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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참~
세계 각국에서 찬사만 받고 살아온 여자였지
가정적으론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었네요.
가정 전체적으로 아버지로 부터 썩 화목하고
환경적으로 스트래스를 많이 받았지만
이 정도 세계적으로 발전한 가수는 더문일이다.
20대중반에 기타리스트 남편과 결혼했지만
그리스에서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살길 원하는
남편에 반해 그녀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하고싶은 열망때문에 미국,영국,프랑스,독일.
이탈리아 등등 여러나라를 순회하며 살다가
남편이 중간에 수면제를 먹고 자살 시도를 하자
결국 아이를 가지면 남편이 행복해할까 싶어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 살다.
점점 세계적으로 명망을 더해가는 그녀를 남편이
견디지 못하고 열등감에 잦아들다 결국 15년만에 이혼하고 말았다.
아이둘은 남편한테 보내고(돈을 벌어 휴양지를
하나 사서)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왔는데 아이들
한테 섭섭한 내색을 하지 않고 살다가 50살때
그리스 원형극장에서 공연할때 아이들과 전
남편한테 공연에 오라고 표를 보냈더니 아무도
안와 처음으로 크게 화를 냈다합니다.
결국 음악제작자 앙드레 샤펠이란 사람과 2003년 재혼하고 70이 넘어 이젠 조금씩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정적으론 불행했지만
(노름을 좋아하는 아버지.많이 배우지못한 엄마,
대스타 부인을 둔 남편의 우울증) 그대신 천상의
목소리로 전세계 사람들한테 휴식같은 노래를
선사해준 나무무스꾸라 가수 나름 자서전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여담으로 그녀의 엄마가 그녀의 언니와 같이 음악학교에 입학시켰는데...
형편이 어려워 더이상 학업을 못하게 되자...
음악학교 선생이"언니는 정말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동생(나나 무스꾸리)은 노래실력은 쳐지지만 열정이 있다. 이 아이는
남기게 하고 싶다"고...
그 음악학교 선생님이 나중에 대스타가 된 그녀에
대해 어찌 생각했을지..^.^
그리고 자신이 안경을 쓴 이유가 눈 사이가 멀어
바보같이 보일까봐 걱정되서 썼다고..(시력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또한 데뷔하고나서 살을 10키로를 감량하고나서야
음반자켓에 자기 얼굴이 실릴 수 있었다고..
(그전엔 그녀의 얼굴을 안보이고 그림으로 대치)
10살, 무대 위에 있고 싶어 울던 소녀 나나(Nana)
총 4억 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한 세계 최고의 여가수,
골든 디스크 300회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운 전설적인 아티스트 나나 무스꾸리가 닫힌 문 뒤에 가두어 두었던 지난날의 이야기를 자서전에 담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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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가난을 뼈저리게 겪었던 그리스에서의 어린 시절, 도박에 빠진 아버지와 가족에게 헌신했던 어머니에 대한 아픈 기억, 열등감에 시달렸지만 노래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했던 사춘기 시절,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갈등, 사랑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아픔, 그리고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과, 가수로서의 삶을
병행해야 했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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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을 통해 보는 그녀는 세계무대에 서는 가수가 아닌 그저 평범한 한 여자였다. 유니세프 친선대사와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며 인류애를 실천했던 나나 무스꾸리. 아테네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첫 무대를 가진 후 세계 최대의 무대로 올라서기까지의 과정, 퀸시 존스와 해리 벨라폰테와의 만남, 캐나다와 미국, 일본, 호주 등 전세계를 열광시켰던 순회공연 등 50년 가수생활을 마감짓는 위대한 여가수의 인생이 이 한 권의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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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여가수의 진솔한 모습… 감동적인 에피소드들 74살의 나나 무스꾸리가 지나간
한 시대를 부활시켰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러
아테네의 유명한 클럽에 며칠 동안 계속 왔던 마리아 칼라스,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세르주 라마, 함께 미국 순회공연을 다녔던 해리 벨라폰테, 그리고 호주의 한 호텔에서 애송이 그리스 여가수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스위트룸을 내준 사실을 알고 펄펄 뛰던
프랭크 시나트라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를
휘어잡았던 명사들이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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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무스꾸리는 자서전의 시작 부분에서 그리스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자식들을 굶겨죽이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썼던 어머니, 불안하게 시작했지만 늘 열광적인 환호와 눈물로 이어졌던 유럽 콘서트, 여성을 비하하던 지중해식
문화에 길들여진 그녀가 힘겹게 자신을 해방해 나가는 과정 등을 그린 이야기가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또 마를린 디트리히나 밥 딜런, 오드리 헵번 등을 만났던 일화와 유럽의 여러 왕실에서 펼쳤던 공연에 관한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여가수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 대신 너무나 인간적인 고민을 가진 나나 무스꾸리를
발견하게 된다.
