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5.취미활동(挑戰)/▶인문학공부(人文學)

법정 스스로 행복하라

by 사니조아~ 2024. 3. 6.

24.2.12
통도사 지안스님 정초 새배하로  갔다가  통도사내 
작은 서점에서 법정 '스스로 행복하라' 책을 보고 
바로 주문하여 좀 여유있게 읽었습니다.

내가 읽은 책만도 15권이상은 법정스님에 관계된
도서목록이 있는데 말 그대로 스스로 행복해 지기까지는
그냥 되는것이 아니고 노력을 해야 된다고 합니다.
오늘도 스스로 행복을 만듭시다 ㅋ


스스로 행복하라
■ 법정
0 1932년 전남 해남출생, 대학 3학년 때 입산
0 1956 효봉선사를 은사로 출가
0 1959년 4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승려 명봉을 강주로 대교과 졸업
0 불교신문 편집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등
0 1975년 10월 송광사 뒷산 불일암 은거
0 1994년부터 시민운동단체 '맑고 향기롭게' 운영
0 1995년 길상사 화주,
0 2003 화주직에서 물러남,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 은거
0 2010. 3. 11 (음 1.26) 입적
0 무소유, 오두막 편지 등 20여 권의 저서
■ 서문 - 스스로 행복하라
꽃들은 다른 꽃들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다른 꽃들을 닮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자기 나름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라일락이 철쭉을 닮으려고 한다거나 목련이 진달래를 닮으려고 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모두 다 자기 나름의 특성을 한껏 발휘하고 있습니다. 자기 내면에 지닌 가장 맑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그런 요소들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위대한 교사(敎師)입니다. 우리들에게 그냥 주어져 있는 나무나 풀이나 산 또는 강이 아니라,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면서 또한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훌륭한 교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가까이 하면 사람이 자기 본래의 모습과 자기가 설 자리를 잃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 몫의 삶을 살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기 몫의 삶, 자기 그릇이 있습니다. 따라서 자기 그릇에 자기 삶을 채워가며 살아야지 남의 그릇을 넘본다든가 자기 삶을 이탈하고 남의 삶처럼 살려고 하면 그건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저마다 각기 다른 특성
- 1 -
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어날 때 홀로 태어나듯이 저마다 독특한 자기 특성이 있기 때문에 누구를 닮으려고 하면 자기 삶 자체가 어디로 사라지고 맙니다.
사람은 자기 몫의 삶에 감사하며 살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그릇에 넉넉한 줄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내 인생을 삺고 있으면서도 부질없이 남과 비교함으로써 내 인생은 그만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남의 소도구, 남의 그림자밖에 되지 못하게 됩니다.
꽃들을 보세요. 철쭉도 있고, 라일락도 있고, 라일락이라 하더라도 보랏빛도 있고 흰빛도 있지 않습니까. 목련도 자목련과 백목련이 있듯이, 저마다 자기 빛깔과 모양과 향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집 살림, 내 가족끼리 사는 현실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것인 줄 아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내 인생을 살면서 빈 꺼풀처럼 남의 소도구처럼 그렇게 살고 맙니다.
사람은 또 자기 자신의 얼굴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얼굴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얼굴이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많은 세월을 두고 그렇게 형성된 것입니다. 설령 오늘 태어난 아이라 하더라도 엄마 배 속에서 열 달 동안 이루어진 것입니다.
얼굴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얼의 꼴' 즉 우리 정신의 탈입니다. 자기가 신체적인 행동이나 말씨, 생각으로 순간순간 익혀온 업이 밖으로 드러난 모습입니다. 그것이 바로 얼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얼굴을 지니고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얼굴을 그 사람의 이력서라고 합니다. 자기 이력서를 거울로 한 번 들여다보세요. 이 풍진 세상을 40, 50년 살다보면 주름도 생기고 기미도 끼게 마련입니다. 옛날 젊었을 때 찍은 사진을 보고 '아, 이런 세월도 있었구나'하고 지금 자신의 모습을 한탄할 필요는 없습니다.
겉모습 고친다고 예뻐지는 건 아닙니다. 안으로 예뻐지는 업을 익혀야지요. 가장 이름답고 착한 삶을 순간순간 이루어 나가야 그것이 밖으로 비치
- 2 -
어 나오죠. 예뻐지고 싶은 마음 자체는 나무랄 수 없는 겁니다. 그런데 착각들 하지 마세요. 아름다움이 어떤 표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마다 독특한 삶이 있듯이, 독특한 얼굴과 음성과 눈빛을 지니고 있습니다. 안으로 아름답고 착하게 살면, 그의 모습으로 그 아름다움이 베어 나오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얼굴이 어떻게 생겼든지 간에 아름답게, 착하게 살 때, 저절로 피어나는 꽃입니다. 누구든 무슨 일에 순수하게 몰입하는 것을 보세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모든 것은 항상 변합니다. 꽃이 항상 피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 꽃들도 며칠 지나면 다 지고 맙니다. 안팎으로 내면과 외부에서 상황은 늘 변하면서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모든 것은 덧없다고 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순간순간 우리가 하는 일이 곧 구체적인 내 인생의 내용이 되고 개인의 역사가 됩니다. 내 인생은 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마다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시시로 현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떳떳한 인간으로서 향상의 길로 털고 나서야 합니다. 그때마다 내 인생을 내가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새롭게 살아갈 때,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됩니다.
◉ 1장 행복
■ 지금 출가를 꿈꾸는 그대에게
저는 요사이 무척 바빴습니다. 제 얼굴을 보면 아시겠지만 추승구족(秋僧九足), 가을 중은 다리가 아홉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산에 사는 사람들은 이것저것 월동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게 뛰어 다녀야 합니다. 더구나 그간 비가 많이 내려 도랑 팬 곳, 오두막으로 올라오는 오솔길 무너진 곳 등을 혼자서 보수하느라 많이 바빴습니다.
저는 오늘 출가와 출가정신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합니다. 불자들이 스님들에게 종종 묻습니다. 왜 스님이 되었습니까?
- 3 -
출가는 집을 나온다는 뜻입니다. 종교적인 의미로는 집착과 타성의 집에서 훨훨 떨치고 나오는 것을 출가라고 합니다.
가출과 출가는 다릅니다. 출가는 자기 의지와 선택에 따라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삶의 궤도를 수정하기 위해 나오는 것이고, 가출은 여러가지로 상황이 좋지 않아 마지못해 집을 떠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가출과 출가는 자기 삶의 궤도를 수정하려는 행위입니다. 삶이란 이런 게 아닌데 하고 회의를 거듭하다가 떨치고 나오는 것입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도 소용돌이나 늪에 갇혀 허우적거릴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헤쳐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삶의 환경이 여러 가지로 다르므로 한결같을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없어서 보다 자기다운, 보다 꽃다운, 보다 인간다운 삶은 없을까 찾게 되는 것이 바로 출가 정신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왜 출가하는 것인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한 생각이 불쑥 일어나서 집을 떠나고 싶어지면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급해집니다. 꼭 불교적으로 출가하는 승려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단 덫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마음을 일으키면 한시가 바빠집니다.
저는 생각할수록 불가사의하고 도저히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또는 그 이후에도 중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출가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어디서 부르는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불쑥 마음이 일어나 집을 나와 산으로 들어가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본인 외에는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저 자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치 때가 되어 익은 열매가 떨어지듯, 어느 날 한 생각이 일어나 자연스럽게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전생을 따지면 여러 사연이 있겠지만 모두가 그렇습니다. 누가 부르는 것도 아니고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저마다 삶을 훌훌 털고 떠나옵니다. 그것이 출가입니다.
모든 수도자가 처음 집을 나올 때 갖는 그 절실한 생각, 그 물리칠 수 없는 의지를 출가 정신 혹은 구도 정신이라고 부릅니다. 그 정신을 늘 기억해
- 4 -
야 합니다. 처음 집을 나올 때의 그 때 묻지 않은 절실한 마음을 전 생애에 걸쳐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 마음이 풀어지면 출가 정신 자체가 풀어집니다. 늘 깨어 있으라는 것은 처음 출가 할 때의 마음을 잊지 말고 그것을 언제나 되새기라는 가르침입니다.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에 보면 이런 법문이 있습니다.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겠는가. 편함과 한가함을 구해서가 아니고,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라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해서도 아니다. 생과 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고, 끝없는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다.”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의 ‘출가 편’에 부처님 자신이 출가에 대해 고백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눈이 있는 사람은 왜 출가를 했는지, 그가 무엇을 생각하기 때문에 출가를 선택했는지 그 출가에 대해 나는 이야기하노라.”
여기서 말하는 것이 ‘눈이 잇는 사람’은 깨달은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의 출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사는 삶은 비좁고 번거로우며 티끌이 쌓인다. 그러나 출가는 널찍한 들판이며 번거로움이 없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초기 경전이기 때문에 표현이 무척 소박합니다. 아무리 넓은 집에 살아도 비좁고 번거롭다는 것입니다. 먼지라는 것은 털어내는 먼지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고뇌스러운 일들을 뜻합니다. 세속적인 것은 거리낌이 많고 너무 번거롭기 때문에 어디에도 거리낌이 없는 널찍한 벌판에서 살기 위해서, 한 마디로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안팎으로 자유스러워지기 위해서 출가 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욕망에는 근심이 따르는데, 출가는 평안하고 조용하다.”
집을 뛰쳐나왔다는 것은 집착과 욕망의 집으로부터 벗어났음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어떤 주거 공간, 어떤 지역에 있는 왕국, 그런 곳이 아니고 집착과 욕망의 집에서 떠나온 것입니다.
수행자는 본래 자기 집이 없습니다. 집착이 없고 욕심부릴 집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뇌가 없습니다. 부처님은 집착을 바다에서 소금물을 마시
- 5 -
는 것에 비유합니다. 더 많이 마실수록 더 목이 마르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기원정사에 있을 때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진실로 아무 것도 갖지 않은 사람은 행복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것도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 보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여기저기에 얽매여 그 얼마나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많지 않습니다. 물론 가족을 이루고 살 경우에는 우리 수행승들과 다르겠지만, 그래도 살 줄 아는 집과 너저분하게 늘어놓고 사는 집은 다릅니다. 내가 갖기는 짐스럽고 남 주기는 아깝고, 그런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늘 깨어 있는 것이 출가 정신이라면 물질의 더미에서 깨어나는 것 역시 출가입니다.
“욕망에는 근심이 따르는데, 출가는 편안하고 조용하다.”
왕자 싯다르타는 집착과 욕망의 집을 떠납니다. 집이 없는 사람은 자유롭습니다.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잠자리 삼아, 어디에도 집착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출가란 그런 것입니다. 괴로움의 원인은 집착입니다.
 
태국 출신의 고승 아잔 차 스님은 말합니다.
“조금 내려놓으면 조금 평화로워질 것이다. 많이 내려놓으면 많이 평화로워질 것이다. 완전히 내려놓으면 완전한 평화와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그때 세상과의 싸움은 끝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자만이 크게 얻을 수 있습니다. 전부를 버리지 않고서는 전체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출가를 이욕(욕망으로부터 벗어남), 또는 출진(먼지의 세상으로부터 떠남)이라 부릅니다.
진정한 출가는 알아차리는 순간, 그 자리에서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씩 버리려고 하면 끝이 없습니다. 그 자리에 새로운 물건이, 새로운 인연이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더 갖지 못해 부자유한 사람들이 있지만, 전체를 버리고 떠나는 사람은 그 순간 자유를 누립니다.
인간의 진정한 봄은 어디서 옵니까? 묵은 과거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할 때 새로운 움이 틀 수 있습니다.
출가는 소극적인 도피가 아니라 적극적인 추구입니다. 누구도 어떻게 해
- 6 -
줄 수 없기 때문에 내 의지로써 내 삶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인 것입니다.
