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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여정(旅情)/문화예술(藝術)

금수현/전혜금

by 사니조아~ 2024. 3. 3.

24.03.02 
정세호 형님과 차담을 하면서 '그네' 작곡가 금수현 소개 해 주셨습니다.
금수현 작곡가의 장모님이 김말봉(소설가) 였답니다.  그의 딸 전혜금과
결혼을 청혼 하려고 갔는데 내가 시를 하나 쓰 났는데 이것을 작곡을 하면
우리 딸과 결혼을 허락 해 주겠다고 하였다.
 가사말이 '그네' 였다.  

금수현의 장모님께서는 그네 작곡을 평가 한 후 피아노로 처 보라고
했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 딸 전혜금양과 결혼을 수락 했다는 
뒷 소문이 있었답니다. ^^^

저도 이 노래를 교과서에 이미 기록이 되어 있고 평소에 즐겨
듣는 '그네' 세모시 옥색치마 ~~  흥얼거리며 듣는 노래 입니다. 

                  금수현 작곡가 

금수현 가족 좌측 전혜금 아들 금나라


그 네   
                   김말봉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나가
구름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양
나래쉬고 보더라
한번 구르니
나무끝에 아련하고
두번을 거듭차니
사바가 발아래라
마음의 일만근심은
바람이 실어가네.



금수현
1919년 경남 김해군 대저면(현재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에서 태어났다.
부산제2공립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양음악학교
(도쿄음악대학교의 전신) 본과에서 성악(바리톤)을 전공했다.

금수현의 아버지는 '금난새'이다.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겸 지휘자, 경희대 교수이다.
194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베를린예술대학교에서
라벤슈타인을 사사했다.

1977년 최고 명성의 카라얀 콩쿠르에 입상한 후 프라하 방송 교향악단,
도이치 캄머오케스트라,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객원지휘했으며,
유러피안 마스터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거쳐 KBS교향악단,
수원시향 등을 지휘했다. 


1942년 동래고등여학교 음악 교사가 된 그는 소설가 김말봉의 딸
전혜금을 만나 결혼했다. 경상남도 도립극장장, 경남여자고등학교
교감, 부산사범학교 교감, 경남여자중학교장, 통영여자고등학교장
등을 거치는 동안 지역 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한 그는 1957년부터
6년간 문교부 편수관으로 근무하면서 음악 용어를 한글로 바꾸는
데 공헌했다.

1963년 [국제신보] 고문을 맡아 칼럼을 썼고, 1965년 ‘영 필하모닉
관현악단’ 이사장직을 맡았으며, 1972년 음악저작권협회장, 1982년
한국작곡가협회장과 한성로터리클럽 회장 등을 지냈다.

또한 말년에 필생의 작품인 오페라 「장보고」를 완성했다.
그 뒤 1992년 73세를 일기로 「그네」의 노랫말처럼 구름 속으로
홀연히 떠났다.

책도 하나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교항곡' 

"뭐? 빌어먹을 풍각쟁이가 되겠다고?"
낙동강변에서 정미소를 경영하고 땅콩밭을 일구며 생활하는
아버지는 일본에 가서 음악공부를 하겠다는 장손 김수현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 즈음 가세도 아버지는 오직 아들
김수현의 취업에 모든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한수 이남의 명문인 부산제2상고를 졸업한 친구들은 모두
금융조합의 서기가 되어 남들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데, 아들
놈만 직장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음악공부를 하러 떠난다니
아버지는 기가 막혔다. 
 
그러나 학창시절 김수현은 이미 음악에 미쳐 오르간과
피아노가 있는 곳이면 다 찾아가 쳐보았다. 베토벤과
모짜르트 전기를 읽었고, 음정에 관한 코뤼분겐을 사서
독보연습을 했다.

스승도 없이 음악책을 구해 혼자서 깨쳐나가는 길이
어려웠지만 장차 베토벤과 같은 위대한 음악가가 된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몰랐다. 그리고 동경의 음악학교에
입학원서를 내고 학교로부터 도항증까지 얻은 뒤 단단한
결심을 하고 아버지에게 동경음악학원에 입학하겠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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