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3 토요일
봄은 왔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밤새도록 술상을 두드리던 나무젓가락처럼
청춘은 부러지고 이제 내 마음의 그림자도
너무 늙었다.
사람과 사람의 그림자 사이로 날아다니던
새들은 보이지 않고 고한역은 열차도 세우지
않는다.
밤새워 내 청바지를 벗기던 광원들은다 어디로
흘러가 새벽이 되었는지 버력더미에 이슬이
내리는 눈부신 폐광의 아침 진폐증에 걸린 똥개
한 마리가 기침을 하고 지나가는 단란주점 옆
피다 만 검은 민들레의 쓸쓸한 미소
위의 글은 정호승의 시 <검은 민들레> 전문이다.
세월 저편으로 밀려난 탄광촌을 모티브로 하는데 <검은 민들레> 만한 것도 없다.
나는 정호승 詩를 좋아한다.
그의 시는 난해하지 않으면서 진부하지 않다.
그럼에도 가볍지 않고 울림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선화에게>는 많이 기억한다.
그러나 그 외 작품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전문적인 글쟁이가 아니다.
그리고 난 많이 부족하고 띄어쓰기
맞춤법 등등 글 을 써 놓고 보면
오타 투성이지만 난 그래도 내 방식대로
고처가며 글을 쓴다.
그래도 내가 좋아 하는 글쓰기는 재미 있다.
특히 젊은 시절 연애편지는 더 재미 있다.
내 글을 전문시인도 아니다.
내 쪼 대로 쓰 나간다.
그냥 어줍잖게 흉내만 내는 정도다.
그럼에도 제 잘난 멋에 산다고 가끔씩 긁적이는 편이다.
반면 산을 좋아하여 젊은 시절, 틈이 나면 강원도 구석구석을 찾아 다니면서 우연히 도계에서 탄광을 구경했고, 이 후 운탄고도를 따라 새비재로 트레킹을 하면서 허물어진 폐광을 보았다.
희망은 사라졌고 탄광 입구에는 잡초만이 가득했다.
기실,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흘러간 시간은 모든 것을 과거화하면서 그 흔적을 남겨 놓았다.
사물에 묻혀있는 시간의 흔적이란 사물이 시간에 저항한 산물일 터이다.
*아래 글은 오래 전 시간에 풍화된 운탄고도 폐광 앞에 서성이다 돌아와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막장에 대한 예의/
꽃꺼끼재 운탄고도를
진폐증을 앓던 제무시가
그르렁대며 넘었다
고생대 칠흑의 어둠을
두더지처럼 먹고 산
막장의 선산부 김형
더는 물러설 벼랑도 없다고
선택한 지하 몇백 미터
저승에서 뼈 갈아
숨 가쁘게 벌어 온 돈으로
이승의 생을 꾸려가던
살가운 가족의 웃음소리마저 검은,
갱도나무 기둥에
화석으로 새겨 놓은
'오늘도 무사히' 라는 말
얼마나 절실했으면
퇴적층이 된 아버지의 하늘과
젖 물리지 못한 어머니의 땅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막장의 삶도 더운 피가 흘렀더니라
낙엽처럼 사윈 그해 가을
소금기 절은 갱도 벽에
긁어 파낸 뜨거운 글씨
오늘도 무사히!
안전모의 불빛에 맥없이 흐렸다
- 註 -
*꽃꺼끼재 :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과 정선 고한읍의 경계인 백운산 자락의 고개이다.
*운탄고도 : 영월과 정선, 태백을 잇는 탄광에서 채탄된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1000미터 높이의 임도 같은 산길이다.
*제무시 : 미국 GMC사에서 만든 트럭으로 벌목된 산판나무나 석탄을 실어 날랐던 60~70년대의 중요한 운송 수단이었다.
*버력더미 : 석탄과 광물을 캘 때 부산물로 나오는 값어치 없는 잡돌 혹은 흙더미이고, 공사 현장에서는 토목, 건축물 철거시 발생되는 콘크리트 덩어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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