집을 떠나오기 전 가장 아쉬워한 것은 책이었습니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서 어렵사리 모은 소중한 책들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못내 망설여졌습니다. 그것이 저의 유일한 소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을 차마 버릴 수 없어 서너 권만 챙겨 가기로 마음먹고 이 책 저 책 뽑았다가 다시 꽂아 놓기를 꼬박 사흘 밤을 되풀이해야 했습니다. 말 그대로 끊어버리기 힘든 집착이었습니다.
결국 세 권의 책을 골라 짐을 꾸렸지만, 산에 들어와서 보니 그 세 권 모두 시시하고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책들이었습니다. 집착을 버리고 나서 보면 모두가 이와 같습니다.
집에서 몸만 빠져나온 것을 가리켜 출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단 하나의 집착이라도 미련 없이 털고 나올 수 있어야 진정한 출가입니다. 책이든 그림이든 연인이든 단 한 가지의 집착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아직 출가가 아닙니다.
출가란 끝이 없는 탈출이며, 수행이란 일종의 장애물 경주와 같습니다. 궁극의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길 위의 사람으로 남아 있으면서 “나는 왜 출가 했는가? 무엇을 위해 출가했는가?”를 끊임없이 되묻는 것이 참된 출가자의 정신입니다. 그 물음만이 출가자를 깨어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는 더 이상 출가자가 아닙니다.
출가는 떠남이 아니라 돌아옴입니다. 진정한 나에게로, 그동안 잊혔던 본래의 나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출가는 소음과 잡다한 얽힘에서 벗어나 침묵의 세계로 들어섭니다. 말이 안으로 여물도록 인내함으로써 우리 안의 질서를 찾습니다. 중심을 바로 새워 진정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만 가려내는 그런 눈뜸입니다.
출가는 본래의 나를 찾아 나섭니다.
출가는 안정된 삶을 뛰어넘어 충만한 삶에 이르려는 것입니다.
출가는 문명의 도구를 뒤로하고 자연으로 다가갑니다.
출가는 스스로 단순하고 간소한 생활 양식을 선택합니다.
출가는 경제 논리가 아니라 진리를 삶의 원리로 삼습니다.
- 7 -
출가는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에 이르는 길입니다.
출가는 고통입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고통이 있습니다. 하나는 더 많은 고통으로 인도하고, 하나는 고통의 끝으로 인도하는 고통입니다. 큰 고통을 통해 모든 고통의 끝에 이르는 것이 출가입니다.
■ 화전민의 오두막에서
이따금 어디론가 훌쩍 증발해 버리고 싶은 그런 때가 있다. 허구한 날 비슷비슷하게 되풀이되는 무표정하고 무료하고 따분한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다. 그러나 그때마다 갈 곳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잘못 들어서면 또 다른 타성의 늪에 갇힐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9일 오후 서울 법련사에서 법회를 마치자마자 나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길을 떠났다. 어느 깊숙한 두메산골에 화전민이 살다가 비운 오두막이 있다는 말을 한 친지로부터 전해 듣고 결심을 단행하게 된 것이다. 서둘러 달려갔기 때문에 봄날의 긴 해가 기울고 땅거미가 질 무렵 그 오두막에 당도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전기도 통신수단도 전혀 없는 태곳적 그대로인 곳이었다. 시냇물 소리와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어둠이 내리자 영롱한 별들이 쏟아질 듯 빛을 발했고 박새가 번갈아가면서 밤새 울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머릿속이 아주 개운했다. 시냇가에 나가 흘러가는 물을 양껏 떠 마셨다. 문명의 발톱이 할퀴지 않은 곳이라 흐르는 시냇물인데도 물맛이 아주 좋았다. 다음 날 30리 밖에 있는 장에 내려가 필요한 연장들을 구해왔다. 우선 땔감을 마련하려면 톱과 도끼가 있어야 했다. 먹을 것은 가지고 갔기 때문에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되었다.
그 오두막에서 나는 꼬박 열하루를 지냈다. 내 팔자가 그렇듯이 어디를 가나 손수 끓여먹는 일이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었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은, 무엇보다도 사람 그림자를 전혀 볼 수 없는 점과 맨날 그저 그렇고 그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 미치지 않는 점이었다. 나는 근래에 와서 사람을 그리워해 본 적이 전혀 없다. 앞에서 ‘사람 그림자’라는 표현을 썼지만 솔직한 표현을 쓴다면 ‘사람
- 8 -
꼴’이라 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시달린 처지라 사람 꼴 안 보니 얼마나 좋았는지 몰랐다.
우리가 진정으로 만나야 할 사람은 그리운 사람이다. 한 시인의 표현처럼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그런 사람이다. 곁에 있으나 떨어져 있으나 그리움의 물결이 출렁거리는 그런 사람과는 때때로 만나야 한다. 그리워하면서도 만날 수 없으면 삶에 그늘이 진다. 그리움이 따르지 않는 만남은 지극히 사무적인 마주침이거나 일상적인 스침이고 지나감이다. 마주침과 스침과 지나감에는 영혼의 메아리가 없다. 영혼에 메아리가 없으면 만나도 만난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다음과 같은 옛글이 떠올랐다.
해가 뜨면 밖에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방에 들어가 쉬고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을 갈아 먹고 사니
누가 다스리건 그게 무슨 상관이냐
제대로 된 정치가 행해진다면 시민들의 입에서 이런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와야 한다.
 
나더러 만약 이 나라의 대통령을 고르라고 한다면 우선 ‘대통령 병’에 걸리지 않은 인사를 선택하겠다. 어떤 병이든 만성 질환의 경우는 거의 치유가 불가능하다. 또 한쪽으로 치우치는 강한 정치가 아니라 부드러운 정치를 할 사람에게 점을 찍을 것이다. 절대 권력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부드러운 것이 결과적으로는 강한 것이고 따라서 설득력을 지닌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한 주일에 한두 번 정도라도 국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그런 멋있는 사나이를 이 땅의 대통령 자리에 앉히고 싶다.
이 땅의 정치에서 우리는 일찍이 웃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무고한 서민들에게 잔뜩 겁을 먹게 하거나 불안에 떨게 하면서 팽팽한 긴장감만을 심어 주었지 언제 한 번 속 시원히 웃어 본 적이 있는가. 웃음을 선사할 줄 모르는 정치는 향기 없는 꽃이나 마찬가지다.
- 9 -
그 오두막에서는 밤낮으로 시냇물 소리가 들려 영혼에 묻은 먼지까지도 말끔히 씻어주는 것 같았다. 해발 7백 미터가 넘는 그곳은 봄이 뒤늦게 찾아왔다. 내가 그곳을 떠나올 무렵에야 온 산에 진달래가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났다.
나는 금년에 봄을 세 번 맞이한 셈이다. 첫 번째 봄은 부겐빌레아가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태평양 연안의 캘리포니아에서였고, 두 번째 봄은 산수유를 시작으로 진달래와 산벚꽃과 철쭉이 눈부시도록 피어난 조계산에서였다. 그리고 두메산골의 오두막에서 무리지어 피어난 민들레와 진달래꽃 사태를 맞은 것이다.
나는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그 두메산골의 오두막에서, 이다음 생에는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앞뒤가 훤칠하게 트인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자 원을 세웠다. 그 원이 이루어지도록 오늘을 알차게 살아야 겠다.(1992)
■ 오두막 편지
절기로 오늘이 하지(夏至)다. 여름철 안거도 어느 새 절반이 되었구나. 그동안 아주 바쁘게 살았다는 생각이 어제 오늘 든다. 모처럼 산거(山居)의 한적한 시간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젯밤에는 오랜만에 별밭에 눈길을 보내고,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도 보았다.
그토록 머리 무겁게 생각해 오던 방 뜯어 고치는 일을 감행했다. 이 궁벽한 산중에서 방을 뜯어고치는 일은 여간 힘들고 머리 무거운 일이 아니다. 미친바람이 불어오면 굴뚝으로 나가는 연기보다 아궁이로 내뿜는 연기가 더 많을 정도로 불이 들지 않았다. 아랫목은 발을 디딜 수 없을 만큼 프라이팬처럼 뜨거워도 윗목은 냉랭하고 습해서 집을 비워두면 곰팡이가 슬었다.
이번에는 아예 아궁이와 굴뚝의 위치를 바꾸고 방구들을 다시 놓았다. 다행히 불이 잘 들고 방이 고르게 덥다. 그동안 경험을 통해서 성실한 일꾼과 나는 온돌방의 묘리를 제대로 터득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은 비단 방 고치는 일만이 아니라 인간사 전반에 걸쳐 해당될 것이다. 실패가 없으면 안으로 눈이 열리기 어렵다. 실패와 좌절을 거치면서 새 길을 찾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 생애의 과정에서 볼 때 한때의 실패와 좌절은 새로운 도약과 전진을 가져오기 위해 딛고 일어서야 할 디딤돌이다.
- 10 -
■ 박새의 보금자리
며칠 전부터 창밖에서 ‘톡톡 톡톡'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무심히 흘리고 말았었다. 옮겨 심은 나무에 물을 주러 나갔다가 톡톡 소리를 내는 그 실체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난로 굴뚝의 틈새에서 박새가 포르르 날아가는 것을 보고서였다. 박새가 그곳에 깃을 치고 사는 모양이었다.
박새는 여느 새와는 달리 거처를 별로 가리지 않는다. 웬만한 곳이면 아무데나 보금자리를 친다. 뒤꼍에 놓아둔 상자 속이나 혹은 처마 밑 모서리 같은 데 둥지를 틀 만하면 그곳에 거처를 마련하여 알을 낳아 새끼를 친다.
박새의 대범한 생태를 지켜보면서 그동안 내가 살아온 거처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출가 수행자에게는 원래 자기의 집이 따로 없다. 설사 자신의 힘으로 지어놓은 절이나 암자라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유물이지 개인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절이 1천여 년을 두고 우리 모두의 절로서 오늘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저 인연 따라 한 때 머물다가 그 인연이 다해 떠나면 그뿐이다. 언젠가는 이 몸뚱이도 버리고 떠나갈 텐데, 나무와 흙과 돌과 쇠붙이 등으로 엮어 놓은 건조물에 얽매일 수 있겠는가.
산에 들어와 산지 어느 새 40년, 그동안 내가 기대고 살던 곳이 어디어디였나. 오늘 새벽 두견새 소리를 들으면서 헤하려 보았다.
중 되려 찾아간 절이 통영 미래사, 집이 낮아 문지방에 연방 머리를 받히면서 배가 고파서 우물가에 흘린 국숫발도 맛있게 주워 먹던 시절이었다. 행자실에서 딱딱한 목침을 베고 자는데도 일이 고되어 잠이 늘 꿀맛 같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때는 조촐한 선원(禪院)이었는데, 요즘은 집도 커다랗게 세워졌고 절 분위기도 예전과는 딴판이 되었다.
중이 되어 스승을 모시고 처음으로 지낸 곳이 지리산에 있는 하동 쌍계사 탑전, 섬진강 건너 백운산이 아득히 바라보이는 선원이었다. 입선(入禪)시간이 되면 방이 비었을 때도 죽비 소리가 저절로 울린다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착실한 아주 착실한 풋중 시절을 보냈다. 지금 돌이켜 보아도 맑고 투명한 시절이었다. 한겨울 맨밥에 간장만 먹고 지내면서도 선열
- 11 -
(禪悅)로 충만하던 나날이었다. <화엄경>에 “초발심 때 바로 깨달음에 이른다.” 라는 말이 있는 데 모든 발심 수행자에게 귀감이 될 교훈이다.
다음으로 의지해 살던 곳이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봉안된 장경각 담 밖에 있는 퇴설당 선원이었다. 큰절에서 많은 대중과 어울려 살게 되니, 보고 듣고 느끼면서 배울 것도 많지만 무가치한 일에 시간을 쏟아버리는 그런 아쉬움도 있었다. 어쨌든 이곳 가야산 해인사에서 열 두 해를 살면서 말하자면 중으로서 잔뼈가 굵은 셈이다.
해인사에서 운허스님과 만나게 된 인연으로 내 중 살림살이는 크게 바뀌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걸망 하나 메고 이 산 저 산 찾아나서는 운수승(雲水僧)이었는데, 이때부터 원고지 칸을 메우는 일에 발을 적시게 되었다.
