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7.8.1
대상 : 이효석 문학관
출생-사망 1907년 2월 23일, 강원도 평창 - 1942년 5월 25일
평소에 꼭 가보고 싶은 문학관이 였습니다.
메밀 냉국수로 생가 옆에서 한 그릇 했습니다 날씨가 푹푹 찜니다.
가격이 조금 비싼 편입니다. 청결하고 친절 하니 그 비용은 그기에서
가부시끼 한 샘입니다.
이효석 선생님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 났더군요
다시 말해 있는 집안이고 부인도 미인 이더군요
36세에 세상을 떠났으니 지금으로 말하면 아주 가까운 문학인지요
작품할동도 의외로 많더군요
난 '메일꽃 필 무렵' 이거 하나인줄 알았는데 ㅎㅎ
그리고 보니 우리나라 원만한 곳에 문학관은 기웃 그린것
같습니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25년『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시 「봄」이 선외 가작(選外佳作)
으로 뽑힌 일이 있으나 정식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한 것은 「도시와 유령」
(1928)부터이다.
이 작품은 도시유랑민의 비참한 생활을 고발한 것으로, 그 뒤 이러한 계열의
작품들로 인하여 유진오(兪鎭午)와 더불어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진영으로부터 동반자작가(同伴者作家)라는 호칭을 듣기도 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31년 이경원(李敬媛)과 혼인하였으나 취직을 못하여 경제적
곤란을 당하던 중 일본인 은사의 주선으로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취직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지탄을 받자 처가가 있는 경성(鏡城)으로 내려가 그곳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그의 초기 작품은 경향문학(傾向文學)의 성격이 짙은
「노령근해(露嶺近海)」(1930)·「상륙(上陸)」(1930)·「북국사신(北國私信)」
등으로 대표된다.
생활이 비교적 안정되기 시작한 1932년경부터 그의 작품세계는 초기의 경향문학적 요
소를 탈피하고 그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는 순수문학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하여 향토적·이국적·성적 모티프(motif)를 중심으로 한 특이한 작품세계를
시적 문체로 승화시킨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그외에도 수많은 프로필과 일들이 있는데 생략하기로 하고
문학관장님과 차담을 요청했습니다. 내가 간다고 사전에 예기를 했더니
마치 들어오라는 기빌을 받고 한참을 얘기를 했습니다.
책도 한권 선물로 받구요
1907년 2월23일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남안동 681번지에서 출생 이시후와 강홍경의
1남3녀중 장남으로 태어 났다네요 호가 가산입니다.
함경북도 경성 이주 경성농업학교에 영어 선생님으로 취직을 해서 장녀 나미양을
출생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