13장 하버드 대학 교수 2
가까운 경쟁자에게는 너그러워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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