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6.4.26(화)
제목 : 수에즈 운하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대륙의 경계인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서쪽에 건설된 세계 최대의 운하로
지중해의 포트 사이드(Port Said) 항구와 홍해의 수에즈(Suez) 항구를 연결하고 있다. 수에즈
운하는 무엇보다도 아프리카 대륙을 우회하지 않고 곧바로 아시아와 유럽이 연결되는 통로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수에즈 지협에 운하를 파서 항행할 수 있게 되면 지중해와 홍해의 교통 발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착상은 고대부터 있었다. 운하를 건설하려는 최초의 시도는 이집트 파라오 왕조
제 12왕조의 세누스레트 3세(Senusret III : 재위 1878 BC~1839 BC)가 홍해 연안의 투밀라트
계곡(Wadi Tumilat)을 통해 나일강과 홍해를 연결하고자 착공했던 공사로 추정된다.
그러나 공사 결과 내륙의 푼트(Punt) 지방 까지만 나일강이 연결되었을 뿐 홍해와는 연결되지 못했다.
파라오 제 18왕조의 하셉수트 여왕(Hatshepsut : 재위 1479 BC~1458BC)이 푼트 지방에서부터
홍해로 이어지는 운하 공사를 시도했다는 흔적도 남아있으나 성공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에도 BC 1380년 경에 나일강과 홍해를 잇는 운하가 개착(開鑿)되었다. 그 후 이 운하는
천재(天災)와 전재(戰災)로 메워졌으나 여러 차례에 걸친 개수(改修)로 로마 시대와 아랍
지배하에서 중요한 수로로 존속하였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BC 600년 경 제 26왕조의 파라오 네카우 2세
(Nekau II : 재위 610 BC~595 BC)에 의해 운하가 다시 개착되었으며, 그 후 이집트를 정복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Darius I : 재위 522BC~486BC)에 의해 완성되었다고도 한다.
계속해서 헤로도토스는 이집트의 프톨레미 2세(Ptolemy II)가 BC 250년경 운하를 정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아바스조 칼리프 알 만수르(al-Mansur)가 AD 767년 델타 지역으로
침입하는 반란군을 막기 위해 운하를 폐쇄할 때까지 약 1000년간 파괴와 보수가 반복되었다고
전해진다.
16세기에는 베네치아의 상인이 수에즈 지협에 해양 운하를 개착하여 포르투갈·에스파냐의 해운
무역에 대항하려고 했고, 17∼18세기에는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독일의 라이프니츠가 수에즈
운하를 건설하여 영국·네덜란드의 아시아 무역에 대항하려고 했으나 모두 토목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실현하지 못하였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정복한 뒤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운하를 완공하고자
시도했다. 나폴레옹은 1799년에 찰스 르 페레(Charles Le Pere)에게 운하 프로젝트를 위임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홍해와 지중해의 수위 차가 10미터에 달하며, 운하 중간에 거대한 바위들이
많다는 사전조사 결과를 보고 계획을 포기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당시의 전쟁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정확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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