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받는 날 1989.2.19
현불회(현대차 불자회) 문회부장으로소임을
할 무렴 나의 고향인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봉암사에 찾아가 막무가네 서암큰스님에게
원고 청탁을 하다가 호대게 혼난적이 있었다.
까딱 잘 못하다간 낭폐를 당 할 뻔한편지
글을 소개 해 봅니다.
두어 차례 편지를보내 부탁을 했는데 회답이
없어 직접 찾아가 글을 부탁했다. 그런데
스님방에 들어가 날 보고 청년이라 글짜를
한자로 써 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자신있게 생각 없이 淸年이라고썼는데
그러더니 혼통을 처던 옛 생각이 난다. 누가
이렇게 쓰냐고 하면서.... 스님 뭐 글자가 틀린
것이 없는데요. ㅎㅎ
그래서 서암스님이 다시 靑年이란글을 써시
면서 이렇게 일러 주신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니 얼마나죄송 했던지고개를제대로
들수가 없었다. 그 인연으로지금 양정동 문회회관
개관기념 대 법회때 서암 큰스님을모시고 대
법회를가진적이 있었다. 재미 있는교? ㅋㅋㅋ
얼마 있으면 명절인데 우예 잘 되어가는교?
편지글 같이 함께 회람 올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성불 하시길 ^^^^^^^
서암스님은…
서암 홍근(西庵 鴻根,1914~2003)스님은 1914년 경북 영주군
풍기읍에서 태어났다. 1932년 김용사에서 낙순화상을 계사로
사미계를 1935년 금오(金烏)스님을 계사로 보살계와 비구계를
받았다.
1938년 종비장학생으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1941년
귀국해 김용사 선원, 금강산 마하연과 신계사, 묘향산,
백두산 등 전국의 수많은 선원에서 수행열을 불태웠다.
1975년 조계종 제10대 총무원장을 맡아 어려운 종단사태를
수습하고 2개월 만에 사퇴했다. 1978년 이후에는 봉암사
조실로 1991년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1993년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됐지만 이듬해 종정직과 함께 봉암
사 조실까지 사임하고 거제도, 삼천포, 팔공산 등지를
거쳐 태백산 자락에 토굴을 지어 무위정사(無爲精舍)라
이름하고 자유인으로 자적했다.
2001년 봉암사 대중들의 간청에 의하여 8년 만에 봉암사
염화실로 돌아와 한거(閒居)하다 2003년 3월29일 오전7시30분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는 말을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