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2.12.24
◇신준환의 [나무의 일생, 사람의 마음]을 읽고◇
숲의 양지 바른 곳에 자리한 벤치에 앉아 숲을 바라본다.
나무는 개별적으로 자라지만 그 개별적인 노력들이 합쳐져 종내는
숲이 되는 장엄한 광경은 결국 개별적인 '나'라는 존재들이 모여
'우리'가 되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나무도, 사람도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늘 경험하는 흔하디흔한
풍경이지만, 그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너무 흔해서 인식하지 못하면서 살고 있는 수많은 것들
처럼, 그렇게 말이다. 자작나무들 사이로 난 숲길을 걸으며 '나'를 생각한다.
정작 나는 나이고, 내가 보는 것은 내가 보는 것인가? 의문도 여럿이다.
평생을 나무 연구자로 살아온 신준환은 그의 저서, <나무의 일생,
사람의 마음>에서 "내가 본다는 것은 사실은 '내가 세계를 그렇게
구성한 것이고, 다만 내가 그렇게 볼 뿐"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아는 범위 안에서 본다는 의미다.
그 '안다는 것'마저도 누군가로부터 습득한 앎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전부라 여기며 보는 것조차도 전체의 일부분일
뿐이고, 결국 자기 안에 갇혀 자기가 알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준환은 마찬가지로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내가
아니라 내가 봐 왔던 혹은 내가 부러워했던 그 누군가이거나
그 누군가의 조합'이라고 말한다.
내 생각이라는 것마저도 '우리'라는 울타리가 만들어낸 수많은
생각들을 개별적으로 취사선택한 것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나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라고 믿는 것들조차도 관계라는 틀 속에서 형성된 것이지
원초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며, 모방하고 닮아가려는 노력들의
총합이 '나'라는 말이다.
결국 인간이란 남과 삶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야
살아있을 수 있고, 살아낼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아닌 다른 모든 것으로 구성된 존재다.
그러니 너는 있는데 나는 없다.
그런데 너에게 들어가 보면 네가 따로 있을까? 역시 너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너 속에 내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엮여 있다.
그러므로 나는 너를 위해 있고, 너는 나를 위해 있으니 우리가 되는 것이다."
- 신준환, <나무의 일생, 사람의 마음>
'나는 너를 위해 있고. 너는 나를 위해 있으니 우리가 되는 것'이라는
신준환의 통찰은 나무의 삶을 통해서 얻은 것이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나무들마저도 숲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며, 서로의 숨을 나눠 마시며, 숲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서로 연결되어 숲을 이루지만 각자의 존재 방식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다.
개별적인 존재인 나무들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크기의
공간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넉넉히 뿌리를 내리고, 햇빛을 두고 여러 나무들이 경쟁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각자의 공간 확보는 필수다.
그렇게 나무는 나무들 간의 '사이'를 인정한다.
그 사이라는 틈이 나무들이 공존하는 비결이다.
사이를 인정하니 다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의 저자인 우종영은 이러한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을 '그리움의 간격'이라 부른다.
서로 체온을 느끼고 바라볼 수는 있지만 절대 간섭하거나 구속할
수 없는 거리이면서, 그런 이유로 서로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거리가 바로 그리움의 간격이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럼에도 찬바람이 매서운 밤이면 서로 새된
신음소리를 흘리면서도 곁에 선 나무를 그리워하면서 위로받을 수 있는 거리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의 관계에 있어서도 적당한 거리는 좋은 관계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서로 상처주지 않을 만큼의 거리면서, 바라보며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거리에서 나지막이 그리워한다면 목이 메는 질긴 목마름 따윈 겪지
않아도 될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눈에 콩깍지가 씌워지는 사랑이 오면 설사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더라도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이 되고 마는 것이
인간사인지라,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다.ㅎ
◇작가 신준환◇
어릴때부터 시골에서 나무를 보며 자랐다. 나무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려고 서울대학교 농대 임학과에 들어갔으며, 나무와
사람의 올바른 관계를 숙고하면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후
국립산림과학원에 가서 산림생태·산림환경·산림보전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는 중에, ‘삶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나무의 삶과 인간의 삶은 어떤 관계’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인연으로 기후변화협약·생물다양성협약·사막화방지협약에서
정부 대표와 전문가로 활동하게 되었고, 국립수목원장을 끝으로
공무원 생활을 마쳤다.
지금은 동양대학교와 원광디지털대학교 등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사단법인 생명의숲’ 공동대표로 봉사하고 있다.
어떤 전문분야라고 할지라도 삶을 묻지 않는 공부는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전문 지식에 함몰되지 않고 세계를 연결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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