양산 통도사 원통방(圓通房)에서 불교 사전 편찬 일을 거들면서 비로소 신문을 보고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움직이는 세상과 접하게 된 것이다. 절에 들어오기 전에 익혔던 업이 서서히 움트기 시작했다.
그해 4 ․ 19 혁명을 맞이했었다.
서울 안국동에 있는 선학원은 내가 차음으로 스승을 친견,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걸치게 된 인연이 있는 절인데, 불교 사전 일로 이곳에 올라와 있으면서 5 ․ 16을 겪었다.
사전이 출간되자 나는 다시 옛 보급자리로 돌아갔다. 해인사 관음전, 앞산이 내다보이는 전망 좋은 맨 끝방, 이름하여 소소산방(笑笑山房).
동국대학에 대장경을 번역하는 역경원이 개원된 후 원장으로 취임한 운허스님께서 함께 일을 하자고 간곡히 권유하셔서, 그때는 광주군 언주면이었던 봉은사로 거처를 옮겼다.
판전 아래 별당이 내게 배당된 집이었는데, 노스님도 아닌 젊은 것의 처소에 별당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아 다래헌(茶來軒)이라고 이름을 지어 편액을 달았다. 이곳에서 나는 차 맛을 비로소 알았기 때문이다.
6년 남짓 지낸 다래헌 시절, 독 묻은 세월에 뛰어들어 군사독재에 저항,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옮겨 간 곳이 승보사찰인 조계산 송광사. 산중 빈 암자터에 열다
- 12 -
섯 평 3칸짜리 집을 지어 이름을 불일암이라고 했다. 중노릇을 다시 시작한다는 결의로 집을 지은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철저하게 홀로 사는 연습을 해 온 셈이다.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이상야릇한 말뜻도 알게 되었다.
한 곳에서 15, 16년을 살다보니 삶이 무료하고 당초의 생기가 점점 사라져 갔다. 그리고 헛 이름에 속아 찾아오는 사람들로 ‘함께 할 수’가 없었다. 불일암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지만 내 삶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훌쩍 떠나와 머문 곳이 이 오두막이다.
이 산 저 산, 이 절 저 절을 다니면서도 이곳이야말로 영원한 내 안식처라고 생각한 데는 아직 없다. 인연 따라 머무는 날까지 머물면서 나를 가꾸고 다듬을 따름이다.
■ 텅 빈 충만
오늘 오후 큰절에 우편물을 챙기러 내려갔다가 한 스님이 거처하는 다향산방(茶香山房)에 들렀었다. 내가 이 방에 가끔 들르는 것은 방 주인의 깔끔하고 정갈한 성품과 아무 장식도 없는 빈 벽과 텅 빈 방이 좋아서다.
이 방에는 어떤 방에나 걸려 있음직한 달력도 없고 휴지통도 없으며 책
상도 없이 한 장의 방석이 화로 곁에 놓여 있을 뿐이다. 방 한 쪽 구석에는
항시 화병에 한 두 송이의 꽃이 조촐하게 꽂혀있고 꽃이 없을 때는 까치밥
같은 빨간 나무 열매가 까맣게 칠한 받침대 위에 놓여 있곤 했었다.
물론 방 이름이 다향산방이므로 차가 있고 도구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것들 또한 눈에 띄지 않는 벽장 속에 갈무리 되어 있다.
출가정신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칼을 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칼날이 무뎌지면 칼로서의 기능은 끝난다. 칼이 칼일 수 있는 것은 그 날이 퍼렇게 서 있을 때 한해서다. 누구를 상하게 하는 칼날이 아니라, 버릇과 타성과 번뇌를 가차없이 절단하는 반야검(般若劍) 즉 지혜의 칼날이다.
선종사(禪宗史)에 방 거사(龐居士)라는 특이한 선자(禪者)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에 걸쳐 살다 간 재가신자인데, 마조의 법을 이었으며 어록(語錄)이 전해질 만큼 뛰어난 삶을 살았다.
- 13 -
그는 엄청난 재산을 지닌 소문난 부호였다. 어느 날 자신의 전 재산을 배에 싣고 바다에 나가 미련 없이 버린다. 어떤 문헌에는 동정호로 되어 있다. 전 재산을 바다에 버리기 전에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자신에게 ‘원수’가 된 재산을 남에게 떠넘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 결심을 단행한다. 살던 저택을 버리고 조그만 오막살이로 옮겨 앉는다. 대조리를 팔아서 생계를 이으면서 딸과 함께 평생동안 수도 생활을 한다.
그의 어록에는 이런 게송이 실려 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지만
나는 순간의 고요를 즐긴다.
돈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고요 속에 본래의 내 모습 드러난다
또 다음과 같이 읊기도 했다.
탐욕이 없는 것이 진정한 보시요
어리석음 없는 것이 진정한 좌선
성내지 않음이 진정한 지계(持戒)요
잡념 없음이 진정한 구도다
악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인연 따라 거리낌 없이 사니
모두가 함께 반야선(般若船)을 탄다
이제 내 귀는 대숲을 스쳐오는 바림소리 속에서, 맑게 흐르는 산골의 시냇물에서, 혹은 숲에서 우짖는 새소리에서, 비발디나 바흐의 가락보다 더 그윽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빈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충분하다.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가득 찼을 때보다도 더 충만하다. (1989)
- 14 -
◉ 2장 자연
■ 산에는 꽃이 피네
엊그제부터 매화가 피어나고 있다. 맑은 향기를 지닌 청매(靑梅)가 뜰에 은밀한 봄을 피우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 순천 매곡동에서 옮겨다 심은 매화나무다.
그 전에 있던 매화나무가 무슨 연고에선지 시들어 사라진 뒤로는, 봄이면 그 빈자리가 늘 섭섭하고 아쉬웠다. 꽃망울이 부풀어 오르는 가지를 바라볼 때마다 잔잔한 기쁨이 일고, 내 안에서도 은은한 매화 향기 같은 삶의 향기가 배어나오곤 했었다. 그런 꽃가지가 사라지고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고 그저 덤덤할 뿐이었다. 서너 해 섭섭하고 아쉬운 그 빈자리를 지켜보다가 지난해 봄 그런 내 마음을 알아준 친지를 따라 매화나무를 구하러 나섰다 순천의 한 꽃가게에 들러 매화나무를 구할 데가 없겠느냐고 물으니, 한길 건너 나무를 많이 가꾸는 집을 가리켜 주었다.
철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향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사이에 때마침 허옇게 만개한 매화나무 두 그루가 내 눈을 번쩍 뜨게 했다. 귀한 청매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꽃받침이 연녹색이고 흰꽃인데도 훨씬 말쑥하다. 다른 매화에 비해 향기 또한 깊다.
이 집 주인은 내 글을 읽는 독자라면서 나를 알아보았다. 그러면서 원래 팔지 않는 나무라면서도 선뜻 한 그루를 나누어 주겠노라고 했다. 이 집 주인 문태석씨는 전에 교직에 있을 때 수업료를 못 내는 가난한 학생들을 보면서 느낀바 있어 그들에게 도움이라도 될까 해서 시작한 농원이라고 했다.
그 전에 매화나무가 있던 그 자리를 파고 심었다. 그런데 꽃에 생기가 돌지 않고 마지못해 피어 있는 것 같았다. 꽃이 피고 나서도 꽃잎이 지지 않고 가지에서 그대로 말라붙었다. 그뿐만 아니라 꽃이 지고나면 파릇파릇 잎이 나와야 하는데 새잎이 돋지 않았다.
아침 저녁 매화나무 곁에 서서, 제발 기운을 차려서 이 뜰에서 함께 살자고 속으로 뇌이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지 끝에서 돋아나는 파릇파릇한 새순을 보고 감격, 매화나무를 쓰다듬으면서 합장 배례를 했었다.
- 15 -
2월 어느 날 태평양을 건너가니 캘리포니아 남쪽에서는 봄기운이 한창이었다. 자목련을 시작으로 배꽃과 철쭉, 복숭아꽃과 살구꽃, 양귀비꽃 등이 화사한 봄을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태평양 연안의 길목에도 서양 채송화에 매화 살구꽃, 부rps빌레아가 눈부시게 피어나고 있었다.
순수하게 홀로이고 싶을 때, 이른 아침 이 태평양 연안도로를 달리고 있으면 팍팍하기 쉬운 우리 삶에 바다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를 실감한다. 물처럼 부드러운 것이 어디 있는가. 꽃처럼 곱고 향기로운 것이 어디 또 있겠는가,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또한 삶의 가치 척도를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 것인지 저절로 생각이 모아지는 그런 길이기도 하다.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이런 일들이 내게는 그 어떤 정치나 경제 현상보다 훨씬 절실한 삶의 보람으로 여겨진다. 새벽 달빛 아래서 매화향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내 안에서도 은은히 삶의 신비가 배어나오는 것 같다.(1991)
■ 물 소리 바람 소리
불일암에서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살았는데 새로 옮겨온 이곳에서는 늘 시냇물 소리를 들어야 한다. 산 위에는 항시 바람이 지나간다. 그러나 낮은 골짜기에는 바람대신 시냇물이 흐른다.
물소리 바람소리가 똑같은 자연의 소리인데도 받아들이는 느낌은 각기 다르다. 숲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때로는 사는 일이 허허롭게 여겨져 훌쩍 어디론지 먼 길을 떠나고 싶은. 그런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폭풍우라도 휘몰아치는 날이면 스산하기 그지없어 내 속은 거친 들녘이 된다.
그런데 이번에 옮겨온 집은 시냇가에 자리 잡은 곳이라 쉬지 않고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싫으나 좋으나 밤낮으로 듣지 않을 수 없다. 처음 며칠 동안은, 더구나 비가 내린 뒤라 그 소리에 여간 마음이 쓰이지 않았는데, 이제
- 16 -
는 무심해져서 거슬리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는 소리라고, 인생이 흘러가는 소리라고 생각하니 도리어 시간에 대한 관념이 새로워진다,
바람소리가 때로는 까칠까칠 메마르고 허전하게 들리는 것과는 달리, 물소리는 어딘지 촉촉하고 풍성하게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한없이 무엇인가를 씻어내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불일암에서는 꼬박 7년 반을 살았다. 막상 떠나려고 하니 우선 부처님한테 미안하고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이 부처님은 10여 년 전 다래헌 시절부터 모셔온 인연이 있다. 어느 날 폐사된 절에서 가져와 큰 방 탁자 위에 모셨는데 바라보고 있으니 전에 없이 가슴이 설레었다. 첫눈에 이끌리게 된 것이다. 그것은 ‘만남’이었다. 원불(願佛)로 모시리라고 마음먹었다. 거불(古佛)은 아니지만 단아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떠나면서 마음에 걸리는 이웃으로는 내 손수 심어서 가꾼 나무들이었다. 떠나오는 날 후박나무와 향나무 은행나무들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면서, 우리를 두고 혼자서만 가려느냐고 마냥 서운해 하는 것 같았다.
허구한 날 우리는 맑은 햇살을 함께 쪼였고, 별과 달도 함께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보라와 비바람도 또한 함께 받아들였다. 가지를 따 주고 두엄을 묻어준 덕분으로, 그들은 청정한 잎과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여름날의 더위를 식혀 주곤 했었다. 우리는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고 있는 존재로서 살뜰한 정을 주고받았었다.
* 목연탑(木煙塔) : 나무 타는 연기가 나오는 굴뚝
* 즉시현금(卽時現金) 갱무시절(更無時節)
바로 지금이지 다시 시절은 없다. <임제(臨齊)선사의 어록 중에서>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달력 위의 3월은 산동백이 꽃을 피우고 있지만, 내 둘레는 아직 눈 속에 묻혀 있다. 그래도 개울가에 나가보면 얼어붙은 그 얼음장 속에서 버들강아지가 보송보송한 옷을 꺼내 입고 있다.
