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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여정(旅情)/문화예술(藝術)

백산 김정옥 도예가

by 사니조아~ 2023. 7. 1.

문경에 자리한 영남요는 1대 김취정부터 시작해 300년간 조선백자의 맥을 이어왔다.

이곳은 발물레와 원통형의 진흙 벽돌을 쌓아 만드는 망댕이 가마를 이용하는

전통 기법을 고수한다.

7대조인 김비안은 왕실에 도자기를 납품하던 사기장이었고 김정옥 작가의 아버지

김교수는 해외 각지의 도자 작가들이 찾아올 정도로 높은 명성을 자랑했다.

“저는 열여덟 살 때부터 흙을 잡기 시작했어요.

 

아버지가 워낙 엄격한 기준으로 도자기를 만들어서 인부의 급여를 주고

나면 남는 게 없었어요. 형제들 중 가장 소질이 있던 제가 처음 이 일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일평생 도자기를 구워온 아버지는 반대를 하셨습니다.

 

너무 힘들다는 게 그 이유였죠. 60년간 하다 보니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제 아들이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반대했으니까요.” 문경읍 관음리에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5호로 지정된 가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가마이자

김정옥 작가가 1981년 세상으로 나오기까지 아버지와 함께 작업을 한

일터기도 하다.

 

 

그 전엔 이름조차 없었는데 현재의 가마터로 옮기면서 ‘영남요’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김정옥 작가의 이름도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제13회,

제14회 대한민국전승공예 대전 특별상수상, 1991년 대한민국 도자 부문

최초 도예명장 선정, 그리고 1996년에는 사기 장인 중 최초로 중요무형문화재

제105호 사기장으로 지정되며 예인으로서 영예를 얻기도 했다.

 

또한 그의 작품은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독일 동아시아 국립박물관,

프랑스 세브르 국립도자기박물관에서 상설 전시를 하며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물레에 앉은 그가 발바닥으로 아랫부분을 친 순간 물레가 힘차게 돌고 노장의

두 팔엔 힘줄이 돋아났다. 어느새 그의 손끝에서 우묵한 다완이 하나 만들어졌다.

백산 김정옥 작품 세계의 정수로 불리는 정호다완이다.

 

막사발로 불리기도 한 이 도자기는 은은한 매력을 지닌 조선 사기의 상징으로

꼽힌다. “발로 굴리는 전통 물레는 기계식 물레와 달리 회전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대작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그렇지만 저는 전통

물레가 좋습니다. 작품을 하나 완성하기까지 온전히 제 힘으로 빚어내기

때문이죠.” 희수를 앞둔 김정옥 작가는 흙을 잡는 순간마다 지금보다 나은 작품이

나오길 바라며 매일 물레를 돌린다.

 

현재 영남요는 9대손인 백산 김정옥을 필두로 10대손 우남 김경식, 그의 아들 김지훈이 함께하고 있다.

김정옥 작가의 아들 김경식 작가는 스물아홉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도예에 입문한 지 5년 만에 제25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장려상을 수상하고 2005년 문화관광부장관

청년작가상 수상, 2007년 경북기능경기대회 금상 수상 등 다양한 경연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13년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국가무형문화재 제105호 사기장 전수조교 지정이라는 의미 있는

결실을 맺었다.

 

가족이 함께 가업을 이어간다는 것은 많은 인내와 배려를 배우는 과정일 터. “외아들인 저는 어린

시절부터 막연하게 이 길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어요. 과거에는 아버지의 고집스러운 철학에 반발심을

갖기도 했지만 지금은 같은 길을 먼저 걸은 선배로서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영남요에 자리한사기장전수관은 김정옥 작가의 의지와 김경식 작가의 추진력이 빛을 발한 결과물이다.

 

“전수관을 통해 영남요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것 또한 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들이 없었다면 제 평생의 소원을 이루기 힘들었을 겁니다.” 최근 김경식 작가는 그림에 주력하고 있다.

김정옥 작가의 작품이 예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도자기에 무늬를 그릴 때 따로

화가를 두지 않고 자신이 직접 그리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진 않았지만

오랜 시간 도예를 통해 쌓은 내공으로 자신의 작품에 어울리는 그림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그것을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포도넝쿨 문양과 물고기가 살아 헤엄치는 듯 생동감 넘치는 어문은 특히

예술적 가치가 높죠. 저는 앞으로 전통 문양을 지켜가되 기존 문양을 재해석해 영남요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전통의 재해석은 김경식 작가의 아들 김지훈이 꿈꾸는

영남요의 또 다른 미래다.

 

그는 이천에 위치한 한국도예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목원대학교 도자디자인과에서

다양한 도예 이론을 배우고 있다. “전통 물레와 전통 가마를 사용하는 지금의 제작법을 충실히

지켜가고 싶어요. 과거 저희 선조 역시 전통을 고수하며 나름대로 발전 방향을 찾았기 때문에

영남요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평일에는 공부에 매진하고 주말에는 문경으로 내려와 영남요의 일을 돕는다.

두 달에 한 번 가마에 불을 지피는 날, 수만 개의 도자기를 가마 속에 넣는 일은 주로

그의 몫이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 옆에서 불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그 시간은 무엇보다

설레는 경험이라고 말한다.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김정옥 작가가 한마디 덧붙였다.

 

“지난번 제 전시회 제목이 ‘무한부작’이었습니다. 땀 없이는 이루지 못한다는 뜻의

‘무한불성’에서 따왔죠.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손자가 흘릴 땀은 많이 남아

있을 겁니다.

 

그 옆에서 저는 아버지에게 배워 아들에게 알려준 방법을 똑같이 알려줄 겁니다. 이제는

아들과 손자의 세상이에요.”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활발한 전시 활동을 펼치는 거장의 말치곤

겸손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손자의 작업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김정옥 작가의 표정은 자못

진지했다. 전통이라는 거창한 이름 대신 하루하루 자신의 몫을 해내는 아버지의 아들, 그리고

그의 아들이 이끌어가는 영남요의 이야기는 단순히 도자기의 역사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가족의 이야기이자 오랜 시간 서로를 믿고 가치를 이어 발물레로 다완을 빚는

 

김정옥 작가 온 가족의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