해리 벨라폰테는 나나 무스꾸리를 “하늘이 준 재능을
가진 가수”라 평했고, 샤를르 아즈나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음악 자체”라고 극찬했다. 세르주 라마는
나나 무스꾸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향기가 있는 목소리이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가사 뒤에는
마음으로 듣는 사람들만이 들을 수 있는 심오한
진리가 숨어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사랑을
노래하는 그녀와 하나가 되었다.”
3. ‘박쥐의 딸’에서 ‘그리스인들의 영혼’이 된 나나무스
꾸리사람들은 나나의 아버지를 ‘박쥐’라고 불렀다.
귀가 유난히 뾰족했던 데다가 밤마다 노름판을
전전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그나마 있던 재산을 가지고 노름을 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정말로 가난했어요.
아버지는 이기기 위해 노름을 하는 게 아니었어요.
그저 노름이 좋았던 거죠. 이젠 아버지를 용서했어요.
나도 아버지와 똑같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내가 노래를 하는 이유도 노래가 좋아서예요.
명예나 돈이 아닌, 기쁨을 얻기 위해서 노래를 하는 것이죠.” 아버지는 두 번째 아이로 또 딸이 태어나자
무척 서운해했다.
그는 ‘무스꾸리’라는 이름을 이어갈 아들을 원했던
것이다. 조안나, 즉 나나가
태어나던 날 밤, 사람들은 산파를 부르러 간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도박장으로 되돌아가 딸의 출생을 까맣게 잊은 채 도박을 계속했다!
결국 나나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녀의 곁에는 아버지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남자였다면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라며, 나나는
자신을 위안한다.
‘박쥐의 딸’이라는 부제의 이 책은 배우 고故 장 끌로드 브리알리에게 헌정되었다.
나나 무스꾸리와 막역한 사이였던 그는 ‘태양의 딸’, ‘너는 어디에?’라는 곡을 써
주었고 그녀를 ‘맨발의 여신’이라고 칭송했으며 ‘행복의 요정’이 되어 주어
고맙다고 했다.
그가 죽기 전에 남긴 말은 마리아 칼라스가 나나 무스꾸리의 기적 같은 목소리를
칭찬했다는 이야기였다.
전쟁을 겪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가수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그리고 노래를 통해 어딘가에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결국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음악은 나이도 국적도 없고 국경이라는 것도 언어의 장벽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다. 음악은 모든 벽을 허물며 감정만으로도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가능
하게 한다.”
꾸밈없는 문체로 써내려간 그녀의 추억담 속에는 마법 같은 만남이 수없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마노스 하지다키스와의 만남은 너무나도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영국 노래와 그리스 노래를 두루 섭렵하고, 클로드 르메즐과 알랭 고라게(무스꾸리
에게 ‘우리들의 이야기’, ‘사랑은 똑같은 것’ 등의 노래를 작곡해 주었으며 세르주
레기아니에게도 주옥 같은 곡을 주었다)의 곡을 멋지게 부르는 나나 무스꾸리에게는
불가능한 음악 장르가 없다.
스윙재즈, 블루스는 물론 오페라까지 소화해낼 뿐 아니라 프랑스의 음유시인
프란시스 카브렐과 조안 바에즈의 곡들을 완벽한 테크닉으로 재현해낸다.
세월이 흐른 뒤 나나 무스꾸리는 자신이 받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결심했다.
비록 자신을 ‘박쥐의 딸’이라고 표현했지만, 영혼을 달래는 노래를 부르는 그녀가
쓴 글에는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가 가득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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