- 17 -
겨울 산이 적막한 것은 추위 때문이 아니라 거기 새소리가 없어서일 것이다. 새소리는 생동하는 자연의 소리일 뿐 아니라 생명의 흐름이며 조화요 그 화음이다. 나는 오늘 아침 겨울 산의 적막 속에서 때아닌 새소리를 듣는다. 휘파람새와 뻐꾸기와 박새, 동고비, 할미새와 꾀꼬리, 밀화부리, 산비둘기, 그리고 소쩍새와 호반새 소리에 눈 감고 숨죽이고 귀만 열어 놓았다.
어제 시내를 다녀오는 길에 한 노보살님한테서 받은 선물을 오늘 아침에 열어보니, 어떤 조류 학자가 숲과 들녘을 다니면서 채록한 ‘한국의 새’소리들을 출판사에서 펴낸 녹음테이프였다.
눈 속의 오두막에서 녹음된 새소리를 듣고 있으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별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감흥이 일었다. 맑게 흐르는 시냇물 소리, 거기에 곁들인 아름다운 새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으면, 문득 초록이 우거진 숲에서 풋풋한 솔향기가 풍겨오는 것 같다. 그리고 맑은 햇살이 비낀 숲속의 오솔길에 청초한 풀꽃과 푸른 이끼가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영롱한 구슬이 도르르 구르는 것 같은 호반새 소리를 듣고 있으니, 불일암의 오동나무가 떠오른다. 호반새는 부리와 발과 깃털 할 것 없이 몸 전체가 붉은색을 띤 여름새다. 초입의 그 오동나무에는 새 집이 네 개나 아래서 위로 줄줄이 뚫려 있는데, 초여름이 되면 딱따구리가 새끼를 치기 위해 부리로 쪼아 뚫어 놓은 구멍이 다 그런데 번번이 이 호반새가 날아와서 남이 애써 파 놓은 집을 염치없이 차지하고 집주인 행세를 한다. 사람으로 치면 뻔뻔스러운 집 도둑인 셈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목청만은 들을 만하다.
영 너머에 선 듯 아득히 뻐꾸기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뻐꾸기 소리는 아득함을 · 듣는 사람의 가슴에 어떤 아득함을 심어주는 것 같다. 밝고 명랑한 꾀꼬리 소리는 귀로 들리고, 무슨 한이 밴것 같은 뻐꾸기 소리는 가슴으로 들린다. 밤에 우는 소쩍새의 목청이 차디찬 금속성을 띤 금관악기의 소리라면, 멀리서 들려오는 뻐꾸기의 목청은 푸근한 달무리가 아련하게 감도는 목관악기의 소리일 것이다.
 
꾀꼬리의 목청은 여럿이서 들을 때 더욱 즐겁고 뻐꾸기는 혼자서 벽에라도 기대고 들을 때가 좋다. 남도의 산에서는 해마다 5월 5~6일경이면 어김없이
- 18 -
꾀꼬리와 뻐꾸기가 잇따라 찾아온다.
꾀꼬리 소리는 가까이서 들을수록 좋고, 뻐꾸기는 아득하게 멀리서 들리는 소리가 더 어울린다.
오래 전 춘원의 글에서 읽은 듯싶은데, 일갓집 처녀 아이가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고 몸져 누워 꼬치꼬치 말라간다. 어느 날 들여다보러 갔더니 그 아이가 꺼져 가는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하더란다.
“아저씨 저는 죽으면 뻐꾸기가 되어 이산 저산으로 날아다니면서 내 한을 노래 할래요…….”
우리 곁에서 새소리가 사라져 버린다면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팍팍하고 메마를 것인가. 새소리는 단순한 자연의 소리가 아니라 생명이 살아서 약동하는 소리요. 자연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음악이다. 그런데 이 새소리가 점점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린 참새며 까치며 희귀 조류까지 사람의 손에 잡혀 먹히고, 독한 농약으로 인해 논밭이나 숲에서 새들이 무참히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극심한 대기 오염 때문에 텃새와 철새들도 이 땅을 꺼리고 있다.
새가 깃들지 않은 숲을 생각해 보라, 그건 이미 살아 있는 숲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연의 생기와 그 화음을 대할 수 없을 때, 인간의 삶 또한 크게 병든 거나 다름이 없다.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1993)
■ 버리고 떠나기
뜰가에 서 있는 후박나무가 마지막 한 잎마저 떨쳐버리고 빈 가지만 남았다. 바라보기에도 얼마나 홀가분하고 시원한지 모르겠다. 이따금 그 빈 가지에 박새와 산까치가 날아와 쉬어간다. 부도 앞에 서 있는 벚나무도 붉게 물들었던 잎을 죄다 떨구고 묵묵히 서있다. 우물가 은행나무도 어느새 미끈한 알몸이다.
잎을 떨쳐버리고 빈 가지로 묵묵히 서있는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자신도 떨쳐버릴 것이 없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나무들에 견주어 볼 때 우리 인간들은 단순하지 못하고 순수하지 못하며, 건강하지도 지혜롭지도 못한 것 같다. 그저 많은 것을 차지하려고만 하고, 걸핏하면 서로 미워하고
- 19 -
시기하면서 폭력을 휘두르려 하며, 때로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콕 막혀 어리석기 짝이 없다.
오늘 오후, 옷깃을 여미게 할 만큼 바람 끝이 쌀쌀하고 잔뜩 찌푸린 날씨였다. 산을 오르기로 했다. 산에 사는 사람이 산을 오른다고 하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산속에서도 오를 산이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첩첩 산이라고 하지 않던가.
뒷등성이로 올라 오리나무 숲을 찾아갔다. 오리나무 숲도 잎들을 어지간히 떨쳐버리고 옹기종기 모여 겨울 채비를 하고 있었다. 훨훨 벗어버린 나목(裸木)의 숲속을 거닐고 있으면 이상하게 도 아주 포근하고 따뜻하게 나무들의 체온이 다가선다. 잎을 무성하게 달고 있을 때는 그런 걸 느낄 수 없었는데, 빈 가지로 서 있는 나무들에서 도리어 따뜻함을 감촉할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저것 많이 차지하고 있는 사람한테서는 느끼기 어려운 그 인간미를, 조촐하고 맑은 가난을 지니고 사는 사람한테서 훈훈하게 느낄 수 있다. 이런 경우의 가난은 주어진 빈궁이 아니라, 자신의 분수를 그릇에 맞도록 자기 몫의 삶을 이루려는 선택된 청빈일 것이다. 주어진 가난은 악덕이고 부끄러움일 수 있지만, 선택된 그 청빈은 결코 악덕이 아니라 미덕이다.
무엇이든지 차지하고 채우려고만 하면 사람은 거칠어지고 무디어진다. 맑은 바람이 지나갈 여백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함께 사는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저마다 자기 몫을 더 차지하고 채우려고만 하기 때문에 갈등과 모순과 비리로 얽혀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개인이나 집단이 정서가 불안정해서 삶의 진실과 그 의미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만약 나뭇가지에 묵은 잎이 달린 채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않고 있다면 계절이 와도 새잎은 돋아나지 못할 것이다.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오는 것을, 단순히 계절의 순환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비본질적인 삶을 이룰 수 있다는 암시요 계시로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 20 -
나무줄기를 쓰다듬으니 거칠거칠한 그 속에서도 여리디 여린 부드러움이 있다. 거칠고 살벌한 이 풍진 세상에서도 우리 안에는 원천적으로 여린 부드러움이 내재되어 있다는 소식일까.
산마루에 올라 첩첩 쌓인 먼 산을 바라본다. 아래서 올려다 볼 때와는 달리 시야가 툭 트이니 내 마음도 트이는 것 같다. 보다 멀리 내다보려면 다시 한층 더 높이 올라가라는 옛말이 실감이 난다.
우리 옛 그림에 선비가 언덕에 올라 뒷짐을 지고 멀리 내다보는 풍경이 더러 있다. 얼핏 보면 무료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유심히 보면 그 안에 삶의 운치와 여유와 지혜가 들어 있다.
도시의 빌딩에서 내다보이는 정경은 또 다른 빌딩일 뿐이다. 도시에는 여백이 별로 없이 그저 빽빽이 들어선 과밀뿐이다. 따라서 삶의 여백 또한 지니기 어렵다. 도시의 온갖 범죄도 이런데서 연유되지 않을까 싶다.
물건이나 공백은 그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혀 주고 있다.
자연의 리듬은 멈추거나 끝나는 일이 절대로 없다. 자연은 스스로를 정화하면서 가장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우리 인간도 먹는 것, 입는 것, 생각하고 활동하는 것 대인관계 등에 억지나 과시나 허세가 없이 지극히 자연스러워야 한다. 자연스러움이 곧 건전한 삶을 이룬다.
■ 장마철 이야기
일 년 열두 달,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 중에서 무더운 여름철을 나는 좋아할 수가 없다. 눅눅한 습기와 시루 속 같은 더위에 모기와 벌레 등 물것이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이런 더위에 지지 않고 이기려면 더위를 피할 게 아니라 그 더위 속에 뛰어들어야 한다. 더위 자체가 되어 일에 몰입하게 되면 더위가 미칠 수 없다. 옛 선사들의 가르침에도 있듯이 더울 때는 더위 그 자체가 되고 추울 때는 추위 그 자체가 되어야, 더위와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비가 많이 내릴 듯한 날에는 이른 아침에 미리 군불을 두둑히 지펴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군불을 지펴두면 낮 동안 발을 드리
- 21 -
운 방 안에서 속옷 바람으로 홀가분하게, 고실고실 쾌적한 상태에서 밀에 몰입할 수 있어서 좋다. 둘째는 비가 많이 내리면 아궁이에 물이 고이기 때문에 미리 보온을 해 두려는 배려에서다.
옛 집터에 집을 지을 때는 반드시 터를 돋우어 지어야 한다는 데, 산거(山居)를 마련할 무렵의 내게는 그런 예비지식이 없어 일꾼들이 하는 대로 맡겨 두었더니, 폭우가 장시간 쏟아지면 그때마다 아궁이에서 물이 났다.
산천경개의 겉모습만 보고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는 한가하게 새소리나 듣고 부드러운 앞산의 산마루나 바라보면서 맑음과 고요를 즐기는 듯한 산중생활을 부러워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한가와 고요와 맑음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만한 보상을 치른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지. 그래서 세상에는 공것도 없고 거저 되는 일도 없다. 그 어떤 형태의 삶이건 간에 그 삶의 차지만큼 치러야 할 몫이 있는 법이다. 크면 클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치러야 할 몫도 또한 크고 많을 수밖에 없다. (1991)
■ 달 같은 해, 해 같은 달
태풍의 영향으로 며칠 동안 궂은 날씨이더니 오늘 오랜만에 눈부신 햇살을 대하게 됐습니다. 산에서 살면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바람이 치면 기분 또한 무겁게 처지고, 밝은 햇살과 맑은 바람이 살랑거리는 화창한 날에는 숲속의 새처럼 명랑해집니다. 자연의 품에 안겨 살아가면 사람도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는 모양입니다.
오늘 밤에는 모처럼 달빛이 이 산골의 오두막을 찾아왔습니다. 창문을 열고 한참동안 달마중을 했습니다. 무슨 인연으로 이 두메산골의 오두막에 와서 살고 있는지 내 처지를 헤아립니다. 사람을 피해서 기댈 곳을 찾다보니 화전민이 살다가 버리고 간 이 오두막을 만나게 됐습니다. 다 고마운 시절 인연의 덕인 줄 압니다.
휴정(休靜) 선사의 시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이름 때문에 숨어 살기 어려워
마음 편히 쉴 곳이 없다
지팡이 날리고 또 날려서
찾는 산이 깊지 않을까 두렵네.
