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19
나는 문경 가은에서 담배 농사짖기 싫어서
지게지고 농사짖기 싫어서
문경을 떠났습니다.
그러니 40년만에 처음 말합니다.
그게 구세주가 된것은 현대차 울산공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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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가 이른말 하면 누구 믿어 줄것 같아요 ^^
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가면서
살았습니다. 회사에 입사를 해서도 배움에 대한
포기는 단 한번도 해 본적이 없습니다.
틈만 나면 책을 가까이 하고
틈만 나면 배낭을 매고 등산을 하며
새로운 도전에 늘 투자를 했습니다.
82년도에 울산에 올때 단돈 5만원과 옷 보따리
가방이 전부 였습니다.
1,800한자 옥편 고3국어 교과서
고3 수학책과 자습서 지금도
그 책이 있습니다.
1만2천원짜리 단칸방을 월새를 얻어 놓고
석유 곤로 1대 1만원 주고 사고 쌀 2대를
사놓고 시작한 객지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연탄 20장을 샀는데 그것은 주인에게
외상으로 월급타서 준다고 하고
연탄을 빌렸습니다.
선친께서는 허리가 굽고
엄마는 일자무식 품앗이로 생계를 하던시절
부모님은 내나이 23세 되던해 세상을
떠났고 난 모두를 읽었습니다.
의지 할곳은 오르지 나 혼자 였습니다.
다시 담배농사 이야기 합시다.
그 만큼 담배농사일이 고 되다는 겁니다.
담배농사는 삼복더위에 경작을 하여 건조후
상품화를 해서 전량 정부에서 매상합니다.
그런데 장마철에도
삼복더위를 담배농사는 해야 합니다.
힘든 담배농사 전 그와 같이 함께 안 할려고
탈출을 하게 된 배경입니다.
담배 밭에 들어가서 담배순을 따서
리어카 실고 지게에 지고
담배를 실고 지고
건조실로 이동하는것에 질렸다.



