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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취미활동(挑戰)/▶마라톤열정 (動)

이봉주선수 은퇴

by 사니조아~ 2024. 5. 2.

마라톤 인생 20년, 마지막 레이스 마친 '봉달이' 이봉주
“국민들의 성원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여기까지 오게 했다.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홀가분하다.”

최선을 다한 자의 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15일 40세에 현역 마지막 레이스를 마친 이봉주(삼성전자)의
얼굴에서 힘든 모습도. 14위(2시간16분46초)라는 저조한 성적에 대한 아쉬움도
찾을 수 없었다.

그동안 두 어깨를 짓눌러왔던 마음의 부담을 털어버리기라도 한듯
차라리 후련하다는 표정이었다.
20년 마라톤 인생에서 항상 그랬 듯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데서 오는 당당함이리라.

비롯 순위는 기대에 못미쳤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단연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였다.
출발선에서 몸을 푸는 그를 향해 ‘꽃보다 봉주’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응원을 보냈던
시민들은 그가 달려가는 거리마다 뛰어나와 고별 레이스를 축복했다.

“훈련때 회복이 더디고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완주가 걱정됐지만 경기를 하면서 잘
풀려서 다행이었다”는 말처럼 그런 응원이 그에게 또 힘이 됐다.

이봉주는 국내 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주목받는 불굴의 마라토너로 유명하다.
세계정상급 선수로 통산 40차례 풀코스 완주(42번 도전)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대해 대한육상경기연맹은 40세 가까이 현역에서 활동했던
‘달리는 철학자’ 스티브 모네게티(호주)가 아마추어 대회까지 포함해 40차례 정도
완주했을 것으로 추정될 뿐 풀코스 완주에 대한 공식 집계는 없다고 설명한다.

이봉주는 1990년 제71회 전국체육대회를 통해 마라톤 인생을 시작했고 첫 번째 풀코스
완주에 성공했다. “단출한 반바지 하나면 뛸 수 있었다”는 것이 가난한 시골출신인 그가
마라톤을 택한 이유다.

사실 그는 마라톤을 하기에는 약점이 많았다.
일단 왼발이 253.9㎜. 오른발이 249.5㎜로 차이가 나는 짝발이다.
황영조가 가지고 있던 스피드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약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성실함으로 버텨냈다.
혹독한 훈련도 “어렸을 적부터 가난한 시골에서 힘들게 고생하며 자식들 뒷바라지하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오히려 호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를 악물었다.

친구인 황영조에 가려 늘 ‘2인자’라는 설움을 받았어도 묵묵히 앞만 보고 달렸던 그는
결국 그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영광을 안고만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차지했고.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2시간7분20초로 아직도 깨지지 않는 한국기록을 세웠으며.
2001년 보스턴마라톤에서 우승해 온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올림픽에만 4회 연속 출전한 것도 기네스북에 남을 일이다.

마지막 레이스를 마친 이봉주는 아직도 ‘포스트 이봉주’가 나타나지 않는 지지부진한
후배들에 대해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더 열심히 하고 노력도 많이
했으면 한다”는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9월 공식적인 은퇴경기를 가질 예정이지만 이번 대회를 끝으로 사실상 은퇴를 한 것과
다름없는 그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는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그동안 국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반드시 한국 마라톤 발전에 기여하는 것으로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40살 이봉주는 이제 20년을 달려왔던 42.195㎞.
그 익숙했던 주로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의 마라톤을 시작하려 한다.
새 출발선에서 다음 총성을 기다리는 그의 마라톤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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