- 22 -
사람이 같은 사람을 피해서 살아야 하다니 남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진정으로 그 ‘사람’을 위해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은 심정입니다.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다는 말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먼 데 있는 사람은 사랑할 수 있어도 가까이서 일없이 추근거리는 추상적인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물론 자비심이 모자란 탓인 줄 잘 알지만 내 삶의 질서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내 팔자가 그런 탓인지 어디를 가나 나는 손수 끓여먹는 자취신세입니다. 늦은 봄에 심은 몇 구덩이의 호박 넝쿨에 주렁주렁 애호박이 매달려 있고, 고추밭에서 딴 풋고추가 요즘의 내 식탁에서는 중요한 부식입니다. 이곳에 와 지내면서 산자락에 피는 들꽃의 아름다움에 새로운 눈이 뜨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산골의 오두막이 마음에 드는 것은 사람 그림자를 볼 수 없는 점입니다. 이른 봄에 약초를 캐러 가는 산골 사람들 대여섯을 본 이후로는 지나가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누가 묻기를, 사람이 그립지 않느냐고 하는데, 글쎄요. 모르긴 해도 한 동안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고 듣지 않아도 내 삶에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잡다한 정보로부터 해방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하고 순수해 질 수 있습니다.
청명한 밤하늘에서 별자리를 찾는 것이 요즘 내 밤 일과입니다. 별자리에 대한 책을 보면서 실제로 그 별들을 찾는 일은 신기하고 흥미롭습니다. 별밤을 지켜보고 있으면 내 안에서도 초롱초롱 별들이 돋아나는 것 같습니다.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롭습니다. 이런 자연을 가까이 대하면 사람의 마음도 한없이 아름답고 신비로워질 것입니다.
자연을 등진 인류 문명은 결국 쓰레기로 처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일은 자연을 자연대로 지키면서 우리 안에서 그 아름다움과 신비를 캐내는 일이 아닐는지요. (1992)
■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
새벽 예불을 마치고 나니 문득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간밤에는 처마 끝에 풍경 소리가 잠결에 들리던 걸로 미루어 바람이 불었던 모양이다.
- 23 -
이제는 풍경 소리도 멎은 채 소근소근 비 내리는 소리뿐이다.
밖에 나가 장작더미에 우장을 덮어주고 뜰가에 내 놓았던 의자도 처마 밑에 들여 놓았다. 그리고 요즘 막 꽃대가 부풀어 오르는 수선화의 분도 비를 맞으라고 밖에다 내 놓았다. 방에 들어와 빗소리에 귀를 모으고 있으니 참 좋다. 오랜만에 어둠을 적시는 빗 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이 말할 수 없이 그윽해지려고 한다.
삼불 김원룡 박사의 문인화전이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열렸다. 1백여 점 되는 그림가운데 관음상이 두 폭 있었는데 그 중 한 폭이 그림도 뛰어나고 화제(畵題)도 좋아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내 기억에 자리하고 있다. 작년 부처님 오신날에 그린 그림인데
‘관세음청세음 시자비부세만물무비관세음보살(觀世音聽世音施慈悲浮世萬物無非觀世音菩薩)’이란 화제를 달고 있었다.
“세상의 소리를 살피고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여 자비를 베푸니 이 풍진 세상의 만물이 곧 관세음 보살이 아닌 것이 없더라.”
경전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은 듣는 일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했다. 이와 같이 어떤 현상이나 사물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우리 삶에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사는 일에 급급하여 자연의 소리를 들을 줄 모른다. 아니, 아예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바닷가에 살면서도 파도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산중에 살면서도 솔바람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른다. 시시껄렁하고 쓸데없는 소리에는 곧잘 귀를 팔며 덩달아 입방아를 찧으면서도 마음을 맑게 하고 평온하게 하는 그런 소리에는 귀를 닫기가 일쑤다.
일상에 매몰된 그런 눈과 귀와 마음이 아니라 눈 속의 눈으로 귓속의 귀로, 마음속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티 없이 맑은 심성을 지닌 사람만이 어떤 현상에서나 살아 있는 진리를 발견한다.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은 서로 다른 종교 속에서도 하나의 진리를 발견하고, 닫힌 마음을 지니게 되면 하나의 진리대신 차별만을 무수히 찾아낸다.
하루하루 한순간 한순간이 우리를 형성하고 거듭나게 한다. 이 한순간 한순간이 깨어 있는 영원한 삶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삶이라 할지라도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몫을 부질없이 낭비하고 말 것이다.
- 24 -
미국의 사상가 랄프 트라인은 이렇게 읊고 있다.
그대 진정으로 원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을 잡아라
무엇을 하든 무엇을 꿈꾸든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하라 (1991)
■ 덜 쓰고 덜 버리기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선다.”라는 옛말이 있다. 요즘 쓰레기 종량제를 지켜보면서 이 말이 문득 떠올랐다. 사람이 만들어 낸 쓰레기 때문에 사람 자신이 치여 죽을 판이니 어떻게 하겠는가.
해답은 쓰레기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인간은 생태계적인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들 인간의 행위가 곧 우리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 행위는 결과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이런 현상이 인과 법칙이요. 우주의 조화다.
언젠가 광릉 수목원에 갔더니 우리가 함부로 버리는 쓰레기의 썩는 기간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었다. 양철 깡통이 다 삭아 없어지려면 1백 년이 걸리고, 알루미늄 캔은 5백 년, 플라스틱과 유리는 영구적이고, 비닐은 반영구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허옇게 굴러다니는 스티로폼은 1천년 이상 걸린다는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이 땅이 누구의 땅인가?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그 이전부터 조상대대로 물려 내려온 땅이다. 또한 우리 후손들이 오래오래 대를 이어 살아가야 할 삶의 터전이다. 그런데 이 땅이 우리 시대에 와서 말할 수 없이 더럽혀지고 허물아지고 있다는 것은 현재의 우리들 삶 자체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과소비와 포식이 인간을 병들게 한다. 오늘날 우리들은 인간이 아니라 흔히 ‘소비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영혼을 지닌 인간이 한낱 물건의 소비자로 전락한 것이다. 소비자란 인간을 얼마나 모독한 말인가. 사람이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존재에 불과하다니 그러면서도 소비자가 어떻게 왕일
- 25 -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먼저 자신부터 억제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처지와 분수도 모르고 소유욕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 욕망의 좁은 공간에 갇혀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소비자가 되지 않으려면 우선 그럴듯한 광고에 속지 말아야 한다. 광고는 단순히 상품의 선전이 아니라 우리들의 옥구를 충동질 한다.
소유물은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는 이상으로 우리들 자신을 소유해 버린다. 그러니 필요에 따라 살아야지 욕망에 따라 살지는 말아야 한다. 욕망과 필요의 차이를 분멸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있지 않다. 없어도 좋을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만큼 홀가분해져 있느냐에 따라 행복의 문이 열린다. 우리가 보다 인간다운 삶을 이루려면 될 수 있는 한 생활용품을 적게 사용하면서 간소하게 살아야 한다. 덜 쓰고 덜 버리는 이 길 밖에 다른 길은 없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선다. (1995)
2020. 2, 1.
* 다음에 2부가 이어집니다.
- 26 -
tmtm스로 행복하라(2)
■ 법정 지음
◉ 제 3장 책
■ 새벽에 내리는 비
새벽에 비 내리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머리맡에 소곤소곤 다가서는 저 부드러운 발자국 소리, 개울물 소리에 실려 조용히 내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살아 있는 우주의 맥박을 느낄 수 있다.
새벽에 내리는 빗소리에서 나는 우주의 호흡이 내 자신의 숨결과 서로 이어지고 있음을 감지한다.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자연의 소리는, 늘 들어도 시끄럽거나 무료하지 않고 우리 마음을 그윽하게 한다.
사람이 흙을 일구며 농사를 짓고 살던 시절에는 이와 같은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 질서 안에서 넘치지 않고 순박하게 살 수 있었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작은 것에도 고마워했다. 남이 가진 것을 시샘하거나 넘보지도 않았다. 자기 분수에 자족하면서 논밭을 가꾸듯 자신의 삶을 묵묵히 가꾸어 나갔다.
그러나 물질과 경제를 ‘사람’보다도 중요시하고 우선시 하는 요즘 세상에서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까지도 대부분 예전 같은 감성과 덕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농사도 이제는 기업으로 여겨 먼저 수지타산을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논밭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성한 생명의 터전으로 여기기보다는 생산과 효용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은 흙에서 멀어질수록 병원과 가까워진다.
우리의 삶은 ‘업(業)의 놀음’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상황을 별업(別業)이라 하고 사회적인 상황을 공업(共業)이라고 한다.
우리 둘레가 온통 부정부패와 검은 돈의 거래로 들끓고 있는 요즘의 현실을 지켜보면서, 우리 시대가 저지른 업을 놀음을 실감하게 된다. 탐욕이 생
- 1 -
사윤회의 근본이라는 말도 있지만, 모두 분수 밖의 욕심 때문에 나라꼴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 거룩한 가난
새삼스러운 생각이지만 불을 맨 먼저 찾아낸 사람이 누구인지 그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수인씨(燧人氏 중국 고대 전설에 나오는 삼황의 하나)가 됐건 프로메테우스가 됐건, 불을 발견한 것은 오늘의 인류 사회를 낳게 한 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얼어붙은 겨울에 만약 불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나무를 먹고 온기를 발산하는 난롯가에 앉아 장작 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얼어붙은 개울에서 도끼로 얼음장을 깨고, 물을 길어와 난로 위에 올려놓는다. 솔바람 소리를 내면서 차관에서는 이윽고 물이 끓는다. 어느 세상에서 꽃이 피어나는 소리인가.
바람을 마시고 사는 처마 끝의 풍경이 자기도 집 안으로 좀 들어갈 수 없느냐고 이따금 오들오들 떨면서 땡그랑 거린다. 업이 달라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처지가 안타깝다. 하지만 땡그랑 거리는 그 소리가 오두막의 주인에게는 적잖은 위로와 파적(破寂 적막을 깨트림)이 된다. 바람이 없는 집 안에서는 풍경은 한 시도 살아 있을 수가 없다.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Em고 자듯이 수행자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물고기의 형상을 만들어 처마 끝에 매달아 놓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혹은 바다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건져내듯이, 고통의 바다에서 괴로워하는 중생들을 법의 그물로 구제하라는 뜻에서라고도 한다.
바람이 없으면 그 존재 의미가 사라져 버리는 풍경, 바람을 맞으며 살아가는 풍경은 우리들에게 명상의 소재를 끊임없이 전해 주고 있다. 그러나 무딘 귀는 단지 땡그랑거리는 풍경 소리로밖에 들을 줄을 모른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수행자들에게는 그 어떤 종파를 가릴 것 없이 영원한 사표가 될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그의 ‘거룩한 가난’은 현대의 우리들에게 물질의 풍요 속에서 도리어 정신적인 궁핍과 자책을 느끼게 한다.
프란체스코 성인이 수도하고 임종한 곳 포르치온콜라의 성모 성당, 아주
- 2 -
비좁고 초라하기까지 한 이곳에서 성인과 그의 형제들이 거룩한 가난과 사랑의 싹을 틔워 그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청정한 수도의 모범을 이룬 것이다. 이곳은 작은 형제들의 고향이며 거울이다.
성인과 그 형제들이 살았던 3평정도 되는 조그만 방과 작은 창이 성인의 인품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성당 가까이에 ‘눈물의 방’과 지하에 ‘용서의 방’이 퍽 인상적이었다. 성인이 돌아가신 지 4년 만에 움브리아 언덕위에 큰 성당을 세워 그곳에 성인의 유해를 모셨다. 움브리아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아시시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중세와 현대가 알맞게 조화된 그런 도시다. 이 거리에서 프란체스코 성인이 형성되었는가 싶으니 한결 정답게 여겨졌다. 성인은 형제들의 집과 오두막이 참으로 수도자의 신분에 잘 어울리게 보다 작고 보다 검소하면 할수록 만족하게 여겼고, 그런 집에 머물기를 좋아 했었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그는 유언에다가 가난과 겸손을 보다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형제들의 모든 집과 오두막은 반드시 흙과 나무로만 지어야 한다는 내용을 넣도록 고집했다.
절과 교회와 성당을 그저 크고 화려하게만 세우려고 하는 오늘의 우리들은 허세를 거두고 이런 가르침 앞에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반성이 결여된 종교는 온전한 종교일 수 없다.
프란체스코 성인은 형제들이 수도원을 그들의 소유로 삼지 말고, 항상 그 속에서 순례자나 나그네처럼 살기를 원했었다.
