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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맥(人脈)/▶오랜 벗(友情)

서울 경북궁

by 사니조아~ 2024. 3. 20.

일시 : 2019.5.25(토) 13:20~

대상 : 서울 광화문 경복궁

서울은 천 만명의 이상 살고 있는 행정구역상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다.

여타한 사정으로 서울은 출장 등등으로 지하철 타고

공항에서 내려 일 보고 내려 오기 바쁜 곳으로 기억이 된다.

그리고 산을 좋아 하는 나는 심야 버스를 타고

새벽에 내려 국밥 한 그릇으로 아침을 하고  김밥 한줄 막걸리 한병으로

배낭에 넣고 북한산 인수봉 등등 종주를 하며

서울 동아 마라톤으로 완주 하고 잠실 올림픽 구장에서

매달받고 내려 온느것이 전부이다.

오늘 친구들과 서울 나들이 첫 번째 코스인 광화문  경복궁 둘러 봤습니다.

중2때 수학여행도 서울로 간 것이 옛 추억으로 남습니다. 

  그런데 서울을 오 가면서 실제적으로 문화 역사적 가치가 다양한 곳이다. 

뿌리가 있는 광화문 경복궁을 첫 번째로 둘러 보기로 했습니다.

생각의 온도 차이로 서울 광화문은 온통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와 집회를 이가

젊은 사람이 아니고 나이 70대 후반 깃발을 들고 집회를 주도 하는 젊은이는

단상에 올라 마이크로 구호를 외치는데   외국 관광객들에게  사실 눈살을

찌푸리는 진 관경을 보고 '이게 나라냐 할 정도이다' 

거두절미하고 역사 공부 한번 하고 갑시다.ㅎㅎ   

 

이성계가 왕이 되어 곧 도읍을 옮기기로 하고,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신도궁궐조성도감

(新都宮闕造成都監)을 열어 궁의 창건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에 완성하였다.

이 당시 궁의 규모는 390여 칸으로 크지 않았다.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 5칸에 상하층

 월대(月臺)와 행랑·근정문·천랑(穿廊)·각루(角樓)·강녕전(康寧殿) 7칸, 연생전(延生殿) 3칸,

 경성전(慶成殿) 3칸, 왕의 평상시 집무처인 보평청(報平廳) 5칸 외에 상의원·중추원

·삼군부(三軍府) 등이 마련되었다.

 

궁의 명칭은 『시경』 주아(周雅)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에서 두 자를 따서

경복궁이라고 지었다.

 

오늘은 요기 까징만 합시다.

 

 

 

1395년(태조 4) 경복궁을 창건할 때 정전(正殿)인 근정전과 편전(便殿)인 사정전·침전인 경성전(慶成殿)·연생전(延生殿)·강녕전(康寧殿) 등을 지어 궁궐의 기본구조를 갖춘 다음, 1399년에 그 둘레에 궁성을 쌓은 뒤 동·서·남쪽에 성문을 세우고, 동문을 건춘문(建春門), 서문을 영추문(迎秋門), 남문을 광화문이라 이름 지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당시인 1865년(고종 2)에 다시 짓게 하였다. 1927년에는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경복궁의 여러 곳이 헐리고 총독부청사가 들어서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졌다.

이후 광화문은 6·25사변 때 폭격을 맞아 편전인 만춘전(萬春殿)과 함께 불타버렸다. 1968년에 석축 일부가 수리되고 문루는 철근콘크리트구조로 중건되었다가 2006년 들어, 경복궁 복원공사의 일환으로, 철거·해체되었다. 이후 광화문 이전 공사가 개시되어 2010년 8월 완공되었다.

 

 

 

    흥례문 중앙에서 경복궁 안쪽을 들여다보면 영제교를 지나 근정문, 근정전이 차례로 일자로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근정전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근정문 뒷편의 사정전과 강령전, 교태전도 모두 일자로 배치되어 있다. 다만

    경복궁의 정문이라 할 수 있는 광화문은 2006년 12월까지 한쪽으로 틀어져 있었는데,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철거했던 것을  복원하면서 원래의 위치가 아닌 조선총독부 건물에 맞추어 지었기 때문이다.

    현재 구 광화문은 철거되었고, 한일병합조약 100년인 2010년8월15일에, 기울어졌던 3.75도를 바로잡고

    고종 중건 당시의 모습으로 85년 만에 복원되었다

 

 

 

   근정전(勤政殿)은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정전으로, 다포계 팔작 지붕의 중층 건물이다. 현재 근정전은 북보 223호로 지정되어 있는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목조 건축물 중 하나이다.

   1395년 조선태조가 조선의 정궁으로 경복궁을 조성할 때, 중추를 이루는 건물로 중건되었다. 임진왜란 시기 경복궁 전반이 불에 타면서

   같이 소실되었다가 1868년  홍선대원군에 의해  공사 때 다시 세워졌다.

 

    조선 국왕의 정무와 나라의 큰 행사, 즉 외국 사신을 맞이하거나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는 등 국가 의식이 치뤄지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 중에서도 국왕의 즉위식은 근정전의 주요 기능 중 하나였으며, 정종 세종, 세조 성종, 명종 선조가 근정전에서

   즉위를 치렀다.

 

    이와 더불어 과거시험의 거행과 합격 발표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근정전에서 근정문에 이르는 길 좌우에는 정승들의 지위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차례로 놓여 있으며, 행사를 치를 때 햇빛을 가리기

    위해 사용했던 차일 고리가 아직도 앞마당에 남아 있다. 근정문 주변으로는 행각(行閣)이 연결되어 근정전을 에워싸는 형태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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