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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취미활동(挑戰)/▶인문학공부(人文學)

고수(高手)와 하수(下手)

by 사니조아~ 2023. 7. 2.

일시 : 2021.90.21(추석) 11:00

고수(高手)와 하수(下手)

히말라야에서 수행자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해발 3000미터 높이의 바드리나트다.

구체적으로 세어보진 않았기 때문에 확신은 없다. 그러나 조건이 가장 좋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해발 고도가 높다. 바드리나트 전체 지역이 해발 3000미터가 넘는다. 높은 곳에서

수련하면 수련이 훨씬 잘 된다. 고도가 높지만 평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웬만한 한국의

작은 읍 정도의 크기다. 인근에 마을이 있어 식량이 떨어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둘레에는 만년설을 이고 있는 높은 산들이 바드리나트를 빙 둘러싸고 수행자에게

신성한 기운을 준다.

많은 인도인들은 이곳을 신성한 갠지스강의 발원지로 믿는다. 고대에 이곳에 많은

수행자들이 살면서 영원히 죽지 않는 명약 소마(Soma)를 만들었고, 그 소마가 지금도

설산에서 녹아내리는 물에 섞여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갠지스강물을 마시면 오래 살고

모든 병이 낫고 자신의 악업이 소멸된다고 믿는다. 바드리나트는 인도인에게

신성함의 원천이다.

이곳은 길이 멀고 험한데다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에 이곳에 올라올 수 있는 기간은

한여름 두세 달밖에 되지 않는다. 히말라야 끝자락인 리시케시에서 버스를 타면

꼬박 20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중간에 산사태가 나거나 사고가 나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눈이 덮였다 녹으면 푸석한 산들은 쉽게 무너져 내리거나 큰 바위들이

예고도 없이 떨어진다. 굳이 목숨을 걸고 이렇게 험한 길을 오를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인도인들에게 바드리나트는 평생의 소원이다.

그런 신성한 곳이기에 나는 바드리나트에 가면 많은 고수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인도 최고의 고수들이 바글바글할 테니까. 운이 좋으면 히말라야 최고의

스승 마하바타르 바바지를 만날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도 했었다. 그러나 주변에

지나치는 많은 수행자들 속에 고수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나는 그 사람이 고수인지 하수인지 판단할 때 주로 눈을 본다. 눈은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특히 영혼이 진보한 사람의 눈은 다르다. 굉장히 맑고 고요하고 깊다.

눈이 탁하다는 것은 아직 그 사람의 영혼이 진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양산의 통도사 말사인 극락암에 가면 정법안장(正法眼藏)이라고 크게 쓴 글씨가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의 영축산에서 법문을 하시다가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였고 마하가섭만이 미소를 지었다. 이것을 염화미소라고 한다. 이때 부처님께서

여래의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을 마하가섭에게 전한다고

하셨는데 바로 이때의 글귀다. 극락암의 뒷산 이름도 마가다국과 똑같은

영축산으로 지어 불렀다.

정확한 법(正法)은 눈(眼藏)에 감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눈을 이용하지 않는

수련법은 정확한 법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귀는? 눈과 귀는 동일하게 봐야 한다.

겉으로는 비슷하나 본질은 다른 가짜를 사이비(似而非)라고 한다. 물론 기초

단계에서는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수련법이

등장한다.

 

그러나 최종적인 단계에 가서는 눈을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유일무이한

법은 이것뿐이라고 하신 것이다.

눈은 또 다른 말로 빛이라고 한다. 마하바타르 바바지가 전수한 크리야요가가

바로 눈(빛)을 이용하는 요가다. 국선도는? 국선도도 마찬가지다. 단전에서 힘이 모이면

그것이 빛으로 바뀐다. 참선이나 간화선은? 참선이나 간화선도 마찬가지다. 눈을

반개하고 화두를 들고 코끝을 보고 앉아 있으면 앞에 빛이 떠오른다. 이것이 바로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이다.