‘거룩한 가난’이 진실한 수행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 수행자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내 자신이 몹시 부끄럽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서책을 통해서나마 프란체스코 성인을 만나 그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며 공감할 수 있는 인연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기 쉬운데 사랑은 감화를 시킨다. 지식은 행동을 동반할 때에만 가치가 있다. 덕행의 실천보다 더 좋은 설교가 어디 있겠는가. 성인의 거룩한 가난이 오늘의 수행자들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1994)
■ 소리 없는 소리
- 3 -
누가 찾아오지만 않으면 하루 종일 가야 나는 말할 일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새삼스럽게 외롭다거나 적적함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넉넉하고 천연스러울 뿐이다.
홀로 있으면 비로소 내 귀가 열리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듣는다. 새소리를 듣고 바람소리를 듣고 토끼나 노루가 푸석거리면서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꽃 피는 소리를, 시드는 소리를, 지는 소리를, 그리고 때로는 세월이 고개를 넘으면서 한숨 쉬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므로 듣는다는 것은 곧 내 내면의 뜰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 말대꾸를 하고 난 후면 허전하기 이를 데 없다. 목젖까지 찰랑찰랑 고였던 맑은 말들이 어디론지 새어버린 것 같다. 지난여름에도 아랫절에 내려가 수련을 하는 학생들한테 서너 시간 지껄이고 났더니 올라오는 길에는 몹시 허전해서 후회한 적이 있다. 소리 내어 말하기보다는 듣는 일이 얼마나 현명한 태도인가를 거듭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폐허가 되어버린 원형 극장으로 고아 소녀인 모모를 찾아간다. 그들은 모든 것을 그 어린 소녀에게 털어 놓는다. 소녀는 다만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들어줄 뿐인데, 방황하는 사람들은 정착을, 나약한 사람들은 용기를, 불행한 사람과 억눌린 사람들은 신념과 기쁨을 느끼게 된다.
오늘 우리들은 되는 소리든 안 되는 소리든 쏟아버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남의 말에 차분히 귀 기울이려고는 하지 않는다.
말은, 진실한 말은 내면의 바다에서 자란다.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하고 남의 말만 열심히 흉내 내는 오늘의 우리는 무엇인가.
시간의 주재자 호라 박사가 모모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시간은 참된 소유자를 떠나면 죽은 시간이 되고 말아.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그래서 이것이 참으로 자신의 시간일 때만 그 시간은 생명을 갖게 되는 거란다.”
열린 귀는 들으리라.
한 때 무성하던 것이 져버린 이 가을의 텅 빈 들녘에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수리 없는 소리를, 자기 시간의 꽃들을. (1977)
- 4 -
■ 영혼의 모음 -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어린왕자!
지금 밖에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창호에 번지는 오후의 햇살이 지극히 선하다. 이런 시각에 나는 티 없이 맑은 네 목소리를 듣는다. 구슬같은 눈매를 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해 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그 눈매를 그린다. 그리고 이런 메아리가 들려온다.
“나하고 친하자,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어린왕자!
이제 너는 내게서 무연한 남이 아니다. 한 지붕 아래 사는 낯익은 식구다. 지금까지 너를 스무 번도 더 읽은 나는 이제 새삼스레 글자를 읽을 필요가 없어졌다. 책장을 훌훌 넘기기만 해도 네 세계를 넘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행간에 씌어진 사연까지도, 여백에 스며 있는 목소리까지도 죄다 읽고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몇 해 전, 그러니까 1965년 5월, 너와 마주친 것은 하나의 해후였다. 너를 통해서 비로소 인간관계의 바탕을 인식할 수 있었고, 세계와 나의 촌수를 헤아리게 되었다.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사물이 보이게 되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너를 통해서 내 자신과 마주친 것이다.
어린 왕자!
너의 아저씨(생텍쥐페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더라.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동무 이야기를 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그분들은 ‘그 동무의 목소리가 어떠냐? 무슨 장난을 제일 좋아하느냐? 나비 같은 걸 채집하느냐?’
이렇게 묻는 일은 절대로 없다. ‘나이가 몇이냐.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느냐? 그 애 아버지가 얼마나 버느냐?’이것이 그분들의 묻는 말이다. 그제야 그 동무를 아는 줄로 생각한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틀에는 제라늄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아름다운 벽돌집을 보았다.’라고 말하면 그분들은 이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 내질 못한다. ‘몇 억 원짜리 집을 보았어.’라고 해야 한다. 그러면 ‘거 참 굉장하구나!’하고 감탄한다.
 
- 5 -
가시적인 숫자 놀음으로 해서 비가시적인 인간의 영역이 날로 위축되고 메말라 가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버섯’이라고 했었지?
“……그는 꽃향기를 맡아 본 일도 없고 별을 바라본 일도 없고, 누구를 사랑해 본 일도 없다. 더하기밖에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 그러면서도 온종일, 나는 착한 사람이다. 나는 착한 사람이다 하고 뇌고만 있어. 그리고 이것 때문에 잔뜩 교만을 부리고 있어. 그렇지만 그건 사람이 아니야, 버섯이야!”
그래, 네가 여우한테서 얻어들은 비밀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아,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길들인다는 뜻을 알아차린 어린왕자 너는 네가 그 장미꽃을 위해 보낸 시간 때문에 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임을 알고 이렇게 말한다.
“……내 장미꽃 하나만으로 수천수만의 장미꽃을 당하고도 남아. 그건 내가 물을 준 꽃이니까. 내가 고깔을 씌워 주고 병풍으로 바람을 막아준 꽃이니까. 내가 벌레를 잡아 준 것이 그 장미꽃이었으니까. 그리고 원망하는 소리나 자랑하는 말이나 혹은 점잖게 있는 것까지라도 다 들어준 것이 그 꽃이었으니까. 그건 내 장미꽃이니까”
그러면서 자기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영원히 자기가 책임을 지게 되는 거라고 했다.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서 책임이 있어!”
■ 파블로 카살스
지난 한 해 동안 읽은 몇 권의 책 중에서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생생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첼리스트 카살스, 나의 기쁨과 슬픔>이다. 앨버트 E 칸이 카살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를 그 나름의 생동감이 넘치는 문장으로 엮어 놓은 카살스의 초상이다.
카살스는 단순히 첼로 연주가만은 아니다. 작곡과 지휘도 함께 했지만, 93년 긴 생애를 통해 파시즘에 핍박받는 동족들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세계 평화를 추구한 위대한 인류의 양심이었다.
“지난번 생일로 나는 93세가 되었다. 물론 젊은 나이는 아니다. 그러나
- 6 -
나이는 상대적인 문제다. 일을 계속하면서 주위 세계의 아름다움에 빠져 든다면, 사람들은 나이라는 것이 반드시 늙어가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사물에 대해서 전보다 더욱 강렬하게 느끼며 마에게 있어서 인생은 점점 매혹적이 되고 있다.”
그 책은 이런 말로 시작되고 있다.
해가 바뀌면 우리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이 육신의 나이를 하나씩 더 보태게 된다. 어린이나 젊은이는 나이가 하나씩 들어가는 것이고 한창때를 지난 사람들에게는 한 해씩 빠져 나가는 일이 된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자연현상이다. 빠져 나가는 세월을 아쉬워하고 허무하게 생각할 게 아니라 주어진 삶을 순간순간 어떻게 쓰고 있느냐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은퇴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죽기 시작한다는 것을 뜻한다. 일을 하며 싫증을 내지 않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가치 있는 것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고 일하는 것은 늙음을 밀어내는 가장 좋은 처방이다. 나는 날마다 거듭 태어나며 날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93세의 노인이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이 책은 <런던 선데이 타임스> 의 보도를 인용해 코카서스 지방에 있는 독특한 오케스트라를 소개하고 있다. 그, 악단의 단원들은 모두가 백 살이 넘은 나이라고 했다. 단원은 30명가량으로 규칙적인 연습을 하고 매번 정기 연주회를 갖는다. 그런데 그들의 직업은 대부분 농부로서 아직도 들녘에 나가 계속 농사일을 하고 있다. 그 악단의 최연장자인 아슈탄 슐라르바는 담배 재배자이고, 때로는 말을 길들이는 조련사이기도 하다. 그들은 모두 당당한 체구를 지녔으며 활력이 넘쳐 보였다고 했다.
백 살도 넘는 농부들의 연주라 세련미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 대신 대지에서 익힌 강인한 생명력이 묻어 있을 것이다. 이런 연주야말로 삶을 위한 예술이고, 삶과 음악이 한 가락에 엉겨 있을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점령하의 한 시골에서 그는 어려운 날들을 보낸다.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독일 국민을 위해 연주해 달라고 나치 당국으로부터 수차 종용을 받았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한다.
88세 되던 1962년 초, 그가 전쟁 중에 작곡한 오라토리오 <베들레헴의 구
- 7 -
유>와 함께 개인적인 평화의 십자군으로 나서려는 결의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먼저 한 인간입니다. 예술가는 그다음입니다. 인간으로서 나의 첫 번째 의무는 나와 같은 인간들의 안녕과 평화입니다. 음악은 언어와 정치와 국방을 초월하므로 나는 하느님이 내게 주신 이 방법으로 내 의무를 수행하고자 합니다. 세계 평화에 내가 기여하는 바는 미약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성스럽게 생각하는 이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습니다.
예술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임을 밝히고, 인간적인 의무를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이 메시지는, 같은 시대인인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어떤 일터에서 어떤 일을 하며 살건 간에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토록 고귀한 인간적인 의무에 힘을 기울인다면, 이 세상은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카살스가 백악관에서 연주한 녹음으로 <새들의 노래>를 몇 차례 들었다. 1961년 11월 13일 밤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연주다. 이 <새들의 노래>는 그의 고향 카탈루냐의 민요라고 한다. 이 곡은 스페인 망명자들의 노래이며, 카살스가 그의 동포를 위한 자유를 염원하는 심경을 가장 잘 표현한 음악이라고 한다. 아름답고 잔잔한, 조금은 슬프게 들리는 소품이다.(1987)
■ 태풍 속에서
해마다 한두 차례씩 겪는 일이지만, 며칠 전 태풍 ‘베라’가 지나갈 때에도 비슷한 생각을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농경지나 가옥의 침수와 매몰이며 막대한 재산 피해를 가져오는 그런 태풍이, 우리들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
산에 살면서 번번이 겪은 내 경험에 따르면, 큰 비바람이 휘몰아치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미리 보이는 조짐이 있다. 이번에도 태풍이 오기 2,3일 전에, 하늘이 마치 비로 쓸어 놓은 것 같은 그런 구름이 연하게 깔렸고, 개미떼들의 큰 이동이 있었다. 그리고 태풍이 있는 날 아침 정랑(변소)에 가니 전에 없이 박쥐가 낮게 매달려 있었다. 이렇게 되면 기상대의 예보를 들을 것도 없이 태풍이 온다.
- 8 -
그날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께까지 거센 비바람이 이 산을 휩쓸었다. 용마루의 기왓장이 떨어져 내리고, 뜰에 무성하던 파초가 갈기갈기 찢기고 꺾이었다. 여기서 우지끈 저기서 우지끈 나뭇가지가 갈기갈기 찢기고 꺾이었다. 여기서 우지끈 저기서 우지끈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뿌리째 뽑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뜰 앞에 서 잇는 장명등(長明燈) 꼭지가 어느 새 떨어져 나가고, 나무 벼늘에 끈으로 매어 덮어 둔 비닐 우장이 펄럭이다가 뒤꼍 나뭇가지에 걸려 요란한 소리를 냈다.
떨어진 나뭇잎에 수채가 막혀 물이 넘치는 걸 보고 뛰어 나갔다가 우산도 날려버리고 흠뻑 젖은 체 들어왔다.
이런 때는 생각을 크게 돌이켜야 한다. 내가 화를 내면 내 자신이 안팎으로 피해를 입게 된다. 시작이 있는 것은 그 끝이 있게 마련, 태풍도 불만큼 불다가 잦아질 때가 있으리라.
