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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취미활동(挑戰)/▶인문학공부(人文學)

조응천(曺應天) 博士

by 사니조아~ 2023. 3. 5.

조응천박사 : <1895~1979> 
1895년 5월 13일 평남 강서군 반석면 반일리 출생 부친은 조용열, 어머니는 이용선
사이 장남으로 출생 하였습니다.

그의 조부 조준승의 영향으로 반석초등학교 졸업 후 기독교문화를 접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열정에 평양 미션학교인 숭실중학교를 무난히 졸업후 숭실대 이과대학
진학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과학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1916년 평양숭실대학 
이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자신의 모교인 숭실중학교에서 물리와 화학을
가리키기 시작했습니다.

뛰어난 머리를 가진 조응천박사는 미국 유학을 꿈꾸게 됩니다. 배위량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 인디에나주에 있는 드라이스테이트대학 토목과에 진학을 합니다.

이 학부에서 전 과정을 마친 조응천은 다시 펴듀대학 문리학부 물리학과에
진학하면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같은 주
주립대학 대학원에 진학하여 1928년도 이 대학에서 이학박사를 다시 학위를
받았다네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학위논문은  '3극 진공관출력조건'이라는 주제로 그 대학에서
연구활동에 집중 지도교수를 권유받고 다시 연구를 하게 됩니다.

1931년 한국에 귀국하자마자 일본기관에서 조응천을 스카우트 하기 위해 노력을
하였으나  당시 1948년 이승만 박사가 취임하면서  조선경비대 육군소령으로 특채되어
군창설에 공을 세우며 통신체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 육군통신학교장으로 임명 됨.

모든 군인이 부러워하는 별 2개를 달고 체신부 차관으로 발령을 받았답니다.
그리고 광운대학에 초대학장으로 전자계통에 다시 일을 합니다.
한국전자공업회회장, 서울 FM방송회장,  전기협회이사,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고문
한국전자 전기 통신 부분에 엄청난 공을 세우며 과업을 달성했답니다.

'백만인의 전기학', '학생들의 라디오원리', '기초무선공학' 수많은 저서를 남깁니다.
부인 정혜수, 장남 조현명 ,  딸로는 큰딸 조현실, 둘째 딸 조현옥  3남매를 두었답니다.

평안북도 강서군 출생. 아버지는 조용열(曺用悅). 평양 숭실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한 뒤 미국 트로이주립대학 토목과, 퍼두커대학 물리학과, 그리고
인디애나대학 대학원에서 수업한 뒤 그 대학원에서 「3극진공관의 출력조건」이라는
논문으로 1928년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뒤 기독교 청년운동에 참여하면서 『농민생활』이라는 월간지를 발행하여
농민교육에 힘썼다. 광복 후에는 군정청 경무부 통신국장, 정부 수립 후에는
육군통신학교장과 통신감을 거친 뒤 1956년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1957년 체신부차관에 취임한 뒤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통신시설 복구에 공을 세웠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 동국전자고등공업학교 기술고문, 동국전자공과대학 명예학장,
광운전자공과대학 학장, 전자공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전기통신공학에
관한 서적 외에도 일반교양 과학서적인 『백만인의 원자학』·『백만인의 인공위성』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이 책은 3월5일  가지산 소타 운영하고 오던 길 HL5 UBZ국장님  홈에서 선물로 받음.
애지 중지하고 게시는 책 3권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