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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취미활동(挑戰)/▶인문학공부(人文學)

가도가도 황톳길

by 사니조아~ 2023. 11. 30.

2018.
비운의 시인
한하운의 시와 생애( 1919/3/ 20~1975)


1920년 3월 20일 함경남도 함흥군 덕천면
쌍봉리
(現 함흥시 쌍봉리)의 유복한 양반가에서
지주인 아버지 한종규(韓鍾奎, 1900 ~ ?)와
어머니 경주김씨
 사이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탄생했다네요

한 하운시초 정음사 1949년 5월 수 틀리면 간첩으로 몰아
대는 판에서 문인과 언론인 합작하여 간첩조작으로
제1호 문둥이 한하운 1919~1975 그는 월북시인이신
이병철*1921~1995 의 추천으로
당등 ^^ 


한하운의 고조부 한국보(韓國輔, 1822 ~ 1900)는
1860년(철종
 11)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 4위로
급제한뒤 1894년(고종 31)사헌부집의(執義, 종3품)에 
올랐으며 조부 한전채(韓甸埰, 1884 ~ 1925)는
대한제국 때 
순릉참봉을 지냄


그는 7세 때 함흥군 함흥면으로 이사하여 함흥
제일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하였고,
13세에  이리농림학교
 수의축산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다가 17세 되던 1936년에 한센병
을 진단받았다.

하지만 학업에 계속 전념하여 이리농림학교 졸업
 일본
으로 유학, 세이케이(成蹊)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22세 되던 1941년중국 베이징으로
가서 
왕징웨이정권치하 '북경대학' 농학원 축목학계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1943년에 함경남도 도청축산과에서
근무한 것을 시작으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1944년 사직하고 한센병 치료에 전념하게 되었다.


1948년에 월남해서 서울 명동을  등을 떠돌다가
1949년에 시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1949년 잡지 『신천지』에 나병의 고통과 슬픔을
노래한 「전라도 길」등 시 13편을 발표하면서
그는 죽음이 아닌 시인의 길을 가게 된다.

절망에 빠진 그를 그야말로 '신천지'로 안내한
사람은 이병철(李秉哲, 1918 ~ 1995)
이란
인물이었다. 이병철의 소개로 일약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한하운은 1949년 첫 시집
『한하운시초』를 펴내면서 더욱 문둥병 시인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다

1920년 함남 함주군 동천면에서 지주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 먼곳에서 이리까지
와서 이리농고를 졸업하였다. 

학교 다닐 때 우연히 바늘을 찔렀는데
피가 나는데도 아픈지를 몰라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 뒤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바늘을 주며
찔러보라고 하며, 안아프다고 하니
친구들에게는 그야
말로 영웅이었다. 
이미 문둥병이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일본 유학과 중국 유학, 그는 중국의 최고
명문대학 북경농대를 졸업하고 도청에서
근무하다 

심각하게 진행되는 병세를 보며 그만두고
병 치료만 전염하다가 살림은 풍지박산이
나버린다. 

동네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벽장 속에서
숨어살며,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상주노릇을 못하
고 벽장 속에서 크억 크억
그리다가, 
모두다 잠든틈에 아버지 묘소에
가서 절규하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당시에는 문둥병 환자는 버스나 기차를
탈수없어 걸어서 서울로 몰래 잠입하여
떠돌이 거지생
활을 하며, 그림을 그리며
시를 쓰던 그는 보리 피리란 시가 경향신문에
실리게 되면서 시인으
로 인정을 받았지만
거지생활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명동에서 자기가 쓴 시와
그림을 팔러 다니던 그는 다방에서 우연히
정지용 시인
을 만났다. 

그의 시를 읽어 보던 정지용은 그가 평소에
아끼던 만연필을 꺼내 그에게 준다. 
"미안합니다.
오늘은 마침 내가 가진 돈이 없어서.., 인간은
사람을 
얼굴로 대하는게 아니라, 마음과 정신으로
대한답니다" 
그는 그 만연필을 보자 값어치가
나가는 고급 만연필임을 알고 탁자 위에 놓고
허겁지겁 밖으로 
도망가 버린다.
 
 
 
< 손가락 한마디 >
간 밤에 얼어서
손 가락 한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마다 살한점
옷 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 싸서 주머니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 지면
남산 어느 양지터를 가려서
깊이 깊이 땅 파고
묻어 주어야 겠다.
 
 
<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길 >
가도 가도 붉은 황토 길
숨 막히는 더위 뿐 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 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 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 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어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어면 발가락이 또 하나 없어젓내
앞으로 남은 두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 까지
가도 가도 千里 , 먼 전라도 길.
 
인간의 한계상황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이런 경우처럼 참담한 현실은
찾아보기 어려
울 것이다. 

민도가 낮았던 시대에는 문둥병자가
어린아이를 잡아먹는다고 이들만 보면
인간사냥이 이루
어지기도 했던 끔직한
시대, 
그 후 소록도가 생겨 모두 이곳으로
격리처리되어, 더 이상의 전염이 방지되고
그 곳에서 최신 의
학으로 온전히 나아
음성환자로 판명받아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어도 이미 찌글어진 얼굴 때문

사회로 부터 질시된 삶을 살아야 했고,
다시 음성환자들만이 모여사는 촌락이
형성되었다. 
그게 수지, 헌인능, 화도이다.

한하윤 시 '파랑새'에서는 시인의
간절한 바램이 담겨져 있습니다.
매우 쉬운 언어로 되어있으면서도
자신이 소망하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담겨있는 '파랑새'. 시를 읽은 후
해석을 통해 학습해보도록 합시다.

-한하운, 「파랑새」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가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며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가 되리

 

이 시는 시인의 특수성을 알고 읽으면
더욱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시인은 나병을 앓고 있었기에 자유롭지
못했고 더욱 자유로운 삶에 대한 갈망을
가지게 된 것이요.

그래서 시인은 1연에서 파랑새를
통해 자유로운 삶에 대한 기원을
표현한 후 2, 3연에 자유로운 삶에 대
한 소망을 구체화하고 4연에서 1연의
내용을 반복하는 수미상관의 구조를
통해 자유로운 삶에 대한 갈망을
더욱 강조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시 전체를 아우르는
푸른 빛의 시각적 심상과 3음보의
민요적 율격과 만나 더욱 강조되게
되는 것이죠.

 

하운(何雲) / 한하운

나 하나 어쩔 줄 몰라 서두르네
산도 언덕도 나뭇가지도
여기라 뜬 세상

죽음에 주인이 없어 허락이 없어
이처럼 어쩔 줄 몰라 서두르는가
매양 벌려둔 저 바다인들

풍덩실 내 자무러지면
수많은 어족(魚族)들의 원망이 넘칠 것 같다.
썩은 육체 언저리에

네 헒과 균과 비(悲)와 애(哀)와 애(愛)를 엮어
뗏목처럼 창공으로 흘러 보고파진다.

아 구름되고파
바람이 되고파
어이없는 창공에
섬이 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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