그렇다 이런 날이야말로 순수한 ‘내 날’이 될 수 있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순수한 내가 존재할 수 있다. 불쑥 불쑥 찾아드는 불청객들도 이런 날은 어쩔 수 없으리라. 젖은 겉옷을 벗어 버리고 속옷 바람으로 홀가분하게 있자.
태풍 그것은 인간들이 저지른 오만을 인간 자체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기 때문에, 자연은 숨겨둔 위력을 발휘하여 인간들에게 자신의 분수와 한계를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미쳤다. 자연을 형편없이 허물고 짓밟고 더럽힌 인간들을 깨우쳐 주기 위해 그처럼 거센 비바람을 풀어 씻어내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 두 자루 촛불 아래서
며칠 전부터 연일 눈이 내린다. 장마철에 날마다 비가 내리듯 그렇게 눈이 내린다. 한밤중 천지는 숨을 죽인 듯 고요한데 창밖에서는 사분사분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따금 앞산에서 우지직 나무 꺾이는 소리가 잠시 메아리를 이룬다. 소복소복 내려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생나무 가지가 찢겨 나가는 것이다.
한겨울 깊은 산중에서는 행동반경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 9 -
먼저 마루방에 있는 난로에 불을 지핀다. 전날 해 질 녘에 불쏘시게와 장작을 미리 들이고 물통에 가득가득 물도 길어다 놓아야 한다. 난롯불이 활활 타올라 집안이 더워지면 이때부터 내 하루 일과는 시작된다.
예불하고 좌선한다. 날이 새면 털모자와 목도리, 장갑, 눈에 신는 장화를 신고 생활공간에 필요한 최소한의 길을 가래로 친다. 먼저 개울가에 이르는 길을 치고 밤새 얼어붙은 얼음장을 깬다.
시냇물 소리가 다시 살아난다. 다음은 정랑(뒷간)으로 가는 길을 치고 디딤돌이 얼어붙지 않도록 싸리비로 쓸어낸다. 사람은 먹는 것만큼 또한 내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집 뒤에 있는 나뭇간으로 가는 통로를 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뒤꼍에 있는 헌식대(큰 바위 아래 있는 반석)로 가는 길을 낸다. 산중에 사는 짐승들에게 빵부스러기와 콩을 주는 곳이다. 눈 위에 난 발자국으로 보아 토끼와 노루가 다녀가는 것 같다.물을 먹으러 개울가에 온 노루와 마주칠 때 우리는 서로 놀란다.
한겨울 내 오두막에서는 낮 동안은 주로 난로가 있는 마루방에서 지내게 된다.
이 난롯가에서 읽은 몇 권의 책 중에서 헬렌 니어링이 쓴 <아름다운 사람,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감명 깊게 읽었다. 헬렌은 스콧 니어링을 만나 55년의 세월을 함께 지내면서 덜 갖고도 더 많이 존재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그들 두 사람 다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그 자취는 남아 있는 우리에게 빛을 전하고 있다.
흙을 가까이 하면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살아간 그들이 장수와 건강의 비결로서 약과 의사와 병원을 멀리 하라고 한 말에는 큰 의미가 담겨 있다. 약에는 부작용이 따르고, 의사 자신도 병자일 수 있다. 그리고 병원이 병을 낫게도 하지만 없던 병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묘법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제시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 10 -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말라.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
집, 식사, 옷차림을 간소하게 하고 번잡스러움을 피하라.
날마다 자연과 만나고 발밑의 땅을 느껴라.
농장 일이나 산책, 힘든 일을 하면서 몸을 움직여라.
근심 걱정을 떨치고 그날그날을 살아라.
날마다 다른 사람과 무엇인가를 나누라. 혼자인 경우에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무엇인가 주고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를 도와라.
삶과 세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라. 할 수 있는 한 생활에서 유머를 찾으라.
모든 것 속에 들어 있는 하나의 생명을 관찰하라.
그리고 우주의 삼라만상에 애정을 가지라.
스콧은 70대에 노령이 아니었고, 80대는 노쇠하지 않았으며 90대는 망령이 들지 않았다. 이웃 사람들의 말차람 스콧 니어링이 백 년 동안 살아서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되었다. 그의 삶을 우리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자루 촛불 아래서 이 글을 마친다.
◉ 4장 나눔
- 나누는 일을 이다음으로 미루지 마라.
이다음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다.
■ 나누어 가질 때 인간이 된다.
이따금 고속도로에서 관광버스와 장의차가 앞서거니 뒤서거니ㅏ 달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생과 사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뻣뻣하게 굳어버린 주검으로 차에 실려 어디론지 묻히러 가고 있는 그도, 살았을 때는 관광버스를 타고 생의 기쁨을 노래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을 것이다. 그는 장의차와 관광버스가 휴게소에 함께 가지런히 쉬고 있을 때에도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의 일로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젠가 우리 모두가 반드시 맞이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남
- 11 -
의 일일 수 없다. 우리 내면에서도 생과 사가 그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순간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마르틴 부버는 그의 <인간의 길>에서 하느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했다.
“너는 네 세상이 어디에 있느냐? 너에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그래 너는 네 세상 어디 쯤에 와 있느냐?”
우리에게 죽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만약 죽음이 없다면 사람은 또 얼마나 오만하고 방자하고 무도(無道)할 것인가. 죽음이 없다면 생 또한 없을 것이다. 죽음이 우리들의 생명을 조명해 주기 때문에 보다 빛나고 값진 생을 가지려고 우리는 의지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이제는 고전적인 표현이 되어 버렸지만, 우리들은 서양의 물질 편중의 과학문명과 그 기반 위에 선 그릇된 자본주의, 그리고 서구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한 계급의식과 대립사상 등으로 인해 인간 존재가 말할 수 없이 위협을 받고 있다. 일찍이 동양에서는 서양에서와 같은 계급의식이나 대립 사상 등으로 인해 인간존재가 말할 수 없이 위협을 받고 있다. 일찍이 동양에서는 서양에서와 같은 계급의식이나 대립 항쟁의 양상은 별로 없었다. 관용과 화해로써 인간관계가 이루어졌다.
오늘 우리들은 새삼스럽게, 그렇다. 정말 새삼스럽게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원초적인 물음 앞에 마주서게 되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은 끊임없이 회복되어야 한다. 인간이 곧 우리문화의 본질이고, 인간만이 우리 공동체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흔히 베푼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말인 것 같다. 원천적으로 자기 것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이 우주의 선물을, 우리에게 잠시 맡겨진 그 선물을 함께 나누어 가지는 것이지, 결코 베푸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나올 때 무엇 하나 가지고 나온 사람 있던가? 또한 살만큼 살다가 인연이 다해 이 세상을 하직할 때, 자기 것이라고 해서 무엇 하나 가지고 가는 사람 보았는가?
나누어 가지는 것이 어찌 물건만이겠는가. 부드러운 말 한마디, 따뜻한 눈길, 함께 걱정하고 기뻐하는 것도 나누어 가짐이다. 그러니 많이 차지하고
- 12 -
있다고 해서 부자가 아니라. 많이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다.
사랑한다는 것은 곧 주는 일이요. 나누는 일이다. 주면 줄수록 나누면 나눌수록 넉넉하고 풍성해지는 마음이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깃든 가장 아름답고 어진 인간의 뜰을 가꾸는 일이 된다.
사람의 심성은 마치 샘물과 같아서 퍼낼수록 맑게 고인다. 퍼내지 않으면 흐리고 상한다. 많이 줄수록 많이 받는다. 주는 일 그 자체가 받는 일이므로,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주고 싶어 줄 뿐이다. 사람은 이와 같은 행위를 통해 우리들 안에 잠들어 있는 인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의 정신적인 자서전인 <희랍인에게 이 말을>에서 나누어 가지는 의미를 자신의 기도문으로써 이렇게 말한다.
“주여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 어찌 천국의 기쁨을 즐기겠습니까. 저주받은 자들을 불쌍히 여겨 천국으로 들여보내든가. 아니면 저를 지옥으로 보내어 고통받는 그들을 위로하게 하소서. 저는 지옥으로 내려가 저주받은 그들을 위로할 질서를 세우겠나이다. 그리고 만일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다면 저는 지옥에 남아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겠나이다.”
옛날 어떤 선사는 항상 ‘나무지옥대보살’을 불렀다고 한다. 몸소 지옥으로 들어가겠다는 발원이다. 이웃이 겪는 고통을 함께 나누어 가지면서 그들을 건저 내겠다는 비원(悲願)에서였으리라.
 
언제 어디서나 우리들의 본질인 그 인간을 찾아내고 드러내야 한다. 진정한 인간의 집합만이 이 지구상에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 무소유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 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 13 -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그렇다.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다. 살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은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 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 두 분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3년 전 거처를 지금의 다래헌(茶來軒)으로 옮겨왔을 때 어떤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 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 애들뿐이었다. 그 애들의 건강을 위해 비료를 구해오기도 하고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 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필요 이상으로 실내 온도를 높이곤 했다.
애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 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둣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정 했었다. 우리 다래헌을 찾아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을 보고 한결같이 좋아라 했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개인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노사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에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렸다.
아차! 이때에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 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 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나는 이미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執着)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착해버린 것이다.
- 14 -
며칠 후, 난초처럼 말 없는 친구가 놀러 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 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 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無所有)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것 같다. 소유욕에는 한정이 없고 휴일도 없다.
소유욕은 이해(利害)와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 어제의 맹방들이 오늘에는 맞서게 되는가 하면, 서로 으르렁대던 나라끼리 친선 사절을 교환하는 사례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관계 때문인 것이다.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이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란 번 쯤 생각해 볼 말씀이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1971)
■ 여기 바로 이 자리
우리가 믿는 종교나 신앙이 절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당이나 교회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이나 하느님이 법당이나 교회에 있나요? 법당이나 교회에 있는 것은 불상이건 십자가이건 그것은 한낱 형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법당이 절에만 있나요? 부처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법당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절이나 교회를 찾아가는 것은 그런 곳에서 그 길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참이고 거짓인지를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교회와 절은 다분히 상업주의에 오염되어 본래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부처님? 신? 하느님? 이것은 또 얼마나 관념적이고 개념화 된 이름입니까? 이런 메마른 관념과 개념에 얽매여, 살아 있는 참 부처님과 신을 보지 못하
- 15 -
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관념화되고 개념화 된 ‘미래의 종교’는 공허한 이론에 지나지 않습니다. 삶이 약동하는 ‘가슴의 종교’만이 우리들의 영혼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그럼 부처님과 신은 어디에 존재하나요? 마음 밖에서 찾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마음 밖에 있는 것은 모두가 허상입니다.
분명히 새겨 두십시오.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인과관계를 비롯한 우주 질서와 존재의 실상을 철저히 인식하고 본래의 자아에 눈떠 온전한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종교는 그럴듯한 말이나 이론에 있지 않습니다. 순간순간 마음 쓰는 일과 일상적인 행동 안에 있습니다. 만나는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여는 일이 곧 자비입니다. 이와 같은 자비의 실현을 통해 지혜도 자라나는 것이지, 무엇인가를 깨닫는 그것만으로 지혜가 갑자기 완성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완성’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영원한 이상이지 현실은 아닙니다. 중생계가 남아 있는 한 완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한국 불교의 폐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깨달음에 얽매여 깨달음의 행을 잃고 하루하루 세월만 헛되이 보내고 있습니다. 깨닫지 않고는 자비를 실현할 수 없다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런 말에 제 정신 지닌 사람은 속지 마십시오.
본래의 깨달음은 어디에 두고 새삼스럽게 깨닫겠다는 것입니까. 우리가 수도하고 정진하는 것은 새삼스럽게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래의 깨달음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닦지 않으면 오염되는 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본래의 진실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제일가는 정진이라고 옛 사람들도 말 한 것입니다.
15세기 인도의 영적인 시인 카비르의 시를 소개 합니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목말라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웃는다
진리는 그대 집 안에 있다.
