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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취미활동(挑戰)/▶인문학공부(人文學)

박상진 생가

by 사니조아~ 2023. 8. 26.

23.08.26
박상진 생가와 소몽 채기중 

울산시 북구 누가 장화를 주신다고 하여 보니 이번 벌초할때 신으려면
딱 맞을 것 같아서 한 번도 신지 않은 장화를 가지로 갔다고  박상진
생가를 둘러 보았다. 

마치 토요일 오전이라 하덥지근한 오후 늘 이곳은 우리 조부 소몽(素夢)
채기중(蔡基仲) 1873년(고종 10)~1921년 인천채가우리집안 어른이시다
일제강점기 대한광복회 경상도 책임자로 활약한 독립운동가 상주시
이안면 소암리 290-1이다.

이 고향이시고 늘 집 어른(채창식)
 께서는 생전에 이야기를 해 주시고
재실을 찾아서 집안 어른들에게 얘기를 해 주셨고 난 어릴적 부터 소몽
채기중 선대를 익히 자료를 수집하여 알수 있었다. 소몽 채기중은 향년
48세 서울 서대문형문소에서  죽음을 맞이 했다.

1910년대 국내에서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인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대한광복회를 결성하여 고헌 박상진 , 김좌진, 소몽 채기중 우재룡등 
활약하신 분들이다.

재만(在滿) 독립군과도 연락을 취하는 한편 대구에서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
를 경영하던 애국지사 박상진(朴尙鎭)과도 연락하면서 1915년 초 대구에서
결성된 조선국권회복단을 협의하고 1915년 7월에 대한광복회를 조직하였다.

대한광복회는 박상진을 총사령으로 경상도·전라도·충청도·경기도·황해도
각지에 회원들이 결성되어 있었는데, 채기중은 경상도의 책임자였으며
전라도 조직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1917년 11월 광복회가 친일 부호 장승원(張承遠)을 처단할 때 이 공작을
직접 지휘하여 결행하였다. 1918년 광복회가 일본경찰에게 발각되자
상해로 망명하기 위하여 전라남도 목포에 잠적하였다가 붙잡혀 사형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제강점기 때 만주 청산리 전투에서 크게 이긴 김좌진
장군은 기억하지만 고헌 박상진의사는 잘 모른다. 울산 시민들 역시 박상진을 
일제강점기 때 그냥 독립운동가 정도로만 기억한다.


박상진의사는 1884년 울산 북구 송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0년 판사 등용시험에 합격하여 평양지원에 발령받았으나 거부하고
 대한광복회를 조직하여 총사령관직을 맡았고, 부사령관인 김좌진에게 만주로 올라가
 활동하라고 명하였다. 

 북울산역 들머리에 위치한 박상진 생가를 찾아  갔는데 마치 박상진 박중훈 손자께서 
문화 해설사 보다 더 상세하게 설명을 듣고 소몽 채기중 선생님의 내력도 상세히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건물 뒤란 장독대에 잘닦인 항아리가 소복이 모여 있고 앞 마당에는 무궁화꽃이 
환하게 피어 있다. 

박상진의사가 대구형무소 형장에서 이슬로 사라진지가 올해로 102년 째다.

그 때 그의 나이 38세였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와 6.25전쟁에서 전사한 참전용사들을...
그들의 지고지순한 헌신과 살신성인한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자유롭게 숨쉬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중앙 박상진 의사 오른쪽에 게신 분이 소몽 채기중 독립운동가 왼쪽은 김좌진 장군   

 

 

김희곤의 독립운동이야기  안동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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