그날, 나는 바드리나트에서 불로약(不老藥) 소마(Soma)를 만들었다는 전설의 바위를

지나 4000미터나 되는 폭포까지 올라간 뒤 다시 같이 간 일행들과 함께 터덜터덜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고도가 높아 무척 힘들었다. 햇살은 또 얼마나 강한지 땀이 흐른 얼굴 위에 강한 햇볕이

내리쪼이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힘만 들었지 실망이었다. 설산 아래에도 내가 찾는 고수(高手)는 없었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성가시게 졸라대는 아줌마들과 할머니들밖에 없었다. 사진을 찍어도 그들에게 '

핸드폰이 없으니 사진을 보내줄 수도 없는데 그들은 한사코 사진을 찍어달라고 졸랐다.

사진을 찍고 찍은 걸 화면으로 보고는 좋다고 한바탕 웃고 그냥 그게 끝이었다.

아, 고수를 찾아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 최고의 성지까지 왔건만 이곳에도 나보다 나은

고수가 없구나. 나는 산을 내려가며 맞은편에서 산을 올라오는 인도인들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침 똑같은 복장을 한 두 사람이 10여 미터 떨어진 채 올라왔다. 복장으로 보아

수행자였다. 저 사람들은 조금 다를까? 나는 앞선 사람이 내 앞으로 가까이 오자

슬쩍 그 사람의 눈을 봤다. 그 사람도 나를 봤다. 60대 중반쯤의 나이였다.

 

그 정도면 많이 닦았을 나이인데 눈이 탁했다. 당신도 아직 멀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지나치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내 앞에서 발을 딱 멈췄다. 그리고 합장을 하더니

내게 깊이 머리를 숙였다. 나도 얼떨결에 같이 합장을 해주고는 지나쳤다. 뭐지?

그의 뒤를 이어 비슷한 수행자 복장을 한 한 사람이 또 올라왔다. 그가 내 일행들을

지나쳐 거의 내 앞에까지 왔다. 다시 나는 그의 눈을 들여다봤고 또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앞 사람보다 나이가 약간 적어 보였다. 그래도 50대

중후반은 되었을 나이다. 그런데 이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눈이 탁했다. 당신도 아직 멀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그를 지나치려고 하는데

그가 또 갑자기 내 앞에서 발걸음을 딱 멈췄다. 그리고 앞 사람처럼 합장을 하고는

내게 깊이 머리를 조아렸다. 또 나는 얼떨결에 같이 합장을 해주고 지나쳤다. 뭐지?

이 사람들이 그래도 고수는 알아보는 구나. 아직은 더 닦아야 하겠지만 고수를 알아보는

눈은 떴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내 앞에 가는 일행들도

인정하지 않았는데 인도에서 만난 낯선 수행자가 나를 인정했다. 앞서가는 일행들이

이 장면을 봤어야 하는데 아쉬웠다.

같이 온 일행들은 각자가 나름 자기 수련분야에서 최고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은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 오지에서 오로지 40년간 수행만 한 스님이었고,

한 사람은 내공무술의 고수였고, 한 사람은 평생을 하나님의 종으로 산 사람이었다.

 

우리는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각자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낯선 수행자는 그들 모두를 그냥 지나치고 내 앞에서만 딱 멈춰 경배를 한 것이다.

앞의 일행들이 보지 못했다는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아진 나는 오솔길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려왔다. 그때였다. 나는 무언가에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듯

깜짝 놀라 뒤돌아섰다.

 

아뿔싸. 그러나 내게 경배를 한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벌써 모퉁이를 돌아간 걸까.

그 걸음의 속도라면 아직 벗어날 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들은 내가 히말라야에서 그토록 보기를 원했던 고수(高手)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 자만의 눈에 가려 고수(高手)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하수(下手)는 자신의

낮은 눈과 자신의 낮은 기준으로만 보기 때문에 절대 고수(高手)를 알아볼 수 없다.

 

나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들은 나를 알아봤다. 나는 내 자만에 취해 좋은 인연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는 자기 모습에 취해 결국 물에 빠져

죽고 만다. 자신에 대한 만족은 수행자에겐 자살이나 다름없다. 거기서 수련은 멈추고

비참한 결말만 있을 뿐이다.

나는 망연자실 멈춰선 채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설산(雪山)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 이 길로 내려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나처럼 만년설에

떨어지는 폭포를 보고 내려오는 순례자면 만날 수 있겠지만 폭포 위의 동굴에서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오도 가도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 같이

온 일행들도 모퉁이를 넘어가 보이지 않았다. 주위가 어두워지자 설산(雪山)의

꼭대기는 더욱 밝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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