- 16 -
그러나 그대 자신은 이것을 알지 못한 채
이 숲으로 저 골짝으로 쉴 새 없이 헤매고 있다
여기,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진리를 보라
그대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 보라
이 도시 저 산속으로
그러나 그대 자신의 영혼을 찾지 못한다면
세상은 여전히 환상에 지나지 않으리
(1992)
■ 누가 복을 주고 벌을 주는가
계절이 바뀔 때 살아 있는 것들마다 옷을 갈아 입는 것은 삶의 지혜다. 지나온 삶의 자취를 돌아보는 것도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지 스스로의 물음이다. 이 또한 삶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어느 불교 신자의 이야기다. 시댁이 거의 기독교를 믿는 집안인데, 요즘에 와서 남편이 하는 사업이 잘 안 되는 것은 아내인 자신이 불교를 믿기 때문이라고 시누이들이 자꾸 압력을 가해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마음에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런 기회에 어떤 것이 진짜 종교이고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내 나름대로 밝혀보고 싶다.
어떤 것인 신이고 진리인지, 누구에게 물어 볼 것도 없이 맑은 제정신으로 스스로 물어보라. 분노하고 질투하고 또 벌 주는 것이 신인가? 오로지 자기만을 섬기고 남을 섬기지 말라고 하는 것이 신이요 창조주인가?
단 하나의 신만 있어야 하고, 단 한 권의 성서와 한 명의 구세주만 있으란 법이 이 세상에 어디에 있는가. 이것은 얼마나 옹졸하고 독선적이고 추하고 비인간적인 생각인가.
수많은 신이 있다고 해서 문제될 게 무엇인가. 많은 신이 존재할 때 세상은 보다 풍요로워질 것이다. 무엇 때문에 단 하나의 신한테만 매달려야 한단 말인가. 종교와 신앙을 남녀 간의 사랑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종교의 이름 아래 무고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잔인한 행위가 저질러졌는지 한번 되돌아볼 일이다. 수천만의 선량한 사람들이 학살당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산 채로 불 태워졌다.
- 17 -
그럼 어떤 것이 진짜 신이고 진리이며, 종교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모든 종교는 하나같이 사랑과 자비를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사랑이 곧 신이고 진리이며, 자비의 실현이 종교의 본질 아니겠는가. 사랑이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이웃으로 향한 부드러운 눈길이요 따뜻한 손길이며, 이해와 보살핌이며, 염려다. 사랑이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싹트는 순간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 이것이 우리들의 진정한 탄생이고 생명의 꽃핌이다.
설사 어리석고 옹졸한 음식점 주인일지라도 한 가지 메뉴만 가지고 영업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입맛대로 골라서 먹으라고 그 메뉴가 다양하다. 하물며 사랑과 자비를 내세우고 영혼을 구제한다는 종교 집단에서 사랑과 자비를 등지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짓을 하고 있다면 그 종교 집단은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린 빈껍데기다.
부처님이 벌을 주고 복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혹시 불교 신자 중에 있다면 그는 불교를 크게 잘못 알고 있다. 무엇이 부처님인가를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부처는 분노하고 질투하며 복을 주었다 거두었다 하는 그런 신이 아니다. 부처란 눈 뜬 사람이다. 지혜와 자비를 몸소 실현하면서 이웃에게 그늘을 드리우는 너그러움이다.
신앙이나 지혜는 누구에게나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겪어서 체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과 진리는 항상 개인적인 영역이다. 진리는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 아무도 넘어다 볼 수 없는 곳에서 은밀히 체험된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끝없이 움직이고 흐른다. 그 움직임과 흐름이 멎을 때 거기 서리가 내리고 죽음이 찾아온다. 이런 살아있는 생명체에 누가 복을 주고 누가 벌을 주는지 스스로 물어보라. 그 물음 속에 답이 들어 있다. (1992)
■ 물이 흐르고 꽃이 피더라
선승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것은 인공적인 건축물 안에서는 인간의 사유가 공허하거나 관념적이 되기 쉬운 반면, 나무나 바위 또는 물가와
- 18 -
같은 자연 속에서는 사유의 길도 훤칠히 트여 우주의 실상 앞에 마주 서게 되기 때문이다. 인류 사상 위대한 종교의 탄생이 벽돌과 시멘트와 유리로 둘러싸인 교실안에서가 아니라 만물이 공존하고 있는 숲속에서 그 움이 트였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인간의 생활이 갈수록 도시화되고 산업화되어 감에 따라 종교의 기능도 새롭게 요구되고 있는 오늘, 그러나 거기 아랑곳없이 걸망 하나만을 메고 철따라 이 산중 저 산중으로 마치철새들처럼 떠돌아다니며 정진하는 선승들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이런 처지에서 보면 선불교는 다분히 구도의 종교이지 포교의 종교는 아니다.
까치와 함께 소나무 위에서 살아가던 스님 앞에 어느 날 그 고을을 다스리던 지방 장관이 찾아온다. 문헌에는 그 이름을 백거이(白居易)로 기록하고 있다. 당대의 대표적인 시인이기도 한 백낙천, 나무 위에서 내려온 선사를 보고 그가 묻는다.
“불교의 근본 뜻은 무엇인가요?”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한 일을 행하시오.”
고승이라는 소문을 듣고 일부러 멀리서 찾아와 묻는 그에게 이 대답은 너무도 뜻밖이었다. 기대에 어긋났다. 이런 대답이라면 선사의 입을 벌릴 것도 없이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상식에 속한다. 그가 기대했던 것은 보다 심오한 불교의 근본정신이었던 것이다.
그는 내뱉듯이 말한다.
“그런 건 세 살 난 어린애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때 선사가 엄숙히 대답한다.
“그렇소. 세 살 먹은 어린애도 다 알고 있지만, 팔십 노인일지라도 행하기는 어렵지요.”
이 말에 그는 크게 회심하고 정중히 절을 하고 물러갔다고 한다. 알고 있다는 것과 행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머리로는 알았을지라도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공허한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사물의 이치는 일시에 이해할 수 있지만 행동은 반복된 훈련을 통해서만 몸에 밸 수 있다.
- 19 -
종교의 본질만이 아니라 온갖 사회 현상의 핵심은 말보다도 살아 있는 행동에 있다. 지혜와 사랑과 덕의 실천행, 특히 선불교의 경우 절대적인 진리를 체험했다면 보편적인 현실 세계에까지 그 진리가 확산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게 살아 있는 법이요 진리이지, 일상에 구현되지 않고 혀끝에서 맴돌고 있다면 그것은 선도 종교도 아니다.
출가나 재가 신자를 가릴 것 없이 한국 불교계 여기저기에 자칭 견성했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영향이 산문(山門) 안에나 자기 집 담장 안에서만 통용되고 있다면 그건 대개가 사이비다. 승속을 막론하고 뭘 알았다고 소리치는 사람치고 온전한 사람은 없다.
나쁜 짓 하지 않고 착한 일 행하기가 말은 쉬워도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고마운 다리도 놓여 있지만 또한 어두운 함정도 파여 있다. 제정신 바짝 차리지 않고는, 즉 내 마음을 몸소 다스리지 않고는 어떤 함정에 빠질는지 알 수 없다. 저마다 서 있는 자리를 똑똑히 살펴볼 일이다. 사람이 없는 텅 빈 산에 물이 흐르고 꽃이 피더라.(空山無人 水流花開) (1982)
 
■ 부자보다 잘 사는 사람이 되라
세월은 오는 것이 아니라 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끔씩은 그 말이 실감 납니다. 하지만 그런데 속지 마십시오. 세월은 가지도 오지도 않습니다. 시간 속에 있는 사람들이, 사물과 현상이 오고 가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간 자체는 항상 존재합니다.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을 뿐입니다.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오고 가고 변해 가는 것입니다. 무상하다는 것은 시간 자체나 세월이 덧없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 속에 사는 우리들이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고 늘 한결같지 않고 변하기 때문에 덧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생애 중에서 한 해가 이와 같이 신속하게 빠져 나가고 있습니다. 해가 바뀌면 어린 사람들은 한 살이 보태집니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들은 한 살이 줄어듭니다. 그렇게 때문에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시시한 일에 시
- 20 -
간을 낭비하면 우리 생이 무척 아깝습니다. 세월은 흘러가는 물과 같아서 한 번 지나가면 되찾을 수 없습니다. 매 순간 후회 없이 잘 살아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얼마 전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는 분이 택시를 타고 길상사로 가자고 하니까 택시 기사가 “아, 그 부자 절 말이죠?” 하더랍니다. ‘부자 절’이라는 그 말이 제게는 한동안 화두가 되었습니다. 8년 전 이 절을 처음 만들 당시, 교회나 절 어디 할 것 없이 물질이 넘쳐나고 과소비가 지나치기 때문에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피력했습니다. 그런대 물론 일부에서겠지만 길상사를 부자 절이라고 일컫는 것을 보고 매우 착잡했습니다. 요정이던 대원각을 절로 만들 때 신문 방송에서 얼마나 시끄럽게 떠들었습니까? 땅이 수천 평이고 땅 갑이 수백억 이라는 보도가 나와서 부자 절이라는 인상이 심어진 것 같습니다.
한 동안 여러 곳에서 저한테 편지가 많이 왔습니다. 주로 물질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절을 저의 개인 소유로 잘못 알고 도와달라는 편지들이 와서 곤혹스러웠습니다.
우리는 가진 것만큼 행복한가? 물론 어느 정도 관계는 있겠지만 행복은 가진 것에 의해서 추구되지 않습니다. 행복은 결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서 찾아지는 것입니다. 똑같은 조건에 있으면서도 누군가는 행복을 느끼며 살고 누군가는 불만 속에서 평생을 살아갑니다.
세상에 공것은 없습니다. 횡재를 만나면 반드시 횡액을 당합니다. 그것이 인과 관계입니다. 물질이란 그런 것입니다. 부는 홀로 오는 법이 없습니다. 어두운 그림자를 동반합니다.
20여 년 전 어느 절에서의 일입니다. 한 스님이 복권에 당첨되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난데없는 행운에 착실하게 기도를 하던 스님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우선 은사 스님한테 자동차를 한 대 사 드렸다고 합니다. 얼마 안 있어 자기도 차를 사고, 그때부터 생각이 달라지더니 결국 동네 처녀와 눈이 맞아 결혼까지 했습니다. 그 후 들리는 이야기로 그는 택시 기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난이 미덕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가 맑은 가난을 이야기 하는 이
- 21 -
유는 탐욕을 버리고 분수를 지키자는 것입니다. 지나친 소비와 넘침에서 벗어나 맑고 조촐하게 가질 만큼 갖자는 것입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습니다. 부유하다고 해서 늘 부유하란 법 없고, 지금 가난하다고 해서 계속 가난하란 법 없습니다.무상하다는 것은 어떤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창조적인 노력으로 무엇인가를 축적할 수도 있고, 있던 것은 하루아침에 날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 만큼 살다가 세상과 작별하게 될 때 무엇이 남습니까? 홀로 있는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지고 가는가? 평소에 지은 업을 가지고 갑니다. 좋은 업이든 나쁜 업이든 평소에 지은 업만 그림자처럼 따라갑니다.
하루하루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말과 행위를 하는가가 곧 다음의 나를 형성합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매 순간 스스로가 다음 생의 자신을 만들고 있습니다.
길상사를 일부에서 부자 절이라고 한다는데, 왜 그렇게 불리는지 이곳에서 수행하는 스님들과 신도들 모두 반성해야 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어 가질 때, 청정한 수행과 올바른 가르침으로써 믿고 의지하는 도량이 될 때, 그때 비로소 아름답고 길상스러운 부자절이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들이 부자가 되기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잘 사십시오. 부자 부럽지 않게 잘 사십시오.
(이 글은 2005년 12월 11일 길상사 창건 8주년 기념 법문입니
 

'5.취미활동(挑戰) > ▶인문학공부(人文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말봉(金末奉) 소설가  (2) 2024.03.12
라이트 형제  (0) 2024.03.07
봄비  (0) 2024.03.05
운흥사의 닥돌소리  (0) 2024.02.29
왜란,호란,  